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석(蓋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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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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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개석 |
한글표제 | 개석 |
한자표제 | 蓋石 |
동의어 | 덮개돌, 뚜껑돌, |
관련어 | 문비석(門扉石), 문역석(門閾石), 석실(石室), 예석군(曳石軍), 왕릉(王陵) |
분야 | 문화/예술/건축 |
유형 | 물품·도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시대 |
집필자 | 정정남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개석(蓋石)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태조실록』 5년 9월 28일, 『세종실록』 2년 1월 3일 |
왕릉의 석실 상부를 덮는 석재.
내용
개석(蓋石)은 한자 그대로 덮개돌로서, 왕릉의 석실을 구성하는 석재 중 상부를 덮는 석재이다. 석실은 좌우에 방석(方石)을 세우고 북쪽에 우석(隅石), 남쪽에 문비석(門扉石)과 문역석(門閾石)을 설치한 후 덮개돌로 개석을 덮는다. 개석은 넓이 약 2.4m, 길이 약 4.2m, 두께 약 0.9m로 매우 큰 석재를 필요로 한다. 합장묘의 천봉(遷封) 시에는 이러한 석재가 2개나 요구되어 개석의 채석에 많은 공력과 노동력이 필요하였다.
개석을 채석하는 인력을 예석군(曳石軍)이라 하는데, 개석을 운반하고 다루는 과정에서 석공이 압사하거나 다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에 태종(太宗)은 개석을 1개의 덩어리로 운송하지 말고 2개로 쪼개어 사용할 것을 명하였다. 또한 세조(世祖) 이후에는 왕릉에 석실을 사용하지 않고 회곽릉을 조성하기 시작하여 이러한 문제는 사라지게 되었다.
용례
全羅道役夫輸壽陵蓋石 顚仆傷折手足者 八十九人(『태조실록』 5년 9월 28일)
石室廣八尺高七尺長十一尺(尺用營造尺 下倣此) 兩旁石二(兩邊各一) 高各八尺長各十一尺五寸厚各二尺五寸 北隅石一 高八尺長十一尺厚二尺五寸 蓋石二 廣各八尺長各十四尺厚各三尺 加置蓋石一 廣五尺 長十尺五寸中厚二尺四邊厚一尺(『세종실록』 2년 1월 3일)
참고문헌
- 김상협, 「조선왕실 석실 및 능상구조의 변천에 관한 연구」, 명지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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