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이야기의 힘, 이야기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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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제 11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부메랑'에 게재된 문학평론가 '류보선'의 심사평이다.

총평

"'가장 문제적인 한편'이 돌올해 있으면 마음이 편하련만 그런 '단 한 편'은 없었다. 대신 '가장 문제적인 소설 여럿'이 있었다...(중략)...해서, 결국, 나는, 올해에도, '가장 문제적인 소설 여럿' 사이를 힘겹게 오가야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즐거운 일이었다."

"어느 한 편도 대충 읽을 수 있는 작품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아쉬웠던 것은 우리 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딜레마와 정면 대결하려는 치열한 투지였다."

심사평

권여선 『은반지』

"자기만을 배려하는 타인들을 비난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은 그보다더 더 자기만을 배려하며 사는 우리네의 부조리하면서도 폭력적인 실존형식을 형상화한 『은반지』는 한마디로 잘 빚어진 작품이었다."

"특히나 딸들의 자기중심적인 삶에 진절머리를 치다가 '심여사'와의 대화를 통해 자기 자신은 그보다 더 타자를 배제하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장면의 전환, 그러니까 소설적 반전은 단연 압권이었다. 또한 동일한 사건에 대한 작중인물들 사이의 서로 다른 기억과 맥락화를 유비시키는 장면을 통해 모든 기억은 사후적이며 어떤 사건의 원인이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니라 사후적인 결과가 곧 원인을 결정한다는 간단치 않은 문제 틀을 전경으로 깔고 있는 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편혜영 『야행』

"『야행』을 읽고 나서 내가 먼저 떠올린 것은 이상의 『오감도 제1호』였다...(중략)...우리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다는 것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막다른 골목이 아니어도 불행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오감도 제1호』의 반전만큼 현대인 특유의 불안 심리를 잘 드러낸 경우도 드물다는 생각이었는데, 『야행』은 『오감도 제1호』의 반전을 흥미롭게 소설적으로 재현한 경우로 다가왔다.

"『야행』은 누군가의 구원을 기다리며 막다른 골목에서의 삶을 버티지만 결국 그것은 헛된 미망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보다 더 지독한 현대적인 비극이라는 것을 충격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표현해낸다."

박형서 『아르판』

"'이야기란 무엇인가' 혹은 '이야기의 새로움이란 무엇인가'라는 결코 간단치 않은 주제와 문명에서 문명 바깥을 바라보는 이율배반적인 시선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동시에 거느린 소설이었고, 그것을 교묘하게 병존시킨 소설이었다."

"한 작품으로 소화하기엔 각각의 주제가 너무 묵직했던 탓일까, 중간 중간 작위적인 장면들이 자연스런 독서를 가로막아 아쉬웠다."

조경란 『학습의 生』

"중요한 것은 제도에 의해 강제된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꿈에 대해 이해와 기대가 진정한 친밀성의 관계를 가능하게 한다는 메시지일 터인데, 이 도발적이면서도 불편한 진실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솜씨가 압권이었다."

"새로운 관계의 필요성과 필연성을 제시하기 위해 우리들 대부분이 기탁하고 있는 관계들, 그러니까 부부라든가 가족이라든가 하는 관계성들을 지나치게 폄훼하는 대목에서 서술과 묘사의 균형이 흔들리곤 했다."

윤성희 『부메랑』

"어떤 이음매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소설이었다. 특히 타자들의 고통과 염원을 뒤로한 채 자기만을 배려하며 살아가는 현존재들의 타락한 삶을 자서전 되쓰기라는 형식을 통해 통렬하게 고발하는 솜씨는 단연 압권이었다."

"마냥 흩어져 있는 신성한 디테일들을 횡단해 전혀 새로운 세계상을 만들어낸 혁신적인 이야기가 있고, 그리고 그 혁신적인 이야기를 통해 그토록 되풀이되는 자서전 되쓰기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자신이 억압해버린 실재적 기억은 외면하는 현대인의 존재의 형식을 이렇게 자연스럽고 실감 있게 그려낸 점이야말로 『부메랑』의 가릴 수 없는 가치로 다가왔다"

"주인공이 거듭 자서전을 쓰게 되는 동기가 명확하지 않고 그것 때문에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인식론적 지도가 불분명한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 작품으로 소화하기엔 각각의 주제가 너무 묵직했던 탓일까, 중간 중간 작위적인 장면들이 자연스런 독서를 가로막아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