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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와 임오화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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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1=최봉영, 『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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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6일 (수) 11:0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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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룬 임금

왕이 된 사도세자의 아들

조선의 제22대 임금 정조(1752~1800, 재위 1776〜1800)는 훗날 장조로 추존되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8세가 된 정조가 세손으로 책봉된 해에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세상을 떠났고 두 해 뒤에 영조는 세손을 자신의 맏아들인 효장세자의 양자로 삼았다. 세손의 왕위 계승의 명분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당시는 아버지가 죄인이면 자식들도 처벌받는 연좌제가 엄격히 지켜지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죄인으로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로 남아 있다가는 왕위 계승은커녕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1775년 이미 82세가 된 영조를 대신하여 대리 청정을 시작하였고, 다음 해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왕조의 중흥과 문화 정치를 이룬 정조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자신이 효장세자의 아들이 아닌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당당하게 밝혔다. 그리고 왕권을 위협하는 노론 벽파에 대한 숙청을 단행했다. 정조는 고질화된 붕당의 폐습을 없애고 탕평 정치를 구현하는 데 힘쓰면서 조선 왕조의 중흥과 문화 정치를 이룩하려고 노력했다. 당파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을 중심으로 관리를 선발하고자 한 것이다.

또 규장각을 설치하여 신분의 제약 없이 능력과 학식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였으며, 세손 시절부터 자신을 지켜주었던 홍국영을 도승지로 삼고 날쌘 병사들을 따로 뽑아 왕궁을 호위하는 숙위소를 창설하였다. 정조를 배척하는 세력에 맞설 인재를 길러내는 기관으로 규장각을 세우고, 문화 정치를 펼치기 위한 인물들을 양성했다.

그는 서자 출신도 능력이 있으면 가까이 중용하였으며, 암행어사를 보내 백성들의 처지를 자주 살폈다. 그는 규장각 서재에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고 써 붙여놓고 보았다고 한다. 모든 냇물에 고루 비추는 밝은 달과 같은 주인 늙은이라는 뜻으로, 백성을 골고루 보살피고자 하는 정조의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정조 시대는 중국에 대한 사대 사상이 사라지고 민족주의에 의한 독자적인 문화가 이룩된 문예부흥기였다. 그림에서는 ‘진경산수’가, 글씨에서는 ‘동국진체’라는 독자적인 풍이 유행했다. 이전까지는 그림을 그려도 중국의 화첩을 베끼는 수준이었는데 이때부터 진짜 우리 산천의 풍경을 그리게 된 것이다. 이런 문화적 발전이 양반층에만 한한 것이 아니고 중인 이하 평민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이른바 ‘진경 시대’라는 문화적 황금기를 이뤘다.

부모를 위한 신도시, 화성

정조의 역사적 사업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신도시 화성 건설이었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를 화산으로 이장하면서 수원에 신도시를 건설하고 성곽을 쌓았으며 수원에 화성행궁을 지었다. 화성은 현륭원을 원래 수원부가 있던 화산으로 이전하기 위해 만든 신도시이다. 거기에 서울 남쪽의 교통 요지에 경제적으로 탄탄한 도시를 새로 건설하여 왕권의 배후 도시로 삼으려는 정치적 목적이 더해진 대 역사였다.

정조는 현륭원 천장 이후 열두 차례에 걸친 능행을 하였고 이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 행사를 거행했다. 1795년에 정조는 5천여 명의 인원과 800필의 말을 동원한 대행차를 했다. 화성 행차 중 가장 규모가 컸던 이 을묘원행은 아버지 능과 가까운 화성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 잔치를 열기 위한 행차였다. 정조는 이 행차에서 군복 차림으로 말을 탄 채 행렬을 이끌었는데, 행렬에 동원된 3천여 명의 군사는 정조가 창설한 친위부대 장용영의 소속이었다. 정조는 군복을 입고 장용영 군사를 지휘함으로써 강력한 왕권과 뚜렷한 개혁 의지를 나타냈던 것이다.

정조는 그로부터 5년 정도 더 통치를 하다가 세자가 15세 되는 해에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상왕으로 물러앉아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 머물려고 화성을 건설했다고 한다. 그러나 1800년 49세 된 정조는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 순조가 왕위를 계승했다.

관련항목

참고문헌

  •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와 임오화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최봉영, 『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3.
정병설, 『권력과 인간』, 문학동네, 2012.


『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는 사도세자의 죽음이 불러들인 결과에 대한 이야기이다. 임오화변이 일어나게 된 원인과 관련하여 세자가 어떠한 삶을 살았고 왜 뒤주에 갇혀서 죽을 수 밖에 없었는가를 이야기한다. 더불어 세자가 그렇게 죽은 이후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 대한 이야기이다.

『권력과 인간』에서는 사도세자가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조를 공격하려다 반역죄에 걸렸다는 『한중록』의 설명을 바탕으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이재난고』 등의 각종 역사서, 개인 문집 등 다양한 사료를 활용하여 폭넓은 관점에서 사도세자의 죽음을 분석하고 고찰하였다. 특히, 사도세자가 태어날 때부터 성장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영조의 반응과 정조의 역사, 왜곡 과정 등 1세기에 이르는 역사를 다각도로 살피며 사도세자 죽음의 본질에 접근하였다. 더불어 영조와 사도세자를 둘러싼 궁중 사람들의 현실, 꿈, 욕망을 두루 다루며 조선 최고의 비극, 사도세자의 죽음을 더욱 적확하고 객관적으로 조명하였다.


  • 정조의 생애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한영우, 『정조평전: 성군의 길(상)』, 지식산업사, 2017.
한영우, 『정조평전: 성군의 길(하)』, 지식산업사, 2017.


『정조평전: 성군의 길』은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의 기대와 갈등 관계를 상세히 다루며 지은이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한 학계의 여러 해석들 가운데 하나만을 근본 원인으로 보면 안 되고, 여러 가지 관찬 문서와 사사로운 기록까지 종합하여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정조의 일생을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의 사서를 중심으로 하여 연대별로 정리하였다.


  • 정조의 국가경영과 사상, 문화정치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김문식, 『정조의 제왕학』, 태학사, 2007.
노대환, 『영조 시대를 계승한 정조의 인간상』,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6.
김문식 외,『영·정조대 문예중흥기의 학술과 사상』,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4.
정옥자, 『정조의 문예사상과 규장각』, 효형출판, 2001.
박현모, 『정치가 정조』, 푸른역사, 2003.
정조 지음, 신창호 옮김, 『정조 책문, 새로운 국가를 묻다』, 판미동, 2017.
정조 지음, 신창호 옮김, 『정조 책문, 새로운 국가를 묻다』, 판미동, 2017.


『정조의 제왕학』은 정조의 학문과 저술을 제왕학의 측면에서 풀어보고 있다. '학자 군주'를 조선 국왕의 특징으로 파악하며 '정치가 정조'보다 '학자 정조' 혹은 '사상가 정조'를 밝히는 데 초점을 두었다.

『영조 시대를 계승한 정조의 인간상』은 정조와 그의 시대를 꼼꼼하게 들여다봄으로써 왕으로서의 정조와 인간 이산(李祘)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있다. 정조는 집권하면서부터 자신의 목표는 오로지 영조가 백성을 위하였던 지극한 뜻을 이어받는 데 있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좀처럼 언로가 활성화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신료들과 소통하고자 노력하였다. 신료들뿐만 아니라 관직이 없는 일반 사인(士人)들과의 교감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런 정조의 국왕으로서의 자질과 덕목을 살펴보고, 정조의 인간적 면모를 흥미롭게 소개하는 책이다.

『영·정조대 문예중흥기의 학술과 사상』은 영ㆍ정조시대의 학술과 사상에 대해 여섯 가지 주제로 살펴보고자 했다. 이 시대의 학술과 사상을 규명하는 일은 조선의 문화를 심층적이고 구조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18세기 영ㆍ정조시대의 주자학, 양명학, 예학, 역사학, 북학, 상수학과 그 속에 투영되어 있는 시대적 상황 등을 분석함으로써 18세기 조선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초석이 되고자 하였다.

『정조의 문예사상과 규장각』은 규장각이 문화정책 수립, 추진기관이라는 전제하에, 규장각의 교육기능에 초점을 맞춰 젊은 문신의 재교육제도인 초계문신제(抄啓文臣制)를 중점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정조의 인재양성의 실상에 접근한 책이다. 37세 이하의 연소한 문신을 선발해 재교육시키는 교과내용과 문체책(文體策)을 분석하면 정조의 문체정책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가 정조』는 국가를 하나의 학교로 보고 신하를 가르치려 했고 때로는 원칙적인 책략으로 노련하게 현실 정치를 이끌어 간 예언가이며 미완의 개혁가로 생을 마친 고독하고 우유부단했던 조선 왕조 최고의 정치가인 정조의 리더십을 재조명했다. 정조의 정치와 학문 및 정조의 개혁정치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했다.

『정조 책문, 새로운 국가를 묻다』는 정조의 『책문』을 쉬운 우리말로 완역한 최초의 단행본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한 나라의 지도자가 앞으로 함께 정치를 펼쳐 나갈 인사들과 함께 인재등용, 문예부흥, 민생과 복지, 균형발전 등 모든 국정 현안을 논의하고자 했던 기록으로서, 정조가 꿈꾸던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과 최고지도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담고 있다.

『정조대의 예술과 과학』은 정조대에 편찬되거나 간행된 문헌들을 발굴하여 소개하는 책이다. 정조대의 전례와 음악, 악서, 병서, 의서 등에 관해 개괄적으로 정리했다.


  • 정조의 화성 경영 및 행차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최홍규, 『정조의 화성 경영 연구』, 일지사, 2005.
한영우,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 효형출판, 2013.
김준혁, 『화성, 정조와 다산의 꿈이 어우러진 대동의 도시』, 더봄, 2017.
유봉학, 『정조시대 화성 신도시의 건설』, 백산서당, 2001.


『정조의 화성 경영 연구』의 제1장에서는 정조의 화성 신읍치의 건설과 화성 성역, 11년간의 화성 경영의 내용 및 특성과 그 의의를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제2장에서는 정조가 춘ㆍ추행으로 시행한 1차 원행의 내용과 대화성 읍민정책의 내용을 사안별로 고찰하였다. 제3장과 제4장에서는 『화성성역의궤』와 『원행을묘정리의궤』의 편찬 과정, 내용 구성, 의의 등을 탐구하였다. 제5장에서는 화성행궁의 건립 과정, 구성과 배치, 최근의 복원 과정과 역사적 의의를 살펴보았다. 제6장에서는 조선후기의 실학이 발전하는 데 온상이 되어온 경기지역의 실학인물을 군현별로 파악하고, 제7장에서는 경기지역사의 연구 현황과 과제를 화성과 수원지방사 연구와 관련하여 지방사적 관점에서 정리하였다. 정조의 반차ㆍ충효의 배다리 건너기 등 화성행차의 모든 과정을 풍부한 도판과 흥미로운 역사 해설로 함께 담았다.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은, 정조가 야심차게 펼쳤던 8일간의 정치 이벤트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는 조선 최대의 축제를 만들어가는 준비 과정은 물론이고, 화성행차의 백미로 손꼽히는 배다리 건너기를 준비하기 위해 직접 설계에 참여하고 공사도 군대식으로 치밀하게 조직ㆍ관리하는 정조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그 결과 11일 만에 배다리를 건설하여 조선시대 다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성곽, 그리고 백성을 위한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에 화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화성의 의의는 그뿐만이 아니다. 화성에는 정조의 인본주의와 조선의 개혁을 추진하고자 한 깊은 마음이 담겨 있으며, 이런 화성을 설계한 이가 다산 정약용이다. 저자 김준혁은 바로 이 점을 주목했다. 『화성, 정조와 다산의 꿈이 어우러진 대동의 도시』는 정조와 다산의 꿈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인간 존중의 정신이 어떻게 화성에서 구현되었는가를 이야기한다. 이에 슬기로운 임금 정조와 어진 신하 다산이 꿈군 백성을 위한 '대동의 도시 화성'을 주제로 삼아 정조와 다산 그리고 화성이야말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대정신임을 전한다.

『정조시대 화성 신도시의 건설』은 정조 서거 200주년을 맞아 200년 전 선인들의 차원 높은 구상과 세련된 실천을 재조명하여 화성의 전체적 실상을 드러내고, 그와 관련된 정조시대 문화에 대해 고찰한 연구서이다. 화성 신도시 건설의 정치적 조건과 화성에서 실현된 상업 및 농업 진흥책 등 선진적 경제정책, 첨단 신도시로서의 도시기반시설과 성곽의 건설과정,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였던 정약용의 구상 등을 심도 있게 고찰하고, 화성의 전모와 화성 신도시 보존의 여러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