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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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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일

「졸업일」은 정당한 기성작가 대우로 《어린이》에 발표된 소년소설이다.


《어린이》는 1931년 7월 소파 방정환이 타계 후 이정호가 발행인 겸 편집인일 때 신영철이 편집을 맡았다. 그는 소년의 문예 작품과 소년 수기 등 소년들의 생생한 체험 현장의 글을 많이 수록했다. 1932년 3월호는 9주년기념 특집 ‘졸업생문제호’로 발행하면서 졸업생 수기, 농촌노동소년수기를 집중적으로 게재하였다. 이에 대해 신영철은 “7만 명의 일군이 나오는” 졸업 시기를 맞추어 “여러분의 오늘에 답답한 가슴을 조금이라도 열게 되고 여러분의 나갈 길을 알게 되야 여러분의 할 일을 여러분자신이 스스로 알게 되고 여러분의 임무를 여러분자신이 스스로 깨닷게 되는데 손톱만한 도움과 참고가 될 수 잇다면 본지이번호의 사명은 다하엿다”는 생각으로 편집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3월호 특집 졸업생 문제호에 다 수록되지 못한 ‘노동소년학생수기’가 4월호에도 게재되었는데 황순원의 소년소설 「졸업일」이 여기에 발표된 것이다.


소년소설

황순원의 「졸업일」도 「추억」의 연장선상에 놓인 학교생활 이야기로 방정환의 「졸업의 날」, 박병도의 「졸업날」, 최병화의 「슬픈 졸업식」과 분위기상 공통점을 지닌 소년소설이다. 주인공들이 가난한 결손가정에서 부모를 대신해 가장 노릇을 해야 한다는 점, 졸업날이 기쁜 날이 아니라 슬픈 날이라는 점 등에서이다.

방정환 「졸업의 날」

주인공이 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누이가 열다섯에 시집을 가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는데 어머니가 학수고대하던 아들 졸업식을 두어 달 앞두고 돌아가신다. 어머니는 바느질품으로 보통학교를 졸업시켰으나 모범생인 주인공은 고등학교에 무시험으로 입학하고 스스로 학비를 벌면서도 우등 졸업을 하게 된 것이다. 그가 학생들을 대표해 답사까지 하게 되었는데 기뻐해 줄 어머니가 안 계셔서 슬픈졸업식이 되었다. 그뿐 아니라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빚에 들려 집을 빼앗기고 학교 기숙사 구석에서 생활해 왔는데 졸업하고 나면 그곳에서 나와야 하는 막막한 신세가 되고 만다. 결국 「졸업의 날」은 식을 마친 주인공이 졸업증서를 들고 어머니 무덤에 찾아가 하염없이 우는 것으로 끝맺는다. 주인공의 장래 방향성이 전혀 모색되지 않는다.

박병도 「졸업날」

주인공이 너무 가난하여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당장 병석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밥벌이할 일터를 찾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졸업식을 마치고도 아직 일터를 찾지 못한 주인공에게 동무인 철순이가 자기 대신 전기회사에 취업할 것을 권유한다. 그러면서 노동자들과 함께 자본가를 상대로 싸워야 한다며 계급의식을 고취시키는 이야기로 끝맺는다.

최병화 「슬픈 졸업식」

주인공이 가난으로 인해 졸업 후 상급학교 진학할 수 없고 노동 현장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슬픈 졸업 날의 이야기이다. 여기서는 계급의식을 고취하지 않고 노동 현장으로 가는 학생의 소신이나 교사와 학생 간의 상호 신뢰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줄거리

길순이의 졸업 전날 정미소에 다니는 어머니가 집에 들어와 저녁을 안치며 얼굴에 걱정의 빛을 가득 담고 있다. 직장을 하루 쉬고 졸업식장에 와달라는 길순이 부탁을 받은 다음 날 어머니는 점심시간 때 없는 용기를 내어 감독에게 하루 쉬게 해 달라고 청을 했는데 돌아온 것이 비웃음 섞인 거절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길순이의 장래를 생각해서 모든 괴로움과 슬픔을 참아내며 두 해 전부터 정미소에 다니고 있었다. 길순이는 나름대로 어떻게하면 남같이 잘 살아 어머니를 평안하게 모실까 하는 생각뿐이어서 모범생이면서도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학교에서도 가난의 아픔을 감추고 양말공장에 가서 일할 것이라고 당당히 말하곤 했다. 졸업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길순이와 어머니는 졸업장을 앞에 놓고 마주앉아 눈물을 지었다. 두 사람은 아침 식사도 굶었는데 저녁밥도 못 먹고 배고픔을 참으며 주림과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 곧 졸업생의 부형들이 비싼 새 옷을 입고 부른 배를 내밀고 앉아서 자기 자식이 공부 잘한다는 자랑, 졸업한 후에는 상당한 중학교로 입학을 시킨다는 자랑, 졸업식을 마친 후 송별식에 회비 일원씩 내고 회식 장소로 들어가는 선생, 학부형, 졸업생을 교문 밖에서 바라보던 일들을 돌이켜본다. 이것은 당시 사회의 타락상을 암시적으로 제시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배를 곪고 앉았어도 자기네의 신세를 원망하거나 한탄하지 않는다. 도리어 길순이는 빛나는 눈으로 “우리라고 굶어 죽으라는 법이 있나”하며 힘차게 부르짖는다. 황순원의 「졸업일」은 주인공이 졸업 날 희망 없는 슬픔에 잠겨 있거나 계급의식을 고취하지 않는다.


다른 소년소설의 차이점

황순원의 「졸업일」이 방정환과 박병호의 ‘졸업의 날’ 풍경과 비교되는 부분은 끝부분이다. 기쁜 졸업날에 두 모자가 아침과 저녁 끼니를 굶는 궁핍한 삶에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고 미래를 향하여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며 각오를 희망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듯 길순이가 “힘차게 부르짖자 무슨 결심이나한듯이 벌떡 니러낫다.”는 대목에서 굶주림 속에서도 삶의 희망을 찾고자 하는 각오를 상기시킨다. 이것은 계급주의 경향과 다른 차원이 가치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징

  • 문체의 감각성, 표현의 정확성이 덜한 편: 그는 표현의 정확성을 대신해서 괄호의 보충 지문을 통해 친절히 설명해 주고 있다. Ex) 그는(길순이 어머니), 길순이가 열여섯 잡히는 해(소학교 륙학년되는), 그 학교(길순이가 다니는학교), 자긔(길순)
  • 외면적 갈등에 치중: 인물의 내면을 그리기보다 외면적 갈등에 치중하여 주제를 부각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 열린 결말: 마지막 열린 결말 처리로 소년 독자에게 절망감의 극복과 어떤 희망적 기대감을 맛보게 하고 있다.


의의

「졸업일」은 황순원이 18세의 나이로 한창 시를 발표할 무렵에 쓴 소년소설로써 그의 소설가적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 그는 이 「졸업일」을 끝으로 소년소설이라는 장르명으로 더 이상 작품을 쓰지 않고 시 창작에 주력하다가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을 걷는다.

각주

참고문헌

  • 김용희. 황순원 소년소설의 아동문학사적 의미. 한국아동문학학회.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