박강(朴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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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 미상~1460년(세조 6)]. 조선 전기 태종~세조 때 활동한 문신. 행직(行職)은 중추원 사(中樞院事)이다.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아버지는 금천부원군(錦川府院君)좌의정박은(朴訔)이며, 어머니 주씨(周氏)는 전법판서(典法判書)주언방(周彦邦)의 딸이다. 예조 참판(參判)박규(朴葵)의 아우이며, 부윤(府尹)박훤(朴萱)의 중형이다.

세종~세조 시대 활동

1442년(세종 24)무렵에 대호군(大護軍)이 되었다가 1445년(세종 27) 3월 군기감(軍器監)정(正)이 되었으며, 통훈대부(通訓大夫)로 가자(加資)되었다. 1447년(세종 29)에 평안도경차관(平安道敬差官)이 되고, 1448년(세종 30) 2월에 중추원 첨지사(僉知事)가 되었다가 1449년(세종 31) 2월에 공조 참의, 5월에 이조 참의가 되었으며, 8월에 평안도 도진무(平安道 都鎭撫)가 되었다.

1450년(문종 즉위) 8월 황해도 도절제사(黃海道都節制使)가 되고, 1451년(문종 1) 3월에 황해도 도관찰사(黃海道都觀察使)가 되어 황해도 병마도절제사(黃海道兵馬都節制使)·해주판목사(海州判牧使)를 겸하였다. 1452년(단종 즉위) 2월에 중추원(中樞院) 부사(副使)가 되었고, 1453년(단종 1) 10월에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가 되었다가 11월에 중추원부사가 되었다. 1454년(단종 2) 8월에 다시 중추원부사가 되었다.

1455년(세조 1)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즉위하는 데 협력하여 그 공으로 이 해 9월에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에 책록되어 추충좌익공신(推忠佐翼功臣) 중추원 동지사(同知事)금천군(錦川君)이 되었다. 1456년(세조 2) 7월에 경상전라충청 삼도순찰사(慶尙全羅忠淸三道巡察使)중추원 지사(知事)가 되었다. 1457년(세조 3) 9월 또 중추원 지사가 되었고, 이어 중추원사(中樞院事)가 되었다. 1459년(세조 5) 7월에 황해도 도순찰사(黃海道都巡察使)가 되었다. 1460년(세조 6) 1월에 다시 중추원사가 되었다. 이해 11월 7일 왕을 호종하다가 길에서 병들어 세상을 떠났다.( 참조.)

성품과 일화

『세조실록(世祖實錄)』세조 6년 11월 7일(기묘)조 「박강 졸기」를 보면, 그는 성품이 정교(精巧)하였고, 기능(技能)이 많았기에 처음에 벼슬하면서부터 군기감(軍器監)을 맡아 판사(判事)에 이르렀고, 이조 참의와 황해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고 했다. 한편 졸기에는 그가 “젊었을 때에 호협하여 모양을 잘 내고 명기(名技)들과 많이 통하였으며, 난신(亂臣) 윤영손(尹令孫)의 아내인 권전(權專)의 딸과 통하였다.”고도 하였다.

묘소와 시호

시호는 세양(世襄)이다. 묘소는 현재 경기도 하남시 초이동 산 5번지에 있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문종실록(文宗實錄)』
  • 『단종실록(端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중종실록(中宗實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