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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까지는 순(輴)이라고 부르다 영조 대부터 견여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br/> | 조선 중기까지는 순(輴)이라고 부르다 영조 대부터 견여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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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 *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 ||
* 이현진, 『조선왕실의 상장례』, 신구문화사, 2017. | * 이현진, 『조선왕실의 상장례』, 신구문화사, 20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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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7일 (금) 22:47 기준 최신판
견여(肩轝) | |
대표명칭 | 견여 |
---|---|
한자표기 | 肩轝 |
이칭 | 순(輴) |
유형 | 의례 물품 |
시대 | 조선 |
용도 | 흉례(凶禮)-상례(喪禮)-발인(發引)에 사용 |
정의
조선시대 국장에서 왕과 왕비의 관인 재궁(梓宮)을 운반하는 작은 가마이다.
내용
조선 중기까지는 순(輴)이라고 부르다 영조 대부터 견여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국장 의례 중 발인(發靷)에서 빈전(殯殿)에서 대여(大輿)로 재궁을 옮길 때, 능소에서 도착해서는 대여에서 현궁(玄宮)으로 재궁을 옮길 때 사용되었다.
약 140명의 가마꾼과 보충 인원이 견여를 운반하는 데 동원되었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재궁(梓宮) | 견여(肩轝) | A는 B로 운반되었다 | A ekc:goesWith B |
견여(肩轝) | 『순조국장도감의궤(純祖國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견여(肩轝) | 『정조국장도감의궤(正祖國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견여(肩轝) | 『효의왕후국장도감의궤(孝懿王后國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견여(肩轝) | 발인(發引) | A는 B에 사용되었다 | A ekc:isUsedIn B |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더 읽을거리
- 이현진, 「정조 초 영조의 국장 절차와 의미」, 『태동고전연구』제27호,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11.
-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 이현진, 『조선왕실의 상장례』, 신구문화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