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가환궁
거가환궁 (車駕還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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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거가환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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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車駕還宮 |
이칭 | 환궁의(還宮儀) |
유형 | 의례 |
관련개념 | 길례, 제례, 군례, 대사례 |
목차
정의
황제나 황태자, 왕이나 왕세자, 황후나 황태자비, 왕비나 왕세자비 등의 왕족이 의례를 행하기 위해 궁 밖으로 행차했다 돌아오는 의례이다.
내용
목적에 따라 거가환궁 의식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제례
재궁에서 여를 타고 나와 연을 타고 경복궁 근정문으로, 경복궁 근정문에서 다시 여를 타고 전정으로 돌아오는 순서로 진행된다. 병조는 초엄이 되면 장위(仗衛)와 노부(菌簿)를 준비한다. 3각에 이엄(二嚴)이 울리면 임시거처에 여를, 대문 밖에 연을 준비한다. 종친과 백관은 인의(引儀)의 인도를 받아 자리로 이동하고, 왕세자는 필선(弼善)의 안내를 받아 막차(幕次)로 나간다. 삼엄(三嚴)이 들리면 필선(弼善)은 왕세자를 인도하여 막차에서 나와 왕을 모시는 위치에 선다.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왕에게 알리면, 왕은 왕의 조복을 착용한 후 여를 타고 나간다. 여가 재궁의 대문 밖에 도착하면, 왕은 여에서 내려 연을 타고 이동한다. 그 때 왕세자는 국궁(鞠躬)했다가 왕의 행차가 지나가면 몸을 펴고 따라간다. 왕의 행렬이 경복궁 근정문 밖에 도착하면 왕은 다시 연에서 내려 여를 타고 들어간다. 왕을 모시고 전정까지 갔다가 물러나면 의식이 끝난다.[1]
대사례
문무과방방의가 끝나면 왕은 악차로 돌아간다. 환궁할 때는 법가(法駕)를 올리고 대가(大駕)를 인도하는 절차가 있어 고취(鼓吹)를 울리고, 왕은 왕의 조복을 입고, 창덕궁 돈화문을 통해 환궁한다. 종친과 백관 4품 이상은 백관의 조복, 5품 이하는 백관의 공복을 입고 맞이하는 자리에 나아가 동서로 서 있다가 대가(大駕)가 도착하면 국궁하여 맞이하고 몸을 편다. 왕이 창덕궁 돈화문을 지나면 의식이 끝난다.[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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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 거가환궁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왕세자 | 거가환궁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왕비 | 거가환궁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왕세자빈 | 거가환궁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대사례 | 거가환궁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제례 | 거가환궁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世宗實錄五禮儀』
- 『대사례의궤』
- 국립민속박물관, 『조선시대 대사례와 향사례』, 국립민속박물관, 2009.
- 김문식ㆍ김지영 외 4명, 『왕실의 천지제사』, 돌베개, 2011.
- 김문식ㆍ송지원, 「국가제례의 변천과 복원」, 『서울 20세기 생활ㆍ문화변천사』, 서울시정개발원, 2001.
- 신병주, 「영조대 대사례의 실시와 『대사례의궤』」, 『한국학보』 28권 1호, 일지사(한국학보), 2002.
- 이욱, 「근대 국가의 모색과 국가의례의 변화-1894~1908년 국가 제사의 변화를 중심으로」, 『정신문화연구』 95, 한국학중앙연구원, 2004.
- 이욱, 「조선전기 유교국가의 성립과 국가제사의 변화」, 『한국사연구』 118, 한국사연구회,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