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語精義"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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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8일 (화) 00:29 판
「學而」, 학이
一章, 01장
○伊川解曰, "習, 重習也. 時復思繹, 浹洽於中, 則說也. 以善及人, 而信從者衆, 故可樂. 雖樂於及人, 不見是而無悶『易經』, 乃所謂君子." 又語錄曰, "所以學者, 將以行之也. 時習之, 則所學者在我, 故說. 習如禽之習飛." 又曰, "鷹力學習『禮記』之義, 子路有聞, 未之能行, 唯恐有聞『論語』. 說在心, 樂主發散, 在外." 又曰, "說先於樂者, 樂由說而後得, 然非樂, 不足以語君子."
○范[1]曰, “學先王之道, 將以行之也. 學而習之, 知所以修身, 知所以治人, 則說矣. 習之言, 試也.
주석, Footnote
- ↑ 范: 범조우(范祖禹). 1041-1098년. 북송 성도(成都) 화양(華陽) 사람. 자는 순보(淳甫) 또는 몽득(夢得)이다. 인종(仁宗) 가우(嘉祐) 8년(1063) 진사(進士)가 되었다. 사마광(司馬光) 밑에서 『자치통감(資治通鑑)』을 편수했고, 책이 완성되자 비서성정자(秘書省正字)에 임명되었다. 철종(哲宗)이 즉위하자 저작좌랑(著作佐郞)이 되어 『신종실록(神宗實錄)』 편찬의 검토관을 맡았고, 급사중(給事中)과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했다. 철종이 친정(親政)하자 섬주지주(陜州知州)로 나갔다. 소성(紹聖) 초에 그가 지은 『실록』이 신종을 비난하고 사마광이 신법(新法)을 변경한 사실을 두둔했다는 여론이 일자 무안군절도부사(武安軍節度副使)로 폄적(貶謫)되어 소주별가(昭州別駕)를 거쳐 영주(永州)에 안치되었다. 젊어서 정호(程顥)와 정이(程頤)를 사사했으며, 사마광의 학문을 추종했다. 『중용(中庸)』을 중시하여 성(誠)과 성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법인 충서(忠恕)를 강조했다. 또한 노장학(老莊學)은 충서의 도에 위배된다고 하여 배척했다. 저서에 『논어설(論語說)』과 『당감(唐鑑)』이 있는데, 이정(二程)의 설을 수용한 것이 많다. 『당감』은 당나라 고조에서 소선제(昭宣帝)까지 3백 년 동안의 정치적 득실을 논한 책이다. 그 밖의 저서에 『중용론(中庸論)』과 『범태사집(范太史集)』이 있다. 시호는 정헌(正獻)이다. -임종욱, 김해명(2010), 『중국역대인명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