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군(裌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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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입던 예복용 겹치마.

내용

군(裙)은 삼국시대부터 여인이 입던 치마로, 군의 원형은 상(裳)이다. 군은 상에 폭을 더하여 아름답게 만들어 허리 아래로 길게 주름을 잡았으며, 길이는 땅에 끌릴 정도로 길었다. 『북사(北史)』 고려조(高麗條)에 “고구려의 부인은 치마[裙]와 저고리[襦]를 입고 선을 둘렀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군은 중국 의복의 영향으로 보이며 일본에까지 전수되었다.

조선시대 왕 이하의 문무 관리들은 조복·제복 등의 예복에 상을 착용하였다. 이때의 상은 총 7폭으로 앞 3폭, 뒤 4폭인데 따로 떨어져 있다. 여자들의 치마는 평상용인 짧은 치마와 긴 치마가 있고, 예복용으로는 스란치마·대란치마가 있다. 조선시대 분묘에서 출토되는 예복용 치마는 평상용에 비하여 폭도 넓고 길이도 무척 길어서 땅에 끌리는 정도이다. 안동권씨 묘에서 출토된 화문단 치마는 다른 치마보다 30㎝ 이상 길이가 긴 것으로 예복용 치마로 추측된다.

1417년(태종 17)에는 지신사(知申事)조말생(趙末生)을 보내 두 사신에게 문안하면서 보낸 물품에 광폭의 비단으로 만든 겹치마인 광견겹군(廣絹裌裙)이 포함되어 있었고(『태종실록』 17년 8월 2일), 1467년(세조 13) 아내를 얻는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에게 예단으로 보낸 물목에도 면주로 만든 겹치마인 면주겹군(綿紬裌裙)이 포함되어 있었다(『세조실록』 13년 10월 22일).

1480년(성종 11) 성절사(聖節使)한한(韓僴)이 북경에 싸 가지고 가는 별진헌(別進獻)의 물목에도 초록면주겹군아(草綠綿紬裌裙兒)·수록면포겹군아(水綠綿布裌裙兒)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성종실록』 11년 8월 19일). 1481년(성종 12) 우의정윤호(尹壕)의 딸을 성종의 계비(繼妃)로 삼을 때 고명(誥命)을 내려 관복(冠服)·저사라(紵絲羅)·서양포(西洋布) 등의 물건을 하사하였는데, 그중에 청암화저사겹군(靑暗花紵絲裌裙)이 포함되어 있었다(『성종실록』 12년 5월 16일). 위의 기록으로 보아 겹군은 선물용과 하사품으로 사용되던 예복용 겹치마임을 알 수 있다.

용례

遣知申事趙末生 問安於兩使臣 贈各十二升苧麻布幷二十匹十一升苧麻布幷二十匹人蔘三十斤滿花方席滿花寢席幷十二張石燈盞一事念珠百貫襦衣一襲廣絹汗衫廣絹裌裙貂皮虛胸貂皮冠貂皮耳掩貂皮裏紅段子護膝豹皮裏黑鹿皮靴精具黑斜皮套狸皮裏白鹿皮分套各一 靜妃命內官 贈兩使臣各細麻布八匹苧布七匹 黃儼伴人黃貴等十海壽伴人劉信等十 皆給苧麻布各一匹襦衣一襲(『태종실록』 17년 8월 2일).

참고문헌

  • 유희경, 『한국복식문화사』, 교문사, 2001.
  • 김희정, 「상(裳)과 군(裙)에 관한 연구 -통일신라시대까지-」, 서울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