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과방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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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과방방의
(文武科放榜儀)
대표명칭 문무과방방의
한자표기 文武科放榜儀
이칭 방방례(放榜禮)
유형 의례
관련개념 군례(대사례)



정의

1743년(영조 19년), 성균관 대사례에서 치러진 문무과 시험의 합격자를 발표하는 절차이다.[1]

내용

방방(放榜)을 하는 자리는 하연대 계단 위에 문과는 동쪽, 무과는 서쪽에서 약간 남쪽으로 마련해 마주보게 한다. 종친백관 4품 이상은 백관의 조복을 입고, 5품 이하는 백관의 상복인 흑단령을 입고, 학생들은 공복을 입는다. 백관의 조복을 입고, 규(왕실남성)를 잡고 어좌에서 내려간다. 종친백관은 국궁사배(鞠躬四拜)하고 일어나 몸을 바로 한다. 문과방방관(文科放榜官, 문과급제 발표자)은 동쪽 계단으로, 무과방방관(武科放榜官, 무과급제 발표자)은 서쪽 계단으로 올라가 승지(承旨)에게 방안(榜眼)을 건네받아 집사자에게 건넨다. 집사자(執事者)가 방안을 마주 잡고 펼치면 문과방방안이 합격자의 이름을 부르고, 합격자는 동쪽에서 자리에 나아간다. 이어 무과방방안이 합격자를 부르면 합격자는 서쪽에서 자리에 나아간다. 발표가 끝나면 문무과방방관은 자리로 돌아가고, 합격자들은 국궁사배하고 몸을 바로 한다. 정랑(正郎)이 홍패(紅牌)와 어사화(御賜花), 주과(酒果)를 내린다. 인의(引儀)가 합격자들을 나누어 인도하여 나가고, 종친백관도 자리로 돌아가게 한다. 국궁사배하고 일어나 몸을 바로 하고 의식이 끝났음을 알린다. 영조가 어좌에서 내려와 악차로 돌아가고, 인의가 종친백관을 인도하여 나간다.[2] 이날 문과 시험 합격자는 한광조(韓光肇)·이환(李渙)·박성원(朴盛源)·신회(申晦)·김양택(金陽澤)·최태형(催台衡) 등 6명이고, 무과시험 합격자는 60명이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문무과방방의 A는 B를 거행하였다 A ekc:participates B
백관 문무과방방의 A는 B를 참여하였다 A ekc:participates B
종친 문무과방방의 A는 B를 참여하였다 A ekc:participates B
영조 문무과방방의 A는 B를 참여하였다 A ekc:participates B
밀창군 이직 문무과방방의 A는 B를 참여하였다 A ekc:participates B
이익정 문무과방방의 A는 B를 참여하였다 A ekc:participates B
학생 문무과방방의 A는 B를 참여하였다 A ekc:participates B
대사례 문무과방방의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문무과방방의 무과시취의 A는 순서상 B의 뒤이다 A edm:isNextInSequence B

주석

  1. 『大射禮儀軌』 「儀註帙」
  2. 『大射禮儀軌』 「儀註帙」
  3. 『영조실록』 권57, 영조 19년 윤4월 7일, ‘새벽에 작헌례를 거행하고, 대사례를 거행하다’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國朝五禮儀』
  • 대사례의궤
  • 『世宗實錄五禮儀』
  • 국립민속박물관, 『조선시대 대사례와 향사례』, 국립민속박물관, 2009.
  • 신병주, 「영조대 대사례의 실시와 『대사례의궤』」, 『한국학보』 28권 1호, 일지사(한국학보),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