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정(樓亭)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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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누정 |
한글표제 | 누정 |
한자표제 | 樓亭 |
관련어 | 누각(樓閣), 누대(樓臺) 대각(臺閣) 정사(亭榭), 정자(亭子) |
분야 | 문화/예술/건축 |
유형 | 건축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이해준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누정(樓亭)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17년 3월 29일, 『문종실록』 1년 7월 16일 |
누각(樓閣)과 정자(亭子)의 줄인 말로, 경치가 좋은 곳에 놀거나 쉬기 위하여 지은 건물.
개설
누정(樓亭)은 누각과 정자의 줄인 말로 누각과 정자를 정자라고 통칭하기도 한다. 누각은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2층 다락 구조로 높게 지어진 건물이고, 정자는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터진 곳에 지어 자연 속에서 풍류를 즐기며 정신 수양의 장소로 활용된 건축물이다. 누정은 또한 지성인들이 모여 정치와 학문을 논하고 후학들을 양성하며, 계회(契會)를 여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위치 및 용도
누각은 대개 높은 언덕이나 돌 혹은 흙으로 쌓아 올린 대 위에 세우기 때문에 대각(臺閣) 또는 누대(樓臺)라고도 하였다. 강릉의 경포대(鏡浦臺)가 대표적인 예이다. 누각에 비하여 정자는 건물의 크기가 작으나 누각과 마찬가지로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만으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놀거나 휴식할 장소로 활용하기 위하여 산수 좋은 높은 곳에 세우는데 정각(亭閣) 또는 정사(亭榭)라고도 한다. 사(榭) 또한 높은 언덕, 혹은 대 위에 건립한 집으로, 정자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변천 및 현황
조선시대 전 기간을 통하여 각 지역에 수많은 누정이 건립되었고, 누정과 관련된 많은 인물의 일화와 기록이 남아 있어 누정은 경관이나 건축물로서도 의미가 크지만, 해당 지역 지성사나 문학사의 측면에서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전거는 모두 궁궐의 누정 기록과 각 지역 읍성이나 성곽의 문루(門樓)에 관한 기록들뿐이다(『세종실록』 17년 3월 29일) (『문종실록』 1년 7월 16일).
누정의 위치는 대개 경관이 좋은 산이나 언덕 위에 위치하여 산을 등지고 앞을 조망할 수 있는 곳, 냇가나 강가 또는 호수나 바다 등에 임한 곳, 궁실의 후원 등의 원림(園林), 읍성이나 군사적인 성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한편 누정의 건립 목적과 기능을 보면 산수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유흥상경(遊興賞景)의 기능, 시우(詩友)들이 모여 유유자적하며 시단(詩壇)을 이룬 장소, 은거(隱居) 강학(講學)하는 교육의 장소이자 정치·사회적 현실에 대한 토론의 장소, 친족의 종회(宗會)나 마을 사람들의 동회(洞會) 또는 각종 계의 모임 장소 등으로 매우 다양했다.
형태
누정은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유람이나 휴식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살림집인 가옥 외에 특별히 지은 건물이다. 일반적으로 누정은 『신증동국여지승람』「누정」조에서 보는 바와 같이, 누(樓)·정(亭)·당(堂)·대(臺)·각(閣)·헌(軒) 등을 일컫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관련사건 및 일화
누각과 정자는, 전통 사회 사족들의 지적 활동의 장소이자, 그들의 문화가 구체적으로 발현되고 있는 장소이다. 따라서 누정에 대한 조사·연구는 전통시대 지성사와 향촌 사회사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누정의 건립 연유나 시기, 이곳을 거쳐 간 인물들의 면모, 건물 구조나 위치, 경관 등을 통하여 누정과 관련된 향촌 사회사의 여러 기록 자료와 현장 자료를 수집·정리할 수 있다.
참고문헌
- 허경진, 『충남 지역 누정 문학 연구』, 태학사, 2000.
- 김무조·정경주 외 1명, 「조선조 누정 문학 연구(1·2)」, 『한국문학논총』 10, 1989.
- 박준규, 「한국의 누정고」, 『호남문화연구』 17, 1987.
- 이해준, 「금강 중류 지역 누정 문화의 성격」, 『향토연구』 31, 2007.
- 전남대 호남문화연구소, 「전남 지방의 누정 조사 연구」, 『호남문화연구』 14~16, 1985~1986.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