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야역(鹿野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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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함경도 지역의 역도 중 하나인 수성도에 속한 역.

개설

녹야역(鹿野驛)은 조선 세종 연간에 북방 지역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종성부의 관할지에 설치되었다. 그 뒤 세조대에 함경도의 역도(驛道) 가운데 하나인 수성도(輸城道)의 속역으로 편제되어 갑오개혁 때까지 존속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함경도 종성도호부 조에 따르면, 세종 때 육진(六鎭)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함경도 일대에 자리 잡고 있던 여진족을 몰아내고 1435년(세종 17)에 종성군을 설치해 부계(俯溪)·임천(林川)·녹야 지역의 백성들을 소속시키면서 녹야역을 설치했다고 한다.

조직 및 역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당시 녹야역에는 역리(驛吏) 458명, 역노(驛奴) 47명, 역비(驛婢) 20명과 상등마 2필, 중등마 4필, 하등마 8필 등 총 14필의 역마가 배속되어 있었다.

변천

『세종실록』「지리지」 함경도 조를 살펴보면, 당시 함길도에는 고산도(高山道)·동기도(東岐道)·시리도(施利道) 등 세 개의 역도가 편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책 종성도호부 조에는 녹야역이 세 역도 중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종성도호부에 속한 참(站)으로 기록되어 있다. 세종 연간에는 이처럼 역도에 포함되지 않은 역이 존재했는데, 함길도에 11개 역, 강원도에 19개 역이 있었다.

이후 1457년(세조 3), 1460년(세조 6), 1462년(세조 8) 세 차례에 걸쳐서 전국의 역로가 개편되었는데, 이때 녹야역은 『세조실록』에 언급된 역로 개편 대상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세조 8년 전국적인 역로 개편에서 함길도(咸吉道)·평안도는 기존의 체제를 유지한다는 기록을 통해서 세종대의 체제가 세조대까지 지속되었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세조 8년의 역로 개편을 토대로 정비된 『경국대전』의 역도-속역 체제하에서 녹야역이 수성도의 속역으로 편제되었는데,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볼 때 세조 8년 이후 부분적인 역로 개편 과정에서 녹야역이 함경도의 역도인 수성도에 편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종대에 『경국대전(經國大典)』이 반포되면서 확정된 조선시대 전기의 역도 체제에서는 경성역(鏡城驛)·주촌역(朱村驛) 등 18개 역과 더불어 수성도(輸城道)의 속역으로 편제되었다. 이후 조선시대 후기까지 존속하다가,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녹야역은 종성부 관아 동쪽 150리 지점에 있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조병로, 『한국근세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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