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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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를 판단하고 시비를 가려 논리적인 주장을 제시하는 한문 문체.

개설

논(論)의 시초에 관해서는 『논어』 어록체에 그 기원이 있다는 의견과, 제가서(諸家書)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 등 견해가 분분하다. 다만, 최초의 작품으로는 한나라 때 가의(賈誼)가 지은 「과진론(過秦論)」이 꼽힌다. 논은 당나라 때 이후 고문 운동이 일어나면서 문체로서의 지위를 명확히 하였다. 한유의 「쟁신론(爭臣論)」, 유종원의 「봉건론(封建論)」, 구양수의 「붕당론(朋黨論)」 등이 널리 읽혔다.

논은 독창적인 주제, 정밀한 논리와 체계적인 구성, 간결하고 명확한 수사를 중시하는데, 입론 방식은 『묵자(墨子)』에 기록된 ‘삼표(三表)’를 바탕으로 한다. 삼표란 진술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세 가지 방법을 말한다. 첫째로 옛 성왕의 역사적 기록에 비추어 검증해야 하고, 둘째로 백성들이 직접 보고 들은 사실에서 연원을 찾아야 하며, 셋째로 국가와 백성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논은 이러한 정밀한 실증을 통한 논리 전개 방식으로 인해 논리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내용 및 특징

논은 그 내용에 따라 정론(政論)·사론(史論)·경론(經論)·문론(文論)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정론과 사론의 비중이 큰 편이다. 이는 과거 시험에 대비하거나, 관료 문인으로서 정치적인 견해나 의론을 펼쳐야 할 필요성 등 현실적인 목적과 관련이 깊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역사서에 부기된 논평에서 비롯된 사론은 논 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데, 특정 역사적 사건에 대해 논하거나 인물의 일화에 대해 논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물 논평의 경우 백리해·이윤·강태공·장량·한신 등 중국 인물들에 대한 논평이 일반적이었으나, 허균의 「정도전·권근론」·「김종직론」 등과 같이 우리나라 인물을 다룬 경우도 없지 않았다. 장유의 「한조불록기신론(漢朝不錄記信論)」, 어유붕의 「한고불봉기신론(漢高不封紀信論)」, 이남규의 「기신론(紀信論)」은 동일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의론한 글이다.

우리나라의 논 가운데 문헌상 가장 이른 시기의 자료는 『동문선(東文選)』에 수록된 16편의 작품이다. 이규보의 「반유자후수도론(反柳子厚守道論)」은 "도를 지키는 것이 관직에 나아가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을 논박한 유종원의 글을 반박한 것이며, 「굴원불의사론(屈原不宜死論)」은 굴원의 죽음이 결과적으로 왕의 과실을 크게 드러내었으므로 충의(忠義)에 어긋난 것이라는 이색적인 주장을 펼친 글이다. 그밖에 이제현의 「범증론(范增論)」, 이곡의 「조포충효론(趙苞忠孝論)」, 정도전의 「걸식론(乞食論)」, 이첨의 「곽광론(霍光論)」, 윤회의 「백리해론(百里奚論)」 등도 여말 선초의 주요 작품으로 손꼽힌다.

논 작품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구한말까지 지속적으로 지어졌다. 이익의 「전론(錢論)」·「균전론(均田論)」, 정약용의 「간리론(奸吏論)」·「서얼론(庶孼論)」·「탕론(湯論)」 등은 당대의 정치·사회·풍속의 병폐를 지적하고, 이를 혁신하고자 하는 뜻을 드러낸 글이다. 구한말의 황현은 「양웅론(揚雄論)」·「백리해론(百里奚論)」·「사호론(四皓論)」 등을 통해 국망(國亡)에 속수무책인 지식인의 비애와 처세관 등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중국 송나라 때 문장가인 구양수가 지은 「붕당론」은 조선시대 초기 이후 왕의 치도(治道)를 강변하는 대신들의 상소문에 간혹 거론되다가(『성종실록』 19년 10월 19일), 당쟁이 극에 이른 영조 연간에 붕당 논란과 그에 따른 대책을 의론하는 와중에 자주 인용되었다(『영조실록』 1년 1월 3일). 유성룡의 「구양자붕당론(歐陽子朋黨論)」 이후 이덕수·정범조·이익·심대윤 등의 「붕당론」이 이러한 맥락에서 지어졌고, 이들은 여기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른 상세한 정론을 펼쳤다.

참고문헌

  • 김도련, 『고문의 이론과 전개』, 태학사, 1998.
  • 심경호, 『한문산문의 미학』, 고려대학교출판부, 1998.
  • 백진우, 「조선후기 史論 산문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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