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김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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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본관은 선산(善山). 호적명이 김창귀(金昌貴), 족보명은 김태창(金太昌), 아명(兒名)은 창봉(昌鳳). 자는 시종(始鍾), 호는 동리(東里). 경상북도 경주 출생. 조선 초기의 문신 김종직(金宗直)의 17대 손으로 아버지는 김임수(金壬守)이다. 동리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인 큰형은 동양철학자 범부(凡父) 김기봉(金基鳳)이며, ‘동리’라는 호는 그가 지어준 것이다.

생애

  • 1913년 출생~1995년 사망.
  • 큰형의 제자였던 서정주(徐廷柱)와 교우 관계를 맺으면서, 그와 함께 한국문학사에 있어 순수문학의 전통을 수립하게 된다. 서라벌예술대학 교수를 거쳐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장을 역임하였고, 한국문인협회 회장·예술원 회장·한국소설가협회 회장·한일문화교류협회장 등 주요 문예 단체의 대표를 맡아 활발한 문단 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1968년에 『월간문학』을 창간하였으며, 1973년에는 『한국문학』을 창간하였다.
  • 그리하여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한 그는 단편 「무녀도(巫女圖)」(중앙, 1936.5.)·「바위」(신동아, 1936.5.) 등의 문제작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1930년대 후반 가장 주목받는 신세대 작가로 부각된다. 특히, 유진오(兪鎭午)로 대별되는 구세대의 문학과 이른바 세대 논쟁을 벌이면서 1930년대 후반 신세대 문학의 기수가 된 그는 서정주와 함께 『시인부락』(1937)을 결성하면서 자신의 문학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 이후 그는 해방공간에서 좌우익의 대립과 혼란 속에 좌익계 문학단체인 ‘문학가동맹’에 대항하여 우익계 단체인 ‘한국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고, 1946년 초대 회장에 오른다. 1947년부터 1948년까지 또다시 순수문학 논쟁을 벌이는데, 그는 「순수문학의 진의(眞義)」(서울신문, 1946.9.14.)를 계기로 다수의 평론을 발표하며 김병규(金秉逵)·김동석(金東錫) 등의 좌파 이론가와 맞서서 논쟁을 벌인다.
  • 한편 소설작품에서도 우파의 정치적 관점을 적극적으로 투영시키는 작품을 발표한다. 좌파 이론가와 논쟁을 벌인 그는 ‘본격문학’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좌파 계급주의 민족문학론에 대항하여 인간주의 문학론을 제창한다.


업적

  • 대표작: 무녀도, 황토기, 등신불, 바위, 자연과 인생
  • 아세아자유문학상, 예술원 문학부문 작품상, 3.1문화상 예술부문 본상, 서울시문화상 문학부문 본상, 5.16민족문학상 수상 및국민훈장동백장, 국민훈장모란장 수여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