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양주 회암사 나옹선사부도 및 석등"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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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탑 앞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석등 역시 승탑과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ref>김창균,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1406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3년 10월 14일.</ref> 4각을 기본형으로, 3단의 받침 위로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을 올린 후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화사석은 앞·뒷면에 창을 내었다.<ref>"[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0500000,31&flag=Y 나옹선사부도및석등]", 문화재검색,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유산정보』<sup>online</sup></online></html>, 문화재청.</ref> 흥미로운 것은 화사석이 하나의 돌로 되어 있지 않고 두 개의 직육면체로서 옥개석(屋蓋石)을 받들게 하고 있는 점이다.<ref>김창균,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1406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3년 10월 14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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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탑 앞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석등 역시 승탑과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ref>김창균,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1406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3년 10월 14일.</ref> 4각을 기본형으로, 3단의 받침 위로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을 올린 후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화사석은 앞·뒷면에 창을 내었다.<ref>"[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0500000,31&flag=Y 나옹선사부도및석등]", 문화재검색,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유산정보』<sup>online</sup></online></html>, 문화재청.</ref> 흥미로운 것은 화사석이 하나의 돌로 되어 있지 않고 두 개의 직육면체로서 옥개석(屋蓋石)<ref>빗돌이나 석등을 세운 위에 지붕 모양으로 만들어 덮어 얹는 돌</ref>을 받들게 하고 있는 점이다.<ref>김창균,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1406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3년 10월 14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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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1일 (화) 22:23 기준 최신판

나옹선사부도및석등
(儺翁禪師浮屠및石燈)
답사 이후 추가 예정
대표명칭 나옹선사부도및석등
영문명칭 Stupa of Master Naong and Lantern at Hoeamsa Temple, Yangju
한자 儺翁禪師浮屠및石燈
주소 경기 양주시 회암동 산8-1
문화재 지정번호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0호
문화재 지정일 1974년 9월 26일
소유자 양주 회암사
관리자 양주 회암사
크기 높이 3.5m
건립시대 고려시대
관련승려 혜근(慧勤)
관련탑비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정의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檜巖寺)에 있는 고려 후기의 승려 나옹선사 혜근(懶翁禪師 慧勤, 1320-1376)승탑과 석등.

내용

개요

이 승탑은 공민왕 때의 왕사(王師)나옹선사 혜근(懶翁禪師 慧勤)의 묘탑(墓塔)이다. 나옹선사는 1372년(공민왕 21) 국왕의 후원을 바탕으로 회암사(檜巖寺)를 대대적으로 중창하다가 1376년(우왕 2)에 여주 신륵사(神勒寺)에서 입적하였다.[1][2]

나옹선사의 비(碑)인 선각왕사비(禪覺王師碑)의 내용에 따르면 나옹선사가 입적하고 4년 후인 1381년(우왕 7)에 세워졌다고 하므로, 나옹선사의 승탑 역시 이때 함께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3]

승탑과 석등의 배치는 승탑 앞에 네모난 석상(石牀)을 놓고, 그 앞쪽에 석등을 세운 형태를 취하고 있다. 나옹선사의 승탑과 함께 회암사에 남아 있는 지공선사(指空禪師)의 승탑탑비, 그리고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승탑탑비는 나란히 함께 세워져 있는 반면, 나옹선사의 승탑은 탑비인 선각왕사비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다.[4][5]

나옹선사의 승탑은 석등과 함께 1974년 9월 26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다.[6]

양식

승탑

8각을 기본형으로, 기단(基壇)[7] 위에 탑신(塔身)[8]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3단을 이루는 기단의 가운데 받침돌은 배가 불룩한 북모양을 하고 있다. 둥근 탑신의 몸돌은 아무런 조각없이 간결하다.[9] 장식적인 요소가 거의 없으면서 탑신부가 구형을 이루는 것은 나옹선사(懶翁禪師)의 스승인 지공선사(指空禪師)의 승탑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특징으로 고려 말기에 처음 나타났으며, 이후 조선 전기에 새로운 부도 형식으로 자리매김하였다.[10] 지붕돌 위로는 하나의 돌로 조각한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11]

한편 승탑 앞에는 앞쪽으로 2개, 뒤쪽으로 1개의 네모난 받침을 두고 그 위에 직사각형의 널따란 판석을 놓아 석상(石床)을 마련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승탑 앞에 석상을 두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12]

석등

승탑 앞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석등 역시 승탑과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13] 4각을 기본형으로, 3단의 받침 위로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을 올린 후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화사석은 앞·뒷면에 창을 내었다.[14] 흥미로운 것은 화사석이 하나의 돌로 되어 있지 않고 두 개의 직육면체로서 옥개석(屋蓋石)[15]을 받들게 하고 있는 점이다.[16]

지식관계망

  • 나옹 혜근의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양주 회암사 나옹선사부도 혜근 A는 B를 위한 승탑이다 1381년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혜근 A는 B를 위한 비이다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혜근 A는 B를 위한 승탑이다 1379년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 혜근 A는 B를 위한 비이다 1379년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 혜근 A는 B를 위한 승탑이다 1388년
양주 회암사 나옹선사부도 양주 회암사 A는 B에 있다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양주 회암사 A는 B에 있다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여주 신륵사 A는 B에 있다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 여주 신륵사 A는 B에 있다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 국립중앙박물관 A는 B에 있다
혜근 순천 송광사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혜근 양주 회암사 A는 B를 중창하였다
혜근 양주 회암사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혜근 여주 신륵사 A는 B에서 입적하였다 1376년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1. 김창균,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3년 10월 14일.
  2. 서지민,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서지민,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 "나옹선사 승탑 및 석등",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5. 서지민,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6. "나옹선사부도및석등",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문화재청.
  7. 건축물의 기초가 되는 단
  8. 탑기단과 상륜(相輪) 사이 탑의 몸
  9. "나옹선사부도및석등",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문화재청.
  10. 서지민,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11. "나옹선사부도및석등",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문화재청.
  12. 서지민,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13. 김창균,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3년 10월 14일.
  14. "나옹선사부도및석등",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문화재청.
  15. 빗돌이나 석등을 세운 위에 지붕 모양으로 만들어 덮어 얹는 돌
  16. 김창균,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3년 10월 14일.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