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척(權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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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589년(선조22)∼1615년(광해군7) = 27세]. 조선 중기 광해군 때 활동한 문신. 자는 불기(不覊)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주거지는 서울이다. 형조 판서권반(權盼)의 아들이고, 공조 판서윤국형(尹國馨)의 외손자이다.

광해군 시대 활동

15세이던 1603년(선조36)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고, 1610년(광해군2) 22세의 나이로 문과(文科)에 급제하였다. 승문원(承文院)에 보임되어 권지(權知)정자(正字)가 되었다가 주서(注書)로 승진하였다. 또 예문관(藝文館)으로 옮겨서 검열(檢閱)을 거쳐 대교(待敎) · 봉교(奉敎)에 임명되었다.

공조 · 형조 · 호조 · 예조의 4조(曹) 낭관(郎官)을 역임하면서 춘추관(春秋館)기사관(記事官)을 겸임하였다. 그리고 1609년에 시작되어 1616년에 완성된 『선조실록(宣朝實錄)』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1615년(광해군7) 존숭도감(尊崇都監)낭청(郎廳)으로 임명되었다. 1615년(광해군7) 27세 때 감기에 걸려서 급사(急死)하였다.

친구의 비문

친구 이민구(李敏求)는 권척과 동갑내기로서 권척의 아버지 권반에게서 수학하였다. 권척이 젊은 나이에 죽고 난 다음에 권반은 이민구를 만날 때마다 죽은 아들 생각이 나서 울었다. 그리하여 이민구가 친구 권척의 묘지명(墓誌銘)을 썼을 뿐만 아니라(『동주집(東州集)』 문집 권8), 그 아버지 권반의 신도비명(神道碑銘)도 지었다.(『동주집』 문집 권7)

관력, 행적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동주집(東州集)』
  • 『응천일록(凝川日錄)』
  •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