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선(尾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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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궁중에서 당악정재를 상연할 때 사용한 공작 꼬리가 그려진 부채 모양의 의물.

개설

고려시대부터 당악정재(唐樂呈才)를 공연할 때 사용한 부채 모양의 의물로, 부채 좌우가 공작이 꼬리를 펼친 모양으로 되어 있다. 당악정재를 상연할 때는 무대 좌우에 각각 2명씩 차례대로 인인장(引人杖)·정절(旌節)·용선(龍扇)·정절·봉선(鳳扇)·정절·작선(雀扇)·정절·미선(尾扇) 등을 들고 서서 춤을 추는데, 미선을 든 2명은 좌우로 나뉘어 작선 다음의 정절 뒤에 위치하였다(『세종실록』 10년 5월 26일).

연원 및 변천

『고려사(高麗史)』「악지(樂志)」에 따르면, 미선은 고려시대에는 헌선도(獻仙桃)·오양선(五羊仙)·포구락(抛毬樂) 정재 등에서 의물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전기에는 당악정재(唐樂呈才)금척(金尺)·수보록(受寶籙)·근천정(覲天庭)·수명명(受明命)·하황은(荷皇恩)·하성명(賀聖明)·성택(聖澤)·육화대(六花隊)·곡파(曲破) 등에서 의물로 사용되었는데, 이례적으로 향악정재인 봉래의(鳳來儀)에 쓰이기도 하였다. 1901년(고종 38)의 『(신축)진연의궤』를 살펴보면, 대한제국기에는 미선이 황미선(黃尾扇)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미선은 왕실의 상례 의장에 포함되기도 하였다(『세종실록』 2년 9월 16일).

형태

미선의 형태는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자세히 전한다. 자루는 대나무로 만들었으며, 부채는 종이로 두껍게 배접해서 생초(生綃)를 바르고 양면에 공작 꼬리를 그려 넣었다. 대나무 자루의 길이는 7자 9치, 부채의 길이는 2자 1치, 너비는 1자 6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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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민속 관련 사항

미선에는 공작의 아름다운 꼬리가 그려져 있는데, 공작은 부귀와 길상의 상징이었다. 한편 공작의 꼬리는 특종(特鐘)과 편경(編磬) 등 국악기의 장식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악학궤범(樂學軌範)』
  • 『순조기축진찬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
  • 『고종신축진연의궤(高宗辛丑進宴儀軌)』
  • 국립국악원, 『신역 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 국립국악원, 『국악기의 문양과 장식』, 국립국악원, 2006.
  • 손선숙, 『궁중정재 용어사전』, 민속원, 2005.
  • 한국문화상징사전편찬위원회, 『한국문화상징사전:2』, 동아출판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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