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영

North Korea Humanities

김한주(SNU2025)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12월 10일 (수) 22:23 판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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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영(黃壽永)
바바파파.jpg
출처 :
 
한글명 황수영 한자명 黃壽永 영문명 가나명 이칭 초우(蕉雨)
성별 생년 1918년 몰년 2011년 출신지 경기도 개성시 전공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황수영(蕉雨, 1918–2011)은 한국 불교미술사·고고미술 연구의 기초를 확립한 대표적 미술사학자다.[1] 그는 국립박물관 박물감, 동국대학교 교수·박물관장·총장 등을 역임하며 학문 연구와 문화재 조사·보존 행정을 병행한 드문 학자였다.[2] 평생에 걸쳐 불상·탑·석굴암·금석문 등 한국 불교미술 전반을 연구하며 현대 한국 미술사학의 제도적·학문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다.[3]


생애


수학기(1918년 출생부터 1941년 졸업까지)

1918년 6월 10일, 경기도 개성공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창원이며, 호는 초우(蕉雨)이다.[4] 1931년 개성 제일보통학교를 거쳐, 이후 1936년 서울의 경복중학교기관를 졸업하였다.[5] 이후 그는 일본 유학을 결심하고 경쟁이 치열한 마쓰야마고등학교기관에 조선인 2명 중 한 명으로 합격하여 문과 교육을 받았다.[6] 이 학교는 제국대학 예비교육기관으로 높은 수준의 교과과정을 제공하였고, 황수영은 이 시기 외국어 및 교양 중심의 학업을 충실히 수행하였다.[7] 1939년 졸업 후 그는 일본의 도쿄제국대학기관 (東京帝國大學) 경제학부에 입학하였으며, 외국어 교육이 강조된 환경 속에서 도서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학업에 몰두하였다. [8] 이 시기의 집중적 학습은 훗날 그의 유창한 영어 능력의 기초가 되었다. [9] 1941년 졸업 후 그는 교수 쓰치야 다카오의 추천으로 당시 일본 지식계를 대표하는 이와나미서점기관 편집부에 취업하여 출판 문화의 중심에서 경력을 시작하였다. [10]


성장기(1941년 졸업 이후 1956년 동국대 교수 임용 이전)

도쿄제국대학 졸업 후 이와나미 문고기관에서 근무하던 그는 1944년 귀국하여 고향으로 돌아왔고, 1945년 광복 이후에는 개성상업학교기관 교감을 맡아 지역 교육 활동에 참여하였다.[11] 이 시기 그는 북만주로의 취업 이주, 귀향, 전란 등 격변의 시대를 경험하며 다양한 사회적·개인적 변화를 겪었다.[12]

한편,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우현 고유섭인물과 교유했는데, 1935년 마쓰야마고등학교기관 재학 중 고려청자에 대한 질문을 계기로 우현과 첫 대면하였고, 이후 방학 때마다 개성으로 돌아와 우현과 함께 견불사·공민왕릉 등 송도 지역의 고적을 답사하였다.[13] 또한 그는 우현과 함께 현화사비, 대각국사비, 오룡사비의 탁본 작업을 수행하며 금석문 연구의 기초를 쌓았고, 이는 평생의 연구 태도와 조사 방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14]

도쿄 유학 시절에도 그는 우현을 여러 차례 만나 일본 내 미술계 동향을 함께 살피며 학문적 자극을 받았고, 1940년 정창원御物 특별전에 참석할 때에도 고유섭인물과 동행했다.[15] 1943년 우현이 일본 예술학회에서 「조선탑파의 양식 변천」을 발표할 때에도 그와 함께하며 미술사 연구의 새로운 관점을 접하였다.[16]

1944년 우현이 별세하자, 황수영은 그의 49재 추도식에서 눈물을 흘리며 추도문을 읽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미술사를 평생의 진로로 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17] 그는 “이날을 고비로 평생의 갈 길을 새롭게 마련하였다”라고 회고하며, 미술사 연구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때 확립하였다.[18]

그는 1948년 이희승 선생의 추천으로 국립중앙박물관기관박물감(학예사)으로 취업하여 미술사와 고고학을 실제 유물과 유적을 통해 다루는 첫 현장 실무를 맡았다.[19] 이후 수습·발굴·금석문 조사 등 초기 연구 활동은 훗날 그의 대표 연구 영역을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고, 미술사학자이자 문화재 조사 연구자로서의 성장을 촉진하였다.[20]


완성기(1955년 교수 임용부터 1985년 정년 퇴임까지)

1955년 황수영은 동국대학교기관 불교대학 교수로 임용되어 본격적인 학문적 활동을 전개하였다.[21] 이후 그는 발굴·조사·보존 업무와 학술 활동을 병행하며 미술사·고고미술 분야 전반에서 전문성을 확립했다. [22] 1960년에는 김원룡·전영필·진홍섭·최순우 등과 함께 고고미술동인회단체를 결성하여 한국미술사학회의 기초를 마련했고, 이는 미술사 연구의 제도적 토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23]

그는 1961년부터 1964년까지 토함산 석굴암 수리 공사사건의 감독관으로 참여하여 현장 조사와 보존 작업을 지휘하였다. [24] 또한 1963년부터 1971년까지 동국대학교박물관기관 초대 박물관장을 맡아 대학 박물관의 기틀을 세우고 학술·교육의 거점으로 기능하게 하였으며, 이후에도 박물관장을 맡아 장기간 대학 내 연구 인프라를 구축하였다. [25] 1964년에는 신라 삼산·오악 학술조사사건단에 참여해 신라 유적을 본격 조사했으며, 1966년에는 문무왕 수중릉 조사사건 확인·발표하여 신라 왕릉 연구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였다. [26]

그는 1962년부터 1994년까지 문화재위원회기관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며 문화재 지정·보존·정책 자문 등 국가 문화재 행정의 중추적 역할을 맡았다. [27] 1971년부터 1974년까지는 국립중앙박물관기관 관장으로 재임하며, 국가 박물관의 운영·전시·보존 정책을 총괄하였다. [28] 이 시기 그는 해외 박물관을 시찰하며 한국 박물관 제도의 현대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29] 1978년부터 1980년에는 한국대학박물관협회단체 회장으로 활동하며 대학 박물관 간 협력 체계를 강화하였다. [30] 이어 1978년 9월부터 1982년 2월까지 동국대학교대학원기관 대학원장으로 재임하며 후학 양성과 대학원 체계 정비에 기여하였다. [31]

1982년부터 1985년까지 동국대학교기관 총장으로 선출되어 대학의 행정적 최고 책임자로서 학교의 장기 발전 전략, 조직 정비, 연구 인프라 확충을 추진하였고, 일본 기업 및 동문들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고가의 슈퍼컴퓨터 도입을 성사시키는 등 행정적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32]


마무리기(1985년 퇴임 이후 2011년 별세까지)

정년퇴임 후에도 황수영은 명예교수로 활동하며 학문적 열정을 지속하였다. [33] 그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연구와 현장 조사를 꾸준히 이어갔고, 베이징 역사박물관기관에서 열린 「산동 청주 용흥사 출토 불교 석각 조상정품」 특별전을 관람할 때에도 작품 하나하나를 최대한 가까이에서 살펴볼 정도로 세밀한 관찰 태도를 유지하였다. [34] 이때 그는 법해사기관의 벽화, 원·명대 사원, 베이징대학교 도서관기관까지 짧은 일정 속에서 정력적으로 시찰하였으며, 이미 80세가 넘은 나이였음에도 연구자다운 집중력과 탐구심을 보였다. [35] 1990년대 이후에도 그는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공간와 중국 돈황공간 지역을 직접 답사하며 현장 중심의 연구 태도를 유지하였다. [36] 2005–2007년에는 동국대학교 박물관기관의 연구실을 자주 방문하여 필요한 자료와 유물을 살펴보았으며, 90세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독서와 연구를 계속하였다. [37] 황수영은 2011년 2월 1일 향년 93세로 별세하였다.[38]





연구


불교미술 및 고고미술사 연구

황수영은 불상·탑·불교 공예·금석문 등 한국 불교미술 전반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학문적 체계를 확립한 인물로 평가된다.[39] 그는 『한국불상연구서적』와 여러 불교미술 저술을 통해 조각양식과 불교 신앙의 관계를 분석하며 한국 불교미술사 연구의 기초를 마련하였다.[40] 연구 영역을 특정 주제로 제한하지 않고 불교미술의 거의 모든 분야로 확장한 점은 후대 학계에서 '기초 체계를 세운 학자'라는 평가로 이어졌다.[41] 정우택의 논문에서도 황수영이 미술사 연구에서 “전문분야를 무분별하게 늘리지 않되, 깊이 있는 이해를 추구한” 학자였다고 기록한다.[42]그의 연구는 후학들의 불교미술 연구 방향 설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 미술사학에서 불교미술 분야의 비중을 확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43]


유적 조사·발굴 및 문화재 보존 활동

황수영은 국립중앙박물관기관 박물감으로 임명된 1948년 이후 전국의 사찰·석조유물·고적을 직접 조사하며 현장 중심의 연구를 지속하였다.[44] 그는 석굴암 해체·보수 공사사건 감독, 문무왕 수중릉 확인사건 확인,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불 등 주요 유적 조사에 참여하여 문화재의 가치 규명과 보존에 공헌하였다.[45] 이러한 조사 경험은 정우택의 논문에서 "평생 견지한 면밀한 조사 노트 작성의 근원"으로 평가되며, 그의 연구 태도 형성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46] 문화재위원 활동을 30여 년간 수행한 그는 문화재 지정·정책 자문 등 국가 문화재 행정의 핵심 역할을 맡았다.[47] 현장에서의 조사·기록·해석을 함께 수행한 그의 방식은 한국 고고미술 연구에 '현장 중심'이라는 기준을 성립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48]


학문 기반 구축 및 후학 양성

황수영은 1960년대 고고미술동인회단체 창립을 주도하여 이후 한국미술사학회로 이어지는 학문 공동체의 기틀을 마련하였다.[49] 동국대학교기관 박물관장·대학원장·총장 등을 역임하며 대학 내 연구 시스템과 동국대학교박물관기관 조직을 정비하여 학문적 기반을 제도적으로 구축하였다.[50] 그는 후학과 동료들에게 "유물이 말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엄정한 학문 태도를 강조하며 학문후속세대의 연구윤리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51] 법보신문 역시 그를 "불교미술사의 큰 줄기를 세운 학자"로 평가하며, 연구 뿐 아니라 학계 기반을 세운 점을 높이 평가한다.[52] 그의 저술, 편찬, 조사보고는 후대 학자들의 기초 자료로 기능하며 한국 미술사학이 학문 분야로 자리 잡는 데 핵심적인 좌표 역할을 하였다.[53]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황수영 Institution: 도쿄제국대학 A gradutes B
Person: 황수영 Institution: 도쿄제국대학 A takesCourseAt B
Person: 황수영 Institution: 이와나미문고 A worksAt B
Person: 황수영 Institution: 국립중앙박물관 A worksAt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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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 황수영 Person: 고유섭 A hasMaster B
Book: 한국불상연구 Person: 황수영 A creator B
Institution: 동국대학교박물관 Institution: 동국대학교 A isAdjunctTo B
Event: 석굴암 수리 공사 Person: 황수영 A isRelatedTo B
Event: 문무왕 수중릉 조사 Person: 황수영 A isRelatedTo B
Event: 석굴암 수리 공사 Institution: 국립중앙박물관 A isRelatedTo B
Event: 문무왕 수중릉 조사 Institution: 국립중앙박물관 A isRelatedTo B
Group: 고고미술동인회 Institution: 동국대학교 A isRelatedTo B
Person: 황수영 Institution: 동국대학교 A worksAt B (총장·교수 경력)
Person: 황수영 Institution: 동국대학교박물관 A worksAt B (박물관장 경력)
Person: 황수영 Institution: 국립중앙박물관 A worksAt B (관장)
Person: 황수영 Institution: 이와나미문고 A worksAt B (편집부 근무)
Person: 황수영 Institution: 도쿄제국대학 A takesCourseAt B (경제학부)



Timeline




Network Graph






참고자원







주석


  1.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2.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3.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4. 정영호, "황수영 (黃壽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5. 정영호, "황수영 (黃壽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6.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7.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8.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9.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10.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11.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12.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13.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14.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15.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16.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17.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18.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19.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20.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21.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22.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23.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24.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25.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26.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27.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28.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29.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30.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31.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32.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33.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34.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35.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36.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37.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38.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39. 정영호, "황수영 (黃壽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0. 정영호, "황수영 (黃壽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1. 정영호, "황수영 (黃壽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2.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43. 이기선, 「현대한국의 불교학자 27. 황수영」, 『법보신문』, 2017.08.28. 01, 『불교평론』online, 불교평론.
  44. 정영호, "황수영 (黃壽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5. 정영호, "황수영 (黃壽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6.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47.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48. 정영호, "황수영 (黃壽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9.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50.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51.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52. 이기선, 「현대한국의 불교학자 27. 황수영」, 『법보신문』, 2017.08.28. 01, 『불교평론』online, 불교평론.
  53. 정영호, "황수영 (黃壽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