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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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25-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김한주(SNU2025))이 작성했습니다.




황수영(黃壽永)
출처 :
 
한글명 황수영 한자명 黃壽永 영문명 가나명 이칭 초우(蕉雨)
성별 남 생년 1918년 몰년 2011년 출신지 경기도 개성시 전공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황수영(蕉雨, 1918–2011)은 한국 불교미술사·고고미술 연구의 기초를 확립한 대표적 미술사학자다.[1] 그는 국립박물관 박물감, 동국대학교 교수·박물관장·총장 등을 역임하며 학문 연구와 문화재 조사·보존 행정을 병행한 드문 학자였다.[2] 평생에 걸쳐 불상·탑·석굴암·금석문 등 한국 불교미술 전반을 연구하며 현대 한국 미술사학의 제도적·학문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다.[3]


생애


수학기(1918년 출생부터 1941년 졸업까지)

1918년 6월 10일, 경기도 개성공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창원이며, 호는 초우(蕉雨)이다.[4] 1931년 개성 제일보통학교를 거쳐, 이후 1936년 서울의 경복중학교기관를 졸업하였다.[5] 이후 그는 일본 유학을 결심하고 경쟁이 치열한 마쓰야마고등학교기관에 조선인 2명 중 한 명으로 합격하여 문과 교육을 받았다.[6] 이 학교는 제국대학 예비교육기관으로 높은 수준의 교과과정을 제공하였고, 황수영은 이 시기 외국어 및 교양 중심의 학업을 충실히 수행하였다.[7] 1939년 졸업 후 그는 일본의 도쿄제국대학기관 (東京帝國大學) 경제학부에 입학하였으며, 외국어 교육이 강조된 환경 속에서 도서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학업에 몰두하였다. [8] 이 시기의 집중적 학습은 훗날 그의 유창한 영어 능력의 기초가 되었다. [9] 1941년 졸업 후 그는 교수 쓰치야 다카오의 추천으로 당시 일본 지식계를 대표하는 이와나미서점기관 편집부에 취업하여 출판 문화의 중심에서 경력을 시작하였다. [10]


성장기(1941년 졸업 이후 1956년 동국대 교수 임용 전까지)

도쿄제국대학 졸업 후 이와나미 문고기관에서 근무하던 그는 1944년 귀국하여 고향으로 돌아왔고, 1945년 광복 이후에는 개성상업학교기관 교감을 맡아 지역 교육 활동에 참여하였다.[11] 이 시기 그는 북만주로의 취업 이주, 귀향, 전란 등 격변의 시대를 경험하며 다양한 사회적·개인적 변화를 겪었다.[12]

한편,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우현 고유섭인물과 교유했는데, 1935년 마쓰야마고등학교기관 재학 중 고려청자에 대한 질문을 계기로 우현과 첫 대면하였고, 이후 방학 때마다 개성으로 돌아와 우현과 함께 견불사·공민왕릉 등 송도 지역의 고적을 답사하였다.[13] 또한 그는 우현과 함께 현화사비, 대각국사비, 오룡사비의 탁본 작업을 수행하며 금석문 연구의 기초를 쌓았고, 이는 평생의 연구 태도와 조사 방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14]

도쿄 유학 시절에도 그는 우현을 여러 차례 만나 일본 내 미술계 동향을 함께 살피며 학문적 자극을 받았고, 1940년 정창원御物 특별전에 참석할 때에도 고유섭인물과 동행했다.[15] 1943년 우현이 일본 예술학회에서 「조선탑파의 양식 변천」을 발표할 때에도 그와 함께하며 미술사 연구의 새로운 관점을 접하였다.[16]

1944년 우현이 별세하자, 황수영은 그의 49재 추도식에서 눈물을 흘리며 추도문을 읽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미술사를 평생의 진로로 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17] 그는 “이날을 고비로 평생의 갈 길을 새롭게 마련하였다”라고 회고하며, 미술사 연구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때 확립하였다.[18]

그는 1948년 이희승 선생의 추천으로 국립중앙박물관기관박물감(학예사)으로 취업하여 미술사와 고고학을 실제 유물과 유적을 통해 다루는 첫 현장 실무를 맡았다.[19] 이후 수습·발굴·금석문 조사 등 초기 연구 활동은 훗날 그의 대표 연구 영역을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고, 미술사학자이자 문화재 조사 연구자로서의 성장을 촉진하였다.[20]


완성기(1955년 교수 임용부터 1985년 정년 퇴임까지)

1955년 황수영은 동국대학교기관 불교대학 교수로 임용되어 본격적인 학문적 활동을 전개하였다.[21] 이후 그는 발굴·조사·보존 업무와 학술 활동을 병행하며 미술사·고고미술 분야 전반에서 전문성을 확립했다. [22] 1960년에는 김원룡·전영필·진홍섭·최순우 등과 함께 고고미술동인회단체를 결성하여 한국미술사학회의 기초를 마련했고, 이는 미술사 연구의 제도적 토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23]

그는 1961년부터 1964년까지 토함산 석굴암 수리 공사사건의 감독관으로 참여하여 현장 조사와 보존 작업을 지휘하였다. [24] 또한 1963년부터 1971년까지 동국대학교박물관기관 초대 박물관장을 맡아 대학 박물관의 기틀을 세우고 학술·교육의 거점으로 기능하게 하였으며, 이후에도 박물관장을 맡아 장기간 대학 내 연구 인프라를 구축하였다. [25] 1964년에는 신라 삼산·오악 학술조사사건단에 참여해 신라 유적을 본격 조사했으며, 1966년에는 문무왕 수중릉 조사사건 확인·발표하여 신라 왕릉 연구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였다. [26]

그는 1962년부터 1994년까지 문화재위원회기관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며 문화재 지정·보존·정책 자문 등 국가 문화재 행정의 중추적 역할을 맡았다. [27] 1971년부터 1974년까지는 국립중앙박물관기관 관장으로 재임하며, 국가 박물관의 운영·전시·보존 정책을 총괄하였다. [28] 이 시기 그는 해외 박물관을 시찰하며 한국 박물관 제도의 현대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29] 1978년부터 1980년에는 한국대학박물관협회단체 회장으로 활동하며 대학 박물관 간 협력 체계를 강화하였다. [30] 이어 1978년 9월부터 1982년 2월까지 동국대학교대학원기관 대학원장으로 재임하며 후학 양성과 대학원 체계 정비에 기여하였다. [31]

1982년부터 1985년까지 동국대학교기관 총장으로 선출되어 대학의 행정적 최고 책임자로서 학교의 장기 발전 전략, 조직 정비, 연구 인프라 확충을 추진하였고, 일본 기업 및 동문들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고가의 슈퍼컴퓨터 도입을 성사시키는 등 행정적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32]


마무리기(1985년 퇴임 이후 2011년 별세까지)

정년퇴임 후에도 황수영은 명예교수로 활동하며 학문적 열정을 지속하였다. [33] 그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연구와 현장 조사를 꾸준히 이어갔고, 베이징 역사박물관기관에서 열린 「산동 청주 용흥사 출토 불교 석각 조상정품」 특별전을 관람할 때에도 작품 하나하나를 최대한 가까이에서 살펴볼 정도로 세밀한 관찰 태도를 유지하였다. [34] 이때 그는 법해사기관의 벽화, 원·명대 사원, 베이징대학교 도서관기관까지 짧은 일정 속에서 정력적으로 시찰하였으며, 이미 80세가 넘은 나이였음에도 연구자다운 집중력과 탐구심을 보였다. [35] 1990년대 이후에도 그는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공간와 중국 돈황공간 지역을 직접 답사하며 현장 중심의 연구 태도를 유지하였다. [36] 2005–2007년에는 동국대학교 박물관기관의 연구실을 자주 방문하여 필요한 자료와 유물을 살펴보았으며, 90세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독서와 연구를 계속하였다. [37] 황수영은 2011년 2월 1일 향년 93세로 별세하였다.[38]





연구


불교미술 및 고고미술사 연구

황수영은 불상·탑·불교 공예·금석문 등 한국 불교미술 전반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학문적 체계를 확립한 인물로 평가된다.[39] 그는 『한국불상연구서적』와 여러 불교미술 저술을 통해 조각양식과 불교 신앙의 관계를 분석하며 한국 불교미술사 연구의 기초를 마련하였다.[40] 연구 영역을 특정 주제로 제한하지 않고 불교미술의 거의 모든 분야로 확장한 점은 후대 학계에서 '기초 체계를 세운 학자'라는 평가로 이어졌다.[41] 정우택의 논문에서도 황수영이 미술사 연구에서 “전문분야를 무분별하게 늘리지 않되, 깊이 있는 이해를 추구한” 학자였다고 기록한다.[42]그의 연구는 후학들의 불교미술 연구 방향 설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 미술사학에서 불교미술 분야의 비중을 확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43]


유적 조사·발굴 및 문화재 보존 활동

황수영은 국립중앙박물관기관 박물감으로 임명된 1948년 이후 전국의 사찰·석조유물·고적을 직접 조사하며 현장 중심의 연구를 지속하였다.[44] 그는 석굴암 해체·보수 공사사건 감독, 문무왕 수중릉 확인사건 확인,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불 등 주요 유적 조사에 참여하여 문화재의 가치 규명과 보존에 공헌하였다.[45] 이러한 조사 경험은 정우택의 논문에서 "평생 견지한 면밀한 조사 노트 작성의 근원"으로 평가되며, 그의 연구 태도 형성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46] 문화재위원 활동을 30여 년간 수행한 그는 문화재 지정·정책 자문 등 국가 문화재 행정의 핵심 역할을 맡았다.[47] 현장에서의 조사·기록·해석을 함께 수행한 그의 방식은 한국 고고미술 연구에 '현장 중심'이라는 기준을 성립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48]


학문 기반 구축 및 후학 양성

황수영은 1960년대 고고미술동인회단체 창립을 주도하여 이후 한국미술사학회로 이어지는 학문 공동체의 기틀을 마련하였다.[49] 동국대학교기관 박물관장·대학원장·총장 등을 역임하며 대학 내 연구 시스템과 동국대학교박물관기관 조직을 정비하여 학문적 기반을 제도적으로 구축하였다.[50] 그는 후학과 동료들에게 "유물이 말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엄정한 학문 태도를 강조하며 학문후속세대의 연구윤리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51] 법보신문 역시 그를 "불교미술사의 큰 줄기를 세운 학자"로 평가하며, 연구 뿐 아니라 학계 기반을 세운 점을 높이 평가한다.[52] 그의 저술, 편찬, 조사보고는 후대 학자들의 기초 자료로 기능하며 한국 미술사학이 학문 분야로 자리 잡는 데 핵심적인 좌표 역할을 하였다.[53]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황수영 Institution: 도쿄제국대학 A gradutes B
Person: 황수영 Institution: 도쿄제국대학 A takesCourseAt B
Person: 황수영 Institution: 이와나미문고 A worksAt B
Person: 황수영 Institution: 국립중앙박물관 A worksAt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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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 황수영 Person: 고유섭 A hasMaster B
Book: 한국불상연구 Person: 황수영 A creator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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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t: 석굴암 수리 공사 Person: 황수영 A isRelatedTo B
Event: 문무왕 수중릉 조사 Person: 황수영 A isRelatedTo B
Event: 석굴암 수리 공사 Institution: 국립중앙박물관 A isRelatedTo B
Event: 문무왕 수중릉 조사 Institution: 국립중앙박물관 A isRelatedTo B
Group: 고고미술동인회 Institution: 동국대학교 A isRelatedTo B
Person: 황수영 Institution: 동국대학교 A worksAt B (총장·교수 경력)
Person: 황수영 Institution: 동국대학교박물관 A worksAt B (박물관장 경력)
Person: 황수영 Institution: 국립중앙박물관 A worksAt B (관장)
Person: 황수영 Institution: 이와나미문고 A worksAt B (편집부 근무)
Person: 황수영 Institution: 도쿄제국대학 A takesCourseAt B (경제학부)



Timeline




Network Graph






참고자원







주석


  1.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2.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3.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4. ↑ 정영호, "황수영 (黃壽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5. ↑ 정영호, "황수영 (黃壽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6.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7.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8.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9.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10.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11.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12.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13.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14.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15.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16.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17.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18.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19.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20.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21.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22.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23.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24.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25.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26.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27.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28.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29.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30.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31.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32.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33.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34.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35.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36.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37.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38.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39. ↑ 정영호, "황수영 (黃壽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0. ↑ 정영호, "황수영 (黃壽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1. ↑ 정영호, "황수영 (黃壽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2.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43. ↑ 이기선, 「현대한국의 불교학자 27. 황수영」, 『법보신문』, 2017.08.28. 01, 『불교평론』online, 불교평론.
  44. ↑ 정영호, "황수영 (黃壽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5. ↑ 정영호, "황수영 (黃壽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6.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47.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48. ↑ 정영호, "황수영 (黃壽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9.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50.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51. ↑ 정우택, 「蕉雨 黃壽永 박사 미술사와의 운명적 만남」, 『미술사학연구』제299호, 한국미술사학회, 2018, 5-21쪽.
  52. ↑ 이기선, 「현대한국의 불교학자 27. 황수영」, 『법보신문』, 2017.08.28. 01, 『불교평론』online, 불교평론.
  53. ↑ 정영호, "황수영 (黃壽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