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제5회 황순원 문학상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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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황순원 문학의 특성이 삶의 중요한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완벽한 구성과 정밀한 묘사로 형상화함으로써 절제의 아름다움의 어떤 극치롤 보여주고 깊은 감동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라면 수상 후보로 오른 작품 모두가 거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수상작

김훈 『언니의 폐경』


“노년에 접어든 50대에 혼자 살게 된 두 자매의 이야기로서 인생의 항혼기를 여성적 감각으로 섬세하고 정교하게 서술한 뛰어난 작품”


"‘나’와 언니는 50대 여성으로서 인생의 황혼기를 예민하지만 조용하게 받아들이는 교양과 지혜를 갖추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사물과 인간의 심정을 교묘하게 결합시켜 사물을 바라보는 50대 여성의 내면세계를 잔잔하고도 치밀하게 묘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한강 하구의 묘사가 생성과 소멸의 보이지 않는 운동을 연상시키는 것처럼 모든 사물들이 그들의 내면 풍경과 연관되고 있는 점은 이 작품의 탁월한 문학성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아마도 50대 여성의 몸의 변화와 내면을 이처럼 과장 없이 설득력 있게 서술한 작가는 남녀를 불문하고 처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후보작

하성란 『웨하스로 만든 집』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외국으로 시집간 주인공이 10년 만에 귀국해 자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와서 그 집이 무너지는 과정을 목격하는 이야기.”


“마치 입에 넣으면 쉽게 부서지는 ‘웨하스’ 과자로 만든 집처럼 30년의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진다. 그것은 한국의 경제 발전이 마치 전시 행정의 한 양상에 지나지 않을 뿐 실제로는 그 부실 건물과 같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작품은 그러한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가난과 모순으로 가득 찬 현실의 질곡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아니다. 외국으로 시집간 주인공이 행복한 삶을 구축하지 못하고 10년 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나 헐리고 있는 폐허에서 고물들을 수집하는 어머니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생활을 하는 것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제 그 마을에서도 쫓겨가는 그들의 운명과 그 집의 운명은 대비되고 있다. 그러한 비극적 상황을 치밀하고 정감있게 묘사한 작가의 능력은 탁월하다. 특히 심각한 하자에도 불구하고 마루가 꺼질까 발뒤꿈치를 들고 걸어다니는 것처럼 경쾌하고 ‘만화적’으로 설정된 것은 낯설지만 요즘의 젊은이들의 삶에 대한 태도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박성원 『안타라망-우리는 달려간다 이상한 나라로』


"박민규의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와 함께 새로운 세대의 감각이 특성 있게 드러난 작품. 사물에 대한 이들의 감수성은 기성세대에게 거의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엉뚱하고 신선하다. "


“세상살이라는 게 어망과 같아서 한 사람이 웃으면 반드시 다른 사람의 눈에는 피눈물이 흐르는 법”이라는 불교적 용어에 근거하고 있는 박성원의 작품은 69일 동안 의식 불명 상태에 있던 주인공이 의식을 되찾는 이야기.”


“‘이성적인 최선의 선택이란 게 결국 이기적으로 합리화하는 것’이라는 삶의 아이러니만 발견하게 된다.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전율 없이는 읽을 수 없다..”

박민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상업 고등학교에 다니는 가난한 학생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는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인물이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아무런 불평이나 원한 없이 살아가는 이야기. "


“새벽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일하는 그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노예들의 억울함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의 산술과 상상력은 엉뚱해서 편의점의 사장이 아르바이트 여학생의 허벅지를 만질 때 “만지는 게 나쁜 게 아니다. 그러고 고작, 천 원을 주는 게 나쁜 짓이다”라고 생각한다. 그의 상상력은 교육받은 상상력이 아니라 자신의 지적 수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나올 수 있는 상상력이다. 자신의 처지에 맞는 산술을 하는 그는 사물을 자신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삶에 대한 그의 태도는 겉으로 보기에 순응주의적으로 보이지만 거기에 감추어진 절망은 가슴을 후비는 아픔을 동반한다. 여기에서 사용되는 일상 언어는 예리한 칼날을 감춘 시적 언어로 환치된다. 그러한 작가의 언어감각은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이라는 이름에 값하고 있다. 마지막에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기린에게 집안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는 작품 전체를 함축시킨 빛나는 재기이며 놀라운 반전이다.”


“‘신세대의 어법과 문체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박성원과 박민규라는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은 한국 소설의 영토를 확장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구효서 『소금 가마니』


"구효서의 『소금 가마니』, 윤대녕의 『탱자』, 성석제의 『잃어버린 인간』등은 전통적 방법으로 화자보다 한 세대 앞선 주인공들의 삶을 재구성하는 서사적 이야기. 그렇기 때문에 이들 소설은 화자의 현재적 삶과 분리되어 있는 주인공의 과거로 돌아가는 모티브로부터 시작된다. "


“‘나’는 97세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유품에서 물려받은 키르케고르의 일어판 『공포와 전율』을 보고 평생을 두부만 만들어 판 어머니가 자신과 비슷한 지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화자가 알고 있는 어머니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로부터 무수한 폭력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견뎌내며 두부를 만들어 아홉 식구의 생계를 이어가는 인고의 여인상이다. 두부를 만들기 위해 헛간에는 언제나 소금 가마니가 쌓여 있는데 거기에서 나오는 간수는 어머니의 피와 땀의 상징이다.”


“‘소금의 용해 작용과 결정 작용이 두부를 만들어내는 상징성에 착안해서 어머니의 삶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구효서의 역작임에 틀림없다.”

윤대녕 『탱자』


"‘여행은 끝났는데 길은 시작되었다’는 소설의 명제를 작가는 철저하게 구현 "


“고모는 자신의 과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음으로써 자기가 평생 혼자 견뎌온 삶의 질곡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폐암 진단을 받고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고모의 모습에는 처연한 황혼의 풍경이 살아 있다. 그것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과거를 되돌아보는 회고담 소설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존재론적 자아 탐구로 관념적 소설을 써온 윤대녕으로서 이러한 서사적 이야기의 사실주의적 소설을 시도한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윤대녕의 목소리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할 만큼 성공적이다.”

성석제 『잃어버린 인간』


"‘역사에 기록될 만큼 큰 인물은 아니지만 주인공 이한봉의 생애는 독자의 관심을 붙들어둘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의 근대사와 거의 일치 "


“그러나 그보다 훨씬 큰 역사적 인물들을 다룬 소설에서 보다 극적인 삶을 보아온 독자는 무명의 인물들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다. 작가 성석제는 여기에서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화자를 통해서 쫓아보낸 ‘쌍둥이’의 행방을 찾는다.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어서 화자가 옛날의 과오를 사과할 수 없다.”


“작가의 소설적 재능은 이야기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굶어 죽은 쌍둥이의 보상받을 수 없는 삶의 존재를 암암리에 일깨워주는 것으로 드러난다.”

은희경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출판사를 경영하는 중년의 주인공의 하루를 기록하고 있지만 그의 머릿속은 15년의 시간을 왕래한다."


“이 작품은 90년대의 희고담에 속하지만 그것이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현재화되고 완벽한 구성을 갖춘 점에서 이 작가가 얼마나 뛰어난 작가인지 알게 된다.”

임철우 『나비길』


"‘『봄날』『붉은 방』으로 대표되던 임철우의 소설세계가 사실주의적 요소를 뛰어넘는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점에서 주목받을 수 있다."


“이발관을 중심으로 한 광장의 풍경 묘사의 탁월성도 주목받아야 하지만 총각 선생, 이발사 양씨, 방범대장 나씨 등 인물의 성격이 어느 소설보다 잘 형상화된 점. 이상성격, 이상심리 등이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 긴장을 늦추지 않은 점에서 이 작품은 『아버지의 땅』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김연수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최근 그의 소설적 실험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


“불가해한 설산에 대한 인간의 도전 의지와 용기가 절제되고 응축된 문체를 통해서 인문학적 상상력과 결합한 이 작품은 김연수 소설의 백미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