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모궁악(景慕宮樂)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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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경모궁악 |
한글표제 | 경모궁악 |
한자표제 | 景慕宮樂 |
관련어 | 남공철(南公轍), 사도세자(思悼世子), 이휘지(李徽之), 장헌(莊獻), 정조(正祖) |
분야 | 문화/예술/음악 |
유형 | 작품 |
집필자 | 배인교 |
상세유형 |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경모궁악(景慕宮樂)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정조실록』 즉위년 8월 28일 |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景慕宮) 제례에서 사용하는 음악.
개설
정조는 즉위 후 아버지 사도세자의 시호를 장헌(莊獻)이라 하고 그 사당을 경모궁이라 하였다. 그리고 대제학이휘지로 하여금 경모궁 악장을 짓게 하였는데, 순조대에 남공철이 개찬하였다. 경모궁악(景慕宮樂)은 정조가 삼년상을 마친 후부터 연주되었으며, 이후 1899년(광무 3)에 장헌세자를 왕으로 추숭하기 전인 11월까지 연주되었다. 추숭 이후에는 경모궁에서 제례를 거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모궁악은 연주되지 않았다.
절차와 내용 및 특징
경모궁제례악의 절차는 종묘제례의 절차와 동일하며, 『속악원보』 권3에 그 악보가 전한다.
영신례에서는 「오휴곡(於休曲)」을 쓰는데, 이는 「보태평」의 「희문(熙文)」을 축소시킨 곡이다. 「희문」과 같이 청황종궁 평조이며, 하오(下五)인 황종으로 하강종지하면서 여러 번 반복하는 종지형을 쓰고 있다. 「오휴곡」의 악장은 ‘오휴석지(於休錫祉) 숙목리광(肅穆离光) 용패나장(龍旆裸將) 양양제방(洋洋帝傍)’으로 4언 4구로 만들어졌으며, 첫 번째 구인 ‘오휴석지’의 ‘오휴’를 곡명으로 사용하였다.
전폐례에서는 「제명곡(齊明曲)」을 쓰는데, 음악의 구성은 「오휴곡」과 동일하나 악장만 다르다. 「제명곡」의 악장은 ‘제아성명(齊我誠明) 장이승광(將以承筐) 의나사성(猗那思成) 사사공강(祀事孔康)’으로 역시 4언 4구이다. 「제명곡」의 곡명은 첫 번째 구인 ‘제아성명’에서 ‘제’와 ‘명’을 따온 것이다.
진찬례에서는 「혁우곡(赫佑曲)」을 쓰는데, 종묘제례악 중 진찬악인 「풍안지악(豊安之樂)」을 축소한 것이다. 「혁우곡」의 악장은 ‘아생기비(我牲旣備) 우등우두(于登于豆) 시향시의(是享是宜) 자손기우(子孫其佑)’이며, 4언 4구로 이루어져 있다.
초헌례에서는 「제권곡(帝眷曲)」, 「진색곡(震索曲)」, 「유길곡(維吉曲)」을 쓴다. 인입장인 「제권곡」의 악장은 ‘제권독생(齊眷篤生) 잠광준성(潛光駿聲) 승가상덕(升歌象德) 종경유갱(鐘磬有鏗)’이며, 가사 중에 ‘제권독생’에서 ‘제권’을 곡명으로 사용하였다. 음악적 내용은 「보태평」의 인입장인 「희문」을 본떠 만든 「오휴곡」과 동일하다. 「진색곡」은 「보태평」의 「기명(基命)」과 동일한 음악이나 악장만 다르다. 그 악장은 ‘진색응천(震索應天) 수명대리(受命代理) 영문여렬(令聞餘烈) 후손수지(後孫受祉)’이며, ‘진색응천’에서 곡명 ‘진색’이 나왔다. 인출장인 「유길곡」은 「보태평」의 인출장인 「역성(繹成)」을 축소하여 만든 곡이다. 그 악장은 ‘축고유길(祝告維吉) 향의불건(享儀不愆) 신기보우(神其保佑) 어천만년(於千萬年)’이며, ‘축고유길’에서 ‘유길’을 따 곡명으로 삼았다.
아헌과 종헌례에서는 「독경곡(篤慶曲)」, 「휴운곡(休運曲)」, 「휘유곡(徽柔曲)」을 쓴다. 인입장인 「독경곡」은 「보융은지악(報隆恩之樂)」이라고도 하며, 「정대업」의 인입장은 「소무(昭武)」를 축소한 곡이다. 악장은 ‘독경연휴(篤慶延休) 기상장발( 其祥長發) 준분조위(駿奔徂位) 숙난대월(肅難對越)’이며, 악장의 첫 구인 ‘독경연휴’에서 ‘독경’으로 곡명을 삼았다. 「휴운곡」은 「정대업」의 두 번째 곡인 「독경」과 동일한 곡이며, 악장만 다르다. 그 악장은 ‘천계휴운(天啓休運) 덕치중광(德治重光) 본지백세(本支百世) 비치이창(俾熾而昌)’이며 악장의 첫 구인 ‘천계휴운’에서 ‘휴운’을 채택하여 곡명으로 삼았다. 「휘유곡」은 인출장이며, 「정대업」의 인출장인 「영관(永觀)」을 축소시킨 곡이다. 악장은 ‘오호양전(於乎養顚) 휘유양덕(徽柔養德) 기향아성(旣享我誠) 신강하복(申降遐福)’이며, 악장의 두 번째 구인 ‘휘유양덕’에서 ‘휘유’로 곡명을 삼았다.
다음으로 철변두에서는 「유분곡(有芬曲)」을 연주하며, 「강안지악(康安之樂)」이라고도 한다. 그 악장은 ‘유분유심(有芬有芯) 식례공가(式禮孔嘉) 폐철불지(廢徹不遲) 등가영탄(登歌永嘆)’이다. 악장의 첫 구인 ‘유분유심’에서 ‘유분’으로 곡명을 삼았다. 그 음악은 진찬에서 연주하는 「혁우곡」과 같다.
마지막으로 송신례에서는 「아례곡(我禮曲)」을 연주하며, 「경안지악(景安之樂)」이라고도 한다. 그 악장은 ‘아례졸도(我禮卒度) 신악강이(神樂康而) 학어향막(鶴馭香邈) 송예선이(送霓旋而)’이며, 악장의 첫 구인 ‘아례졸도’에서 ‘아례’를 택하여 곡명으로 삼았다. 그 음악은 「유분곡」과 같이 진찬에서 연주하는 「혁우곡」의 선율을 연주한다.
위에서 정리한 악장은 모두 남공철이 개찬한 것이며, 이휘지가 지은 악장은 남공철이 개찬하기 전까지 사용되었다. 처음에 경모궁 제례의 영신에 3성(成)을 하였는데, 경모궁은 종묘나 문묘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신령에 대한 제향이니 9성을 쓰는 것이 옳다 하여 1799년(정조 23) 겨울의 납향(臘享)부터 9성을 연주하였다. 그러나 영신에 9성을 연주하게 되면 의식에 비해 음악이 길어서 촉급해질 우려가 있으므로 악곡을 줄였다. 그에 따라 정조는 악장을 손수 고치려 하였으나 미처 이루지 못하고 승하하였다. 1809년(순조 9)에 이르러 남공철이 경모궁 악장을 개찬하였는데, 1799년에 만들어놓은 악보에 의거하였다. 그는 정조의 유지에 따라 모든 악장을 4언 4구로 만들었다. 경모궁제례악은 대체로 종묘제례악의 것을 축소하거나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였으며, 종묘제례악의 축소판이었다.
경모궁제례악에서 사용했던 악기는 모두 경모궁악기조성청에서 만들었다. 1776년(정조 즉위) 9월에 장악제조(掌樂提調)서호수(徐浩修)의 청에 의하여 경모궁악기조성청을 두기로 하고(『정조실록』 즉위년 8월 28일), 김한기(金漢耆)와 정상순(鄭尙淳)을 악기도감 제조로 삼았으며, 그 이듬해 5월에 악기 조성을 끝냈다.
악기 편성은 등가에 19명, 헌가에 21명을 두었다. 악기는 향악기와 당악기, 아악기가 섞여 있어 종묘제례악의 것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일무(佾舞)는 6일무로, 문무(文舞)와 무무(武舞)가 각각 36인씩 편성되어 있었다.
의의와 평가
정조대에 만들어진 경모궁제례악은 정조의 효심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음악이다. 그 음악을 구성하는 방식이 종묘제례악의 것을 본뜨거나 축소시키는 방법으로, 전통시대의 음악 창작 기법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 『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景慕宮樂器造成廳儀軌)』
- 『시악화성(詩樂和聲)』
- 『경모궁의궤(景慕宮儀軌)』
- 『속악원보(俗樂源譜)』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장사훈, 『최신 국악총론』, 세광음악출판사, 1985.
- 김종수, 「경모궁 제례악 연구」, 『민족음악학』 18집 ,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