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고신첩(空名告身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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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관직이나 관품을 받는 사람의 이름 난을 비워둔 사령장.

개설

왕이 신하에게 관직이나 관작·시호·토지·노비, 또는 각종 자격이나 특전을 내려줄 때 발급하는 문서를 교지(敎旨)라 한다. 교지 중 관료에게 관작이나 관직을 내리는 교지를 고신(告身)이라 하는데, 현대 용어로는 사령장 또는 임명장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관직을 갖는 것은 누구나 원하는 일이었으므로 국가의 재정이 궁핍할 때, 공명고신첩(空名告身帖)을 발행하여 사서(士庶)로부터 전곡(錢穀)을 받고 이를 팔았다. 즉 공명고신첩에는 관계(官階)와 관직명만 기재되어 있고 이름 난이 비어 있으므로, 이것을 사서 자신의 이름을 써넣을 수 있었다. 공명고신첩으로는 실직에 나아갈 수 없어서 엄격한 의미로는 정식 관문서로서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이었다.

내용 및 특징

관리의 사령장으로는 교지 또는 교첩(敎牒)이 많이 알려져 있으나, 그 밖에도 교지·교첩·차첩(差帖)·첩(帖) 등 종류가 다양하다. 그러나『경국대전』등 법전에 수록된 규식에는 사령장에 대해 흔히 통칭으로 사용하는 교지·교첩이라는 용어는 나오지 않고, 고신이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어 법률적 용어와 사회적 용어가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경국대전』에는 문무관 4품 이상 고신식과 5품 이하 고신식, 당상관 처의 고신식과 3품 이하 처의 고신식, 그리고 추증식이 수록되어 있다. 흔히 문무관 4품 이상 고신을 교지라 칭해왔고, 5품 이하 고신을 교첩이라 칭해왔으나 이 통칭이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4품 이상 고신은 왕이 직접 임명하는 형식으로 문서가 작성된 것이므로 ‘교지’라는 용어가 문서의 첫 행에 쓰인다.

반면 5품 이하 고신은 인사 담당 부서에서 왕명을 받들어 관료를 임명하는 형식이므로 이조 혹은 병조가 왕명을 받들어 임명한다는 의미의 ‘이조봉교(吏曹奉敎)’, ‘병조봉교(兵曹奉敎)’로 문서가 시작된다. 즉 인사 담당 부서는 문관의 경우 이조, 무관의 경우 병조가 해당한다. 문무관 4품 이상 고신식과 5품 이하 고신식은 『전율통보』에도 서식이 수록되어 있다.

한편 관료의 고신은 문무관 4품 이상과 5품 이하로 구분하는 데 반해, 처(妻)의 고신은 3품 이상과 이하, 즉 당상관 이상인지 당하관 이하인지에 기준이 맞춰져 있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당상관 처와 3품 이하 처의 고신식은 『경국대전』에만 수록되어 있고 『전율통보』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추증은 그 대상자에 대한 범위 문제로 논란이 있었으나 『경국대전』에는 6품 이상 관원은 모두 3대조를 추증하는 것으로 정해졌고, 조상은 아니지만 일찍 사망한 처에 대해서도 추증할 수 있었다. 추증식은 『경국대전』과 『전율통보』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차첩은 이조와 병조에서 국왕의 구전(口傳) 명령을 받들어 관리를 임명할 때 발급한 문서이다. 차첩을 발급받는 관원은 임명 과정에서 복수의 후보 중 왕이 적임자라 판단하여 낙점을 함으로써 임명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임명 과정은 차첩의 서식에도 반영되어 있는데, 차첩의 서식은 『경국대전』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고 『전율통보』에 실려있다. 차첩 역시 왕이 직접 임명하는 것이 아니고 인사 담당 부서가 임명하는 것이므로 ‘이조위차정사(吏曹爲差定事)’ 혹은 ‘병조위차정사(兵曹爲差定事)’ 등으로 문서식이 시작되며, 문서의 마지막 행에 ‘첩(帖)’이라는 글자가 비교적 큰 글씨로 묵서(墨書) 혹은 묵인(墨印)되어 있다.

첩은 품고아문(品高衙門)에서 7품 이하의 관원을 임명하거나 혹은 관서의 장(長)이 속관(屬官) 등을 임명할 때 자주 사용되었으며, 서식은 『경국대전』에 수록되어 있다. 문서 서식으로는 차첩과 첩이 서로 비슷하나, 첩은 관서의 장이 왕의 재가를 받지 않고 임의로 속관 등을 임명할 때 발급하였으므로 “구전을 받들어 시행한다.”는 내용은 들어가 있지 않다.

이상은 고신에 대한 설명으로 흔히 교지·교첩으로 통칭되는 것과 달리 차첩·첩 등이 포함됨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들 고신들은 임진왜란 이후 국가 재정이 어려워질 때마다 공명고신첩으로 발급되었다. 이를 ‘공명첩’으로 약칭하기도 하는데, 현재까지도 많이 남아있다. 공명첩은 대개 지방관이 일정한 양의 전곡을 받고, 그 사람의 성명을 공명첩에 기입하여 교부하였다고 하는데, 현재 남아있는 공명첩을 보면 지금까지도 이름 부분이 공란으로 비어있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조선후기로 올수록 지방관이 일일이 이름을 기입할 수 없을 정도로 공명첩이 남발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또 실직보다는 품계만 내려주는 형식의 공명첩이 많이 남아있는데, 공명첩에 관계나 관직명이 기재되어 있어도 실직에 나아갈 수는 없었기 때문에 통정대부·가선대부 등 일정 품계에 봉하는 형식의 간단한 문서로 작성된 사례가 많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공명첩은 양란 이후 실질적으로 국가 재정상의 필요에 의해 발급된 사례도 있지만, 조선후기로 갈수록 남발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미 모칭유학(冒稱幼學) 등의 방법을 통해 상민들도 양반의 직역을 사용하게 되었고, 과거 제도가 문란해지면서 강고한 신분제가 와해되어 가는 가운데 양반 신분을 향한 열망을 한층 더 실현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공명첩이 활용되었던 것이다.

변천

관리 임용장 또는 사령장에 해당하는 문서는 고려시대에는 제서(制書)라는 명칭으로 쓰였고, 조선초기에는 왕지(王旨) 또는 관교(官敎)라 하였으며, 이후 교지로 불리다가 대한제국시대에는 칙명으로 칭해졌다. 조선시대로만 한정해보면 15세기 중반까지는 첫 행에 ‘왕지’라고 쓰인 문서가 다수 남아있으나, 『경국대전』 체제가 정착되면서 점차 이를 ‘교지’라는 용어가 대체하고 있다. 이에 기반하여 지금까지도 조선시대 사령장을 4품 이상의 경우 교지로, 그 이하에 발급한 것은 교첩으로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교지라는 용어는 관직 임명뿐 아니라 과거 합격 증서나 노비 사패, 증시(贈諡) 등에도 사용되므로 관직 임명에 관한 한 문서 명칭을 ‘고신’으로 하자는 논의가 많이 있다. 실제 『경국대전』과 『전율통보』 등에서 문서식을 고신식으로 지칭하고 있다는 면에서 상당 부분 타당한 일면이 있다. 조선전기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관리의 현직을 박탈할 때 관직과 함께 고신 또는 고신첩을 반납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공명고신첩 역시 ‘고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점에서 이들 논의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관직에 대한 사령장에는 교지·교첩 외에도 차첩·첩 등이 포함된다. 따라서 고신이라는 용어가 사령장의 하나인 차첩과 첩을 포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경국대전』과 『전율통보』는 이들의 문서식을 차첩식·첩식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고신식과는 구분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문제는 그런 의미에서 공명고신첩이 이름 부분을 공란으로 처리하여 발급한 사령장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지와 관련된다. 즉 인명이 적혀있지 않은 차첩과 첩을 공명고신첩으로 부를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또 흔히 사용하는 용어인 공명첩은 차첩과 첩을 포함하고, 공명고신첩은 고신 교지와 고신 교첩만 포함하는가 등등 고신류의 문서 종류와 분류를 둘러싼 해결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의의

공명고신첩은 문서의 발급 자체가 지닌 사회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 당시 관직이나 품계는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상위 신분인 양반임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공명고신첩은 양반이 되고 싶은 열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문서라고 할 수 있다.

양반 신분에 편입하고자 하는 열망이라는 측면에서 공명고신첩 발급의 의미를 조선후기로 갈수록 빈번하게 행해진 위보의 간행 비슷한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지방관이 이름을 써넣은 문서부터, 이름 부분이 공란으로 되어있는 문서, 관인이 있는 문서와 없는 문서 등 다양한 사례가 있으므로 이들을 통해 공명고신첩을 문서학적으로 규명하여 발급 절차와 방식을 보다 정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전율통보(典律通補)』
  •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1989.
  • 유지영, 「조선시대 임명 관련 교지의 문서형식」, 『고문서연구』 30, 2007.
  • 전경목, 「16세기 관문서의 서식 연구」, 『16세기 한국 고문서 연구』, 아카넷, 2004.
  • 정구복, 「조선조의 고신(告身) 검토」, 『고문서연구』 9·10,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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