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책관(介幘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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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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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개책관 |
한글표제 | 개책관 |
한자표제 | 介幘冠 |
상위어 | 관모(冠帽) |
동의어 | 개책(介幘) |
관련어 | 악공(樂工) |
분야 | 생활·풍속/의생활/관모 |
유형 | 의복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이민주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개책관(介幘冠)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15년 3월 22일, 『세종실록』 15년 3월 22일 |
조선시대 악공(樂工)들이 조회(朝會)와 제향(祭享)에서 쓰던 관모(冠帽).
내용
1433년(세종 15) 상호군(上護軍)박연(朴堧)이 말하기를, 우리나라에서는 당상(堂上)·당하(堂下)의 여러 악공들이 흑포두건(黑布頭巾)을 쓰니 모양이 좋지 않고 또 근거가 없으므로 당송(唐宋)의 제도에 따라 개책관(介幘冠)으로 고쳐 쓰게 하자고 하였다(『세종실록』 15년 3월 22일). 이때부터 악공들은 조회와 제향 때 개책관을 쓰게 되었다. 송나라의 개책(介幘)은 가죽으로 만들고 장식으로 검은 칠을 했으나, 지금은 종이를 배접하여 만들고 테두리에는 철사를 두르며, 안에는 고운 베를 바르고 검은 칠을 하며 자황(雌黃)으로 곱게 그린 후 청색 명주 끈을 단다.
용례
上護軍朴堧 上祭樂冠服之制 堂上堂下衆工之冠 唐宋之制 朝會祭享 皆用介幘冠 我朝黑布頭巾 粗惡無據 乞依唐宋 改用介幘冠(『세종실록』 15년 3월 22일)
참고문헌
- 『악학궤범(樂學軌範)』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