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역사와 문화 연구의 기본 자료,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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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역사와 문화 연구의 기본 자료, 조선왕조실록
왕도 볼 수 없었던 사초
실록(實錄)은 조선시대에 왕대별로 편찬된 통치 역사의 기록이다. 첫번째 임금 태조로부터 마지막 임금 순종까지의 기록이 있으나, 일제강점기에 편찬된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을 제외한 태조-철종 간 25대 472년 간의 역사 기록을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라고 통칭한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세상을 떠나고 다음 왕이 등극하면 실록청(實錄廳)을 설치하여 전 왕대의 실록을 편찬하였다. 실록을 만드는 기본 자료로는 사초(史草)를 비롯하여,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의정부등록(議政府謄錄)』 등 정부 주요 기관의 기록과 개인 문집 등이 사용되었다. 후세에는 『조보(朝報)』,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일성록(日省錄)』도 중요 자료로 쓰였다.
사초는 전 왕 재위 시에 사관(史官)들이 작성해둔 기록으로 실록의 중심 자료가 되었다. 여덟 명의 전임 사관은 궁중에서 항상 임금 곁에 있다가 임금의 언행을 비롯하여 임금과 신하가 국사를 논의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사실대로 기록하였다. 때로는 인물들에 대한 사관의 평가를 쓰기도 했다. 또 풍속의 미악(美惡)과 향토(鄕土)의 사정(邪正) 등을 보고 들은 대로 기록하여 사초를 작성하였다.
사초는 성격상 비밀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사관 이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였다. 필화(筆禍)를 막기 위해 임금도 열람할 수 없었다. 사초를 본 사관이 그 내용을 누설할 경우에도 중죄에 처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엄하게 단속한 덕분에 사관은 사실을 그대로 기록할 수 있었다.
3단계로 편찬하여 네 곳에 보관
실록 편찬은, 사초를 비롯한 각종 기록들을 실록청에 모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실록청의 구성원은 모두 춘추관의 관원이었는데, 다음의 세 단계를 거쳐서 실록을 완성하였다. 첫째 단계는, 여러 개로 나뉜 방에서 각종 자료 중에 중요한 사실을 골라내 초고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둘째, 중심 부서인 도청에서 초고에서 빠진 사실을 추가하고 불필요한 내용을 삭제하며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여 중간 원고를 작성하였다. 셋째, 실록청의 우두머리인 총재관과 도청 당상이 중간 원고의 오류를 다시 한 번 더 수정하고 체재와 문장을 통일하여 최종 원고를 만들어낸다.
실록이 완성되면 여러 부를 더 등사하여 서울과 지방의 사고(史庫)에 각기 나누어 보관하였다. 전쟁과 천재지변으로 인한 실록 소실의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리고 편찬에 이용한 기본 자료인 춘추관 시정기와 사관의 사초 및 실록의 초고와 중간 원고는 서울 자하문(紫霞門) 밖 차일암(遮日巖) 시냇물에서 세초(洗草)하였다. 세초란 종이의 먹물을 씻어내는 것인데 기밀이 누설되는 것을 막고 종이를 재활용하려는 목적으로 시행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 등 네 군데 사고에 실록을 보관하였는데, 전주사고(全州史庫)에 보관된 실록을 제외한 나머지 실록은 임진왜란 당시 모두 소실되었다. 이 때 전주 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지킨 사람은 민간인이었다. 전라도 태인의 선비인 안의(安義)와 손홍록(孫弘祿)이 1592년 6월 일본군이 금산에 침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재(私財)를 털어서 『태조실록(太祖實錄)』부터 『명종실록(明宗實錄)』까지 13대의 실록 804권과 기타 소장 도서들을 정읍의 내장산으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다음해 7월에 정부에 넘겨줄 때까지 1년여 동안 번갈아가며 지켰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전주사고 실록을 기준으로 다시 4부를 베끼고 이를 춘추관과 깊은 산 속에 마련한 서고에 보관하였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실록
『조선왕조실록』은 정치뿐만 아니라 각종 제도, 법률, 경제, 사회, 풍속, 천문, 지리, 과학, 예술, 학문, 사상, 윤리, 도덕, 종교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망라하는, 조선시대의 역사와 문화 연구의 기본 자료이다. 그 방대한 분량이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 등에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귀중한 역사 기록물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정족산본 1,181책, 태백산본 848책, 오대산본 27책, 기타 21책을 포함해서 총 2,077책이 일괄적으로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원래 한문으로 기록되어 일반인들이 읽기 어려웠다. 그러나 1968년부터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1972년부터는 민족문화추진회가 국역 사업을 시작하여 1993년에 국역본 413책이 완성되어 간행되었고, 1995년에는 CD-ROM으로도 제작되었다. 북한에서도 1980년에 『리조실록(李朝實錄)』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본 400권을 출판했다.
관련항목
- 조선왕조실록
- 실록청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의정부등록(議政府謄錄)』
- 『조보(朝報)』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일성록(日省錄)』
- 사초
- 사관
- 사고
참고문헌
-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한다면...
• 이성무, 『조선왕조실록 어떤 책인가』, 동방미디어, 1999. |
『조선왕조실록 어떤 책인가』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에 대해 구체적으로 탐구한 책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왜 정변의 원인이 되었는지, 폐위된 왕들에게도 실록이 있었는지 등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몇 가지 의문점을 되짚어보고, 『조선왕조실록』의 편찬과 보관과정, 오늘날 『조선왕조실록』의 대중화 작업과 CD-ROM 제작까지 다양한 사료를 통해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궁금증을 파헤쳤다.
- 조선왕조실록의 사론(史論)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조선왕조실록번역팀, 『사필 사론으로 본 조선왕조실록』, 한국고전번역원, 2016. |
• 윤용철, 『조선왕조실록 졸기』, 다울, 2007. |
조선왕조실록에는 사건의 시말이나 시비는 물론이고 관직 임명에 대한 의견, 생전 또는 사후의 인물에 대한 평가 등 주관적인 의견도 실려 있는데, 이것이 바로 ‘사신왈’, ‘사신논왈' 등으로 시작하는 사론이다. 사론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은 조선왕조실록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서, 실록의 본질적 가치를 논할 때, 사론을 빼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론은 조선 전기의 실록에만도 3400여 건이 실려 있는데, 이 시기 사론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그 가운데 약 57%가 인물에 대한 논평이라고 한다. 『사필 사론으로 본 조선왕조실록』은 사론을 통해 실록의 본질적인 가치를 짚어 보고자 기획되었다. 전체를 2부로 구성하여 1부에는 실록 속 다양한 사안을 논평한 사론들을, 2부에는 사관과 실록의 발자취를 실었다.
『조선왕조실록 졸기』는 전방위적인 기록들 중에서 조선 전ㆍ중기에 가장 영향력 있던 인물 23인을 선정하여, 실록에 기록된 그들의 졸기 및 그 졸기와 관계된 사건과 일화들을 정리한 책이다. 졸기(卒記)는 말 그대로 죽음의 기록으로, 해당 인사에 대한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내용을 전해준다. 이 책에서는 먼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해당 인물의 졸기를 원문 국역으로 배치하고, 그 졸기에 나타난 내용을 실록의 기록에서 구체적으로 검색해 기술하였다. 인물의 업적이나 과(過), 그리고 사건에 대한 주관적인 입장을 배제하고, 실록에 나타난 기록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사실 전달에 중점을 두었다. 또한 졸기에 오르지 않은 몇 명에 대한 이야기도 졸기의 형식을 빌어 포함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