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기(明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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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 시신과 함께 묻는 신명한 물품.

개설

명기는 생시와 같은 것을 상징하여 만든 물품으로서, 이것을 광중(壙中)에 넣는 것은 고대 순장의 유제이다. 그 모양은 생시에 사용하던 것보다 거칠고 열악하며 작다. 일상생활용품을 기본으로 하지만, 그 외에 제기류, 악기류, 의장류 등 많은 종류의 물품을 추가하여 매장했다.

명기의 가짓수는 신분에 따라 차등을 두었다. 왕은 80여 종이며, 300개가 넘을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다. 영조는 이러한 제도를 과감히 개혁했다. 목용(木俑)의 사용은 일절 금하고, 자질구레한 기명과 악기류를 대폭 축소하거나 없앴다.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 왕의 상장례에서 명기에 관한 규정은 세종 초에 보인다. 그 종류는 일상 생활용품을 비롯하여 악기류, 제기류, 의장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명기들은 발인 때 혼백과 신주를 운반하는 요여(腰轝) 다섯에 싣고 가서 영장전(靈帳殿) 유문(帷門) 밖 서쪽에 동향하여 진열했다가, 현궁(玄宮)의 동남쪽으로 옮겨진 후 후토제(後土祭)가 끝나면 지석과 함께 현궁에 넣었다. 그 장소는 현궁의 문의석(門依石) 밖에 만들어 놓은 편방이다. 세조가 석실을 쓰지 말도록 유명을 내려 석실을 쓰지 못하게 된 후에는 능의 앞과 좌우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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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인(士庶人)들은 『국조오례의』에 그 수가 규정되어 있는데, 4품 이상은 30가지, 5품 이하는 20가지, 서인은 15가지였다.

변천

명기의 재질은 보통 자기와 와질 혹은 대나무, 나무였다. 금이나 은을 녹여서 장식하는 것은 1441년(세종 23)에 모두 금하였다(『세종실록』 23년 8월 11일). 조선후기에 가서 명기의 구성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1626년(인조 4)에는 종과 석경(石磬), 축(祝), 어(敔)와 같이 종묘제례악에 쓰는 것들은 좀 참람한 듯하다고 하면서 다만 속악에서 쓰는 당적과 퉁소 등을 만들어 쓰게 하고, 목공인(木工人)과 목노비(木奴婢) 등은 그 수를 조금 줄였다(『인조실록』 4년 3월 10일). 그리고 명기를 넣는 궤짝은 나무 궤에 넣을 경우 오랜 세월이 지나면 썩어 땅이 무너질 염려가 있으니, 석함(石函)을 만들어 쓰도록 했다. 영조는 순장의 폐단을 공자가 비난하였던 바라 하면서 그 제도를 폐지했다(『영조실록』 27년 11월 26일). 목용의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을 『속대전』에 수록하여, 사람의 형상을 본뜬 것들은 모두 영원히 제거시키도록 했다.

그 후 목산마와 목안마도 그 수를 감했으며, 『국조상례보편』 편찬 당시에는 자질구레한 기용(器用)이나 쓸데없는 것으로 판단하여 주준(酒樽)이나 주잔(酒盞) 같은 것들도 모두 없앴다.

의의

순장의 유제인 명기의 매장은 죽은 사람의 사후의 삶을 대비한 것으로, 그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생과 사의 중간 존재로 인식된 사자가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들을 작게 형상하여 사용할 수 없는 물건들이다. 후손들이 차마 아주 죽은 것으로 대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형식을 갖추었다. 사자의 영생을 기원하는 효의 실천이 얼마나 지극했는지를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 『주자가례(朱子家禮)』
  • 『춘관통고(春官通考)』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