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호부(大都護府)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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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대도호부 |
한글표제 | 대도호부 |
한자표제 | 大都護府 |
관련어 | 계수관(界首官), 단부(單府), 도호부(都護府) |
분야 | 정치/행정/행정구획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고려, 조선 |
왕대 | 고려, 조선 |
집필자 | 임용한 |
폐지 시기 | 1894년(고종 31)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대도호부(大都護府)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8년 2월 10일, 『세종실록』 10년 12월 2일 |
고려와 조선시대에 군사 요충지 등 특별한 지역에 설치한 지방행정 기구.
개설
대도호부(大都護府)는 군사 요충지와 행정 중심지 등 특별한 군현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이다. 고려시대에는 대개 일방을 진무하고 방어하는 군사기지였고, 조선시대에는 지방을 통치하기 위해 설치한 최상급 군현이었다. 고려는 개국이래로 평양·안북(영주)·안남(전주)·안동(상주→경주)·안서(해주)·강릉대도호부를 두었고, 이중 안동·강릉대도호부는 고려 멸망 때까지 존속되었다. 조선은 개국과 함께 고려말의 군현제를 계승하여 안동·강릉대도호부를 두었고, 이어 차례로 영흥·영변·안변·창원을 대도호부로 삼았다. 이 대도호부는 대개 조선말까지 존속되다가 1894년(고종 31) 지방 제도 개혁 때 모두 폐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역대의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지방에 군현을 설치하고 관리를 파견하여 지방을 통치하였다. 고려의 대도호부는 918년(고려 태조 1)에 궁예의 태봉을 타도하고 고려를 세운 태조가 서북 지방을 진무·방어하고 겸하여 왕실을 뒷받침하는 군사를 양성할 목적으로 평양에 대도호부를 설치하면서 비롯되었다. 이어 성종대 이후에 전국의 사방 군사 요충지를 중심으로 외침에 대비하고 지방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동, 서, 남, 북에 대도호부를 설치하였다. 이에 따라 983년(고려 성종 2)에 서북방의 영주(寧州)에 안북(安北)대도호부를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상주에 안동대도호부, 전주에 안남대도호부, 해주에 안서대호부가 설치되었으며, 이후 이들이 점차 혁거되면서 1270년(고려 원종 11)까지 운영되었다. 다시 1362년(고려 공민왕 11)에 안동대도호부, 1389년(고려 공양왕 1)에 강릉대호부가 설치되었는데, 이것은 그 이전과는 달리 군현을 통치하던 안동부와 강릉부가 승격되면서 등장한 것이다. 이처럼 최상급 군현으로 정착된 대도호부가 조선의 개창과 함께 그대로 계승되었다.
조직 및 역할
고려의 대도호부는 초기는 그 조직이 분명하지 않지만 문종대 이후에는 3품 이상으로 사 1인, 4품 이상 부사 1인, 6품 이상 판관 1인, 7품 이상 사록겸장서기 1인, 8품 이상 법조 1인, 9품 의사·문사 각 1인이 있었다. 조선의 대도호부에는 정3품 사 1인, 정5품 판관 1인이 있었다. 한편 대도호부에는 다수의 이속, 노비, 토지가 있어 지방행정과 각종 경비를 뒷받침하였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대도호부에는 서원(書員) 30명, 일수(日守) 40명, 외노비(外奴婢) 450명, 향교노비 25명, 관둔전(官屯田) 50결(結), 공수전(公須田) 15결로 각각 정해졌다. 또 강릉대도호부사는 타 지역의 부사를 역임한 경력자가 임명되었고, 영변대도호부사는 절도사가 겸하기도 하였다.
변천
조선은 개국과 함께 고려말의 외관제를 계승하여 경상도 안동과 강릉에 대도호부를 두었다. 이후 1426년(세종 8)에 함경도의 화주목을 영흥대도호부로 승격·개칭하였고, 3년 후에는 연산군과 무산현을 합병하여 영변대도호부로 정하였다(『세종실록』 8년 2월 10일), (『세종실록』 10년 12월 2일). 영흥과 영변은 양계(兩界)의 특수한 군사적, 지리적 환경에 의해 설치한 것이나 안동과 강릉의 경우는 이유가 분명치 않다. 이에 조선초기부터 안동과 강릉은 목(牧)으로 바꾸고 양계의 군사 요충지에 대도호부를 설치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시행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군사 요충지를 대도호부로 승격시키자는 건의가 있었으나 시행되지 않았다.
1670년(현종 11) 경상도 창원을 대도호부로 승격시켰다. 1755년(영조 31) 국초부터 논의되었던 대로 함흥과 전주, 평양을 대도호부로 승격시켰으나, 『속대전』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함경도 영흥은 잠시 군(郡)으로 강등되었다가 1498년에 다시 대도호부로 승격했지만 『속대전』에서는 다시 강등되었다. 그 외에도 강상죄, 반란 등 여러 사유로 잠시 강등되는 경우가 있었으나, 대체로 1894년 갑오개혁에 수반된 관제 개혁으로 8도-부윤부·대도호부·목·도호부·군·현의 지방 통치 체제가 23부-438군으로 개편되면서 군으로 개칭되기까지 4대도호부 체제가 유지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최정환, 『역주 『고려사』 백관지』, 경인문화사, 2006.
- 한충희, 『조선초기의 정치제도와 정치』, 계명대학교출판부, 2006.
- 한충희, 「조선 중·후기 군현의 변천과 국방·지방통치」, 『인문학연구』 45 , 계명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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