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결(口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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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으로 이루어진 구절이나 문장이 끊어지는 곳에 첨가하는 우리말 조사, 어미 등의 문법 요소를 통틀어 이르는 말.

개설

구결(口訣)은 한문 사이사이에 독해를 위해 삽입되는 우리말 요소이다. 즉, 구결은 우리나라 사람이 한문을 우리식으로 이해하기 위해 만든 문법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구결에는 당시 지식인들이 한문을 이해한 방식이 반영되어 있다. 구결은 여러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는데, 고려시대 중기의 석독구결(釋讀口訣)이 14세기 이후 음독구결(音讀口訣)로 이행한 것이 구결의 역사에서 가장 큰 변화에 해당한다.

내용 및 특징

한문은 우리말과 어순 및 문법적 특징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한문을 독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구두가 끊어지는 곳에 우리말 조사나 어미 등의 문법 요소를 적절히 삽입하여 읽는 관습이 일찍부터 형성되었다. 이 문법 요소를 구결이라고 하고, 구결에 따라 한문을 풀어 읽은 것을 구결문(口訣文)이라고 한다. 『논어』「학이」 편의 첫 구절에 구결을 달아서 읽으면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와 같이 되고, 이때 ‘-면’과 ‘-아’가 구결이다.

동아시아의 한문 문화권에 속한 여러 나라에서는 우리의 구결처럼 한문을 자국의 언어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다. 일본의 한문훈독(漢文訓讀) 또는 훈점(訓點), 베트남의 쯔놈 등이 그 예에 해당한다. 위구르나 거란에도 한문을 풀어 읽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구결은 여러 가지 기준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구결은 사용된 문자를 기준으로 차자구결(借字口訣)과 한글구결로 구분할 수 있다. 차자구결이란 한자를 빌려서 구결을 표기한 것이고, 한글구결이란 한글이 만들어진 뒤에 한글로 구결을 표기한 것이다. 한글이 창제된 뒤에도 19세기까지 차자구결이 활발히 사용되었다. 차자구결의 경우 한자의 획을 그대로 다 쓰기도 했지만, 번잡한 획을 간략하게 만들어 쓰는 경우가 많았다. 전자를 정해자구결(正諧字口訣), 후자를 약체자구결(略體字口訣)이라고 한다. 차자구결에서 특정한 우리말 음절을 나타내기 위해 어떤 한자를 이용할 것인지, 그 한자를 어떻게 간략하게 표현할 것인지 등은 유교와 불교에서 차이를 보였다. 예컨대 ‘의’를 유가에서는 ‘矣(의)’ 및 그 약체자 ‘’로 표기하는 일이 많았으나, 불가에서는 대개 ‘衣(의)’ 및 그 약체자 ‘’로 나타냈다.

구결에 쓰인 한자를 읽는 방식을 기준으로, 석독구결(釋讀口訣)과 음독구결로 구분할 수 있다. 석독구결이란 음과 훈(訓)을 함께 읽는 것으로 훈독구결(訓讀口訣)이라고도 하고, 음독구결이란 한문을 구성하는 각 한자를 오로지 음(音)으로만 읽는 것이다. 석독구결은 한문을 우리말로 거의 완전히 풀어 읽는 것으로 번역에 매우 가깝고, 음독구결은 한문 텍스트 및 그 어순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소극적으로 다는 구결이다. 즉, 석독구결은 한문에 대한 소양이 부족한 사람도 텍스트의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풀어 놓은 것이고, 음독구결은 한문에 어느 정도 소양이 있는 사람이라야 의미 파악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석독구결은 특정 학파나 종파에서 스승이 제자들에게 대대로 이어져 온 독법(讀法)을 전수하기 위해 달아 놓은 것이 많고, 음독구결에는 자신만의 메모 혹은 비망(備忘)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 많다. 그래서 석독구결은 대개 매우 정성스럽게 쓰여 있는 예가 많고, 음독구결은 성의 없이 갈겨쓴 예가 많다. 오늘날 전하는 구결은 대부분 음독구결에 해당한다.

또한 구결은 어순을 기준으로 순독구결(順讀口訣)과 역독구결(逆讀口訣)로 구분할 수 있다. 순독구결이란 한문에 구결을 달되 한문 본래의 순서대로 읽는 것이고, 역독구결이란 우리말 어순에 맞게 순서를 조정해 읽는 것으로 반독구결(返讀口訣)이라고도 한다. 음독인지 석독인지, 순독인지 역독인지의 구분을 조합하면 이론상 4가지 부류의 구결이 생긴다. 그러나 음독구결은 거의 순독구결이고 석독구결은 역독구결이어서 실제로 2가지 부류로 통일된다고 할 수 있다.

구결은 기입된 방식을 기준으로 기입구결(記入口訣)과 인쇄구결로 구분할 수 있다. 기입구결이란 한문을 읽을 때 책의 행간(行間)에 구결을 적은 것이고, 인쇄구결이란 한문 텍스트를 책으로 인쇄할 때는 한문뿐 아니라 구결까지도 넣어서 인쇄한 것이다. 기입구결의 경우, 구결을 기입하는 데 사용된 도구에 따라 분류할 수도 있다. 주로 붓에 먹을 묻혀 구결을 써넣었지만, 고려시대 중기에는 각필(角筆)로 종이의 표면을 긁어서 점이나 선 등의 흠집을 내는 방식으로 기입하기도 하였다. 전자를 묵서구결(墨書口訣), 후자를 각필구결(角筆口訣)이라고 한다.

구결이 문자인가 아닌가 하는 기준에 따라 문자구결과 점토구결(點吐口訣)로 구분할 수도 있다. 문자구결이란 한글이든 한자이든 한자의 약체자이든 문자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자토구결(字吐口訣)이라고도 한다. 점토구결이란 문자의 형식이 아닌 특수한 부호를 통해서 나타내는 것으로 부호구결, 구결자(口訣字)라고도 한다. 즉, 점토구결은 한자의 특정 위치에 점을 찍거나 선을 그어 우리말의 특정 언어 요소를 나타내는 부호이다. 점토구결은 2000년에 처음으로 발견되었는데, 일본의 오코토점(ヲコト点)과 매우 유사하여 이에 대한 한·일 사이의 영향 관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구결은 그 당시 지식인들이 한문 텍스트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여실히 보여 줄 뿐 아니라, 당시 우리말에 어떤 조사와 어미들이 있었는지 알려 준다. 이런 점에서 구결은 향찰(鄕札)·이두(吏讀) 등과 더불어 한국어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며, 특히 한글 창제 이전의 구결 자료는 그 중요성이 더욱 크다.

변천

우리나라에서 한문에 구결을 달아 읽는 관습이 생긴 것은 늦어도 통일신라시대인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의 학자 설총(薛聰)이 구경(九經)을 방언(方言)으로 읽어 후학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방언으로 읽었다는 것이 바로 구결을 달아 읽었다는 의미일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한문에 구결이 달려 있는 실물 자료 가운데 신라시대의 자료는 아직 발견된 것이 없으며, 가장 오래된 것이 고려시대인 11세기의 자료이다.

앞에서 살펴본 구결의 다양한 하위 유형은 시대와도 상관관계가 있다. 현전하는 11~12세기의 구결 자료는 대부분 각필 점토 석독구결이다. 13세기의 자료는 여전히 석독구결에 해당하지만, 각필에서 묵서로, 점토에서 자토로 이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14세기에 이르면 석독구결이 전면적으로 음독구결로 교체된다. 주자학의 유입과 선종의 유행이라는 학문적, 사상적 측면에서의 큰 변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또한 지식층의 한문 해독 능력이 전반적으로 크게 향상된 것도 구결의 간략화를 촉진했을 것이다.

14세기 이후에는 기입(묵서) 자토 차자(약체자) 음독구결(묵서·자토·약체자·음독구결) 일색이 된다. 한글 창제 이후 언해(諺解)되어 간행된 불경이나 경서에는 한글로 이루어진 인쇄구결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조선시대 전(全) 시기에 걸쳐 행간에 묵서로 약체자 음독구결을 기입하는 관행이 줄곧 대세를 이루었다.

구두를 어디서 끊어야 하는지, 어떤 구결을 달아야 하는지 등은 경전의 해석과 직결된 문제인 까닭에 당시 지식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따라서 구결은 스승에게서 제대로 배워서 정확하게 전수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게 작용하였다. 심지어는 왕이 경연에서 신하들과, 경전에 구결을 어떻게 달 것인지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쟁하기도 하였다. 『미암일기(眉巖日記)』와 『미암집(眉巖集)』「경연일기(經筵日記)」 등에서 선조와 유희춘(柳希春)의 의견 차이 및 그 해결 과정을 살펴볼 수 있으며, 『세조실록』과 『선조실록』에서도 구결에 대한 논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세조실록』 11년 12월 17일) (『선조실록』 7년 2월 14일).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미암일기(眉巖日記)』
  • 『미암집(眉巖集)』
  • 남풍현, 『국어사를 위한 구결 연구』, 태학사, 1999.
  • 이승재 외, 『각필구결의 해독과 번역』1~5, 태학사, 2005~2009.
  • 장경준, 『유가사지론 점토석독구결의 해독 방법 연구』, 태학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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