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7년 빅토리아 양식으로 지어진 주택으로 미국 워싱턴 DC 워싱턴에 위치한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 1889년 2월부터 16년 동안 미국 주재 대한제국 공사관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당시 재외 공사관으로는 유일하게 단독 건물이었고, 현재까지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유일한 공사관 건물이기도 하다. 1877년에 워싱턴(Washington D.C.) 개발위원장을 지냈던 펠프스(Seth Ledyard Phelps, 1824∼1885)의 집이다. 1887년에 초대 주미 전권공사로 파견된 박정양(朴定陽, 1841∼1904)은 고종이 하사한 내탕금 2만5천달러를 이용하여, 당시 미국 국무차관이자 펠프스의 사위였던 브라운(Sevellon A. Brown)에게 구입하였다. 해외공관 중 유일한 조선정부 소유 건물이었다. 이듬해부터 공사관으로 사용하면서 1891년 12월에 등기를 마쳤고, 1893년에는 시카고 박람회를 준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05년에 을사늑약으로 공사관의 기능을 잃었고, 1910년에는 일제에 강제로 빼앗겼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흑인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센터로 이용되었다가 미국 트럭노조인 팀스터스 유니온(Teamsters Union)의 사무실로 쓰였으며, 1972년부터는 개인 집으로 사용되었다. 2012년에 한국정부가 350만달러를 들여 다시 구입하였고, 이듬해부터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복원작업을 진행하였다.
이 건물은 로간 서클(Logan Circle)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워싱턴 D.C. 전체를 설계하였던 랑팡(Pierre Charles L'Enfant, 1754∼1825)이 백악관과 듀퐁 서클(Dupont Circle)을 연결한 삼각점의 한 부분이다. 주변에는 당시에 지은 빅토리아 양식의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보존 상태가 좋아서 1972년에 역사보존지구로 지정되었다. 1960년대에는 주로 흑인이 살았기에, 워싱턴 D.C. 흑인 문화의 중심지라고 불린다. 1890년대에 워싱턴 D.C.에 자리하였던 30여 곳의 외국 공사관 중에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건물이다. 미국과의 독자적인 자주 외교를 지향하였지만 일본에 강제로 빼앗겨 독립정신을 일깨우게 한 대한제국시기의 대표적인 외교 관련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