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棄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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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의 목을 베어 죽이고 그 시체를 길거리에 내다 버리는 형벌.

내용

기시(棄市)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장에서 사형을 집행하고 그 시신(屍身)을 길거리에 버리는 것으로, 흔히 대중을 경계시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 시행된 것이라고 이야기된다. 고대 중국에서부터 있어왔던 사형 방법으로, 『예기』에도 저자[市]에서 형벌을 집행하여 여러 사람들과 더불어 그를 버린다는 문구가 있다.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대명률』은 태(笞)·장(杖)·도(徒)·유(流)·사(死)의 5형(刑)을 기본으로 하였다. 5형 가운데서 가장 무거운 형인 사형은 그 집행 방법에 따라 다시 교형(絞刑)과 참형(斬刑)으로 구분되었으며, 대역(大逆)·강상(綱常) 죄인에게는 능지처사(陵遲處死)를 규정하고 있다. 조선 왕조에서는 『대명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형벌 이외의 사형이 시행되기도 했는데, 기시(棄市)·거열(車裂)·효수(梟首)·육시(戮屍)·약살(藥殺) 등을 꼽을 수 있다.

조선시대에 사형의 집행은 새남터(沙南基) 등과 같이 정해진 곳에서 이루어졌으나 기시가 행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1395년(태조 4)에는 국경을 넘어간 서북면(西北面)의 사람 7명이 기시되었으며, 같은 해에 왕지(王旨)를 위조한 사노(私奴)가 기시되기도 했다. 1402년(태종 1)에는 영안군(寧安君)이 모반(謀反)을 꾀한다고 무고(誣告)한 변남룡(卞南龍)과 그의 아들이 기시에 처해졌다. 연산군 연간에는 별궁(別宮)을 짓기 위한 땅을 마련하기 위해 금표(禁標)를 세우고 그곳에 함부로 들어가는 자를 기시에 처하기도 했다.

기시는 죽은 자에게도 집행되었다. 1438년(세종 20)에는 부모·형·고을 수령을 상해(傷害)하여 수금(囚禁)되어 있던 죄인이 미처 형벌이 집행되기 전에 사망하자 그 시신을 기시하였다.

용례

傳曰 天科興淸樂供奉諸事 一依後宮 禁人出入本家 違者棄市 時內人衣食于國름廩者 以千數 軍資豊儲廣興等倉 虛竭(『연산군일기』 11년 11월 3일)

참고문헌

  •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
  • 『대명률강해(大明律講解)』
  • 中橋政吉, 『朝鮮舊時の刑政』, 朝鮮總督府法務局內 治刑協會, 1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