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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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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金壽卿)
김수경1942.jpg
출처 :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26쪽.[1]
 
한글명 김수경 한자명 金壽卿[2] 영문명 Kim Sugyŏng[3] 가나명 キム スギョン[4] 이칭 やまかわ てつ (山川哲)[5]
성별 남성 생년 1918년 몰년 2000년 출신지 강원도 통천군 통천면 서리[6] 전공 철학, 언어학[7]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김수경인물은 북한의 언어학자로, 북한 건국[8] 초기의 '언어학'과 '언어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9] 1940년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하였으며, 그 후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언어학 대학원에서 재학했다.[10] 해방 이후인 1946년에는 북으로 넘어가 김일성종합대학의 창립 멤버가 되었다.[11]


생애


출생부터 소년기

김수경은 1918년 5월 1일 동해안에 위치한 강원도 통천군공간의 중심지인 통천면 서리(현재는 휴전선 북쪽)에서 아버지 김선득인물(金瑄得, 1896~1950)과 어머니 이소옥인물(李素玉, 1893~1961) 사이에서 태어났다.[12] 형제로는 형 김복경인물(金福卿, 1913~1974)과 여동생 김정아인물(金貞娥, 1926~2020)가 있다.[13] 김수경은 조선인 대상의 소학교인 보통학교를 신의주공간에서 입학하였으며, 1925년 여름에 군산 공립보통학교기관로 전학하였다.[14] 이후 1930년에 군산 공립중학교기관에 입학, 1934년에는 경성제국대학기관 예과에 입학한다.[15] 이는 당시 일반적으로 5년제였던 중등학교를 4년만에 졸업한 것으로, 흔히 '사수四修'라고 불리며 우수한 학생만 인정받는 특례 조치였다.[16]


경성제국대학 재학 시기

1934년 4월 경성제국대학 예과 문과 갑류(갑류는 영어, 을류는 독일어를 제1외국어로 함)에 입학한[17] 김수경은 예과 과정에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모두 익혔다.[18] 1937년 4월 김수경은 경성제국대학 본과의 법문학부에 진학했다.[19] 그러나 당시 경성제국대학에 언어학 전공 과정은 없었으며, 이에 김수경은 '국어국문학'[20]이나 '조선어-조선문학'와 같은 개별 언어에 대한 전공을 선택하는 대신 철학과의 분과 중 '철학 전공'[21], 이른바 '순수철학' 과정을 선택한다.[22] 예과, 본과를 합해 총 6년간의 대학생활 이후 1940년 3월 31일, 김수경은 학사 시험에 합격하여 문학사 학위를 받아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한다.[23]


도쿄제국대학 대학원 시기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한 김수경은 1940년 4월 30일 자로 도쿄제국대학기관 문학부 대학원에 입학하여, 서류상으로는 1944년 3월 15일 퇴학까지 약 4년간 재학했다.[24] 지도교원은 언어학 강좌를 담임하고 있던 오구라 신페이인물[25][26]였으며 연구 과제는 ‘조선어의 비교언어학적 연구’였다.[27] 아내 이남재인물와 1943년 도쿄공간에서 결혼을 한 이후, 서류상으로는 1944년 3월 15일자로“일신상의 사정”으로 퇴학하고 4월 15일자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조선어학연구실의 촉탁이 되었다.[28] 도쿄에서의 연구를 중단한 이유는 1943년 봄 오구라 신페이가 퇴직하면서 도쿄제국대학에 조선어학 전문가가 없어진 것, 아내 이남재가 임신하였던 상황, 그리고 무엇보다 '내지内地'[29]에 있는 조선 및 대만 유학생 학도출진을 피하기 위함으로 추정된다.[30]


해방 직후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을 맞은 경성제국대학의 구성원들은 바로 다음날인 8월 16일에 이미 경성대학 자치위원회단체[31]를 조직했다.[32] 김수경도 이 자치위원회의 일원이었으며, 이후 김수경이 김일성대학 문학부에 제출한 자필이력서[33]에도 8월 15일 자로 경성대학 자치위원회 법문학부 위원이 되었다고 적혀있다.[34] 그러나 미군정과의 갈등, 미육군항공대 제308폭격대의 법문학부 건물 점거 등의 이유로 이듬해 봄까지 수업이 개강되지 못하였고 결국 김수경은 1945년 11월 30일 자로 경성대학 촉탁 및 자치위원회 위원을 그만두었다.[35] 이후 김수경은 1945년과 1946년에 경성경제전문학교기관[36], 경성사범학교기관[37]의 부설 임시중등교원양성소, 경성대학 예과, 경성대학 법문학부 등 이후 서울대학교로 이어지는 여러 학교들에서 어학 강의를 하였다.[38]


월북부터 한국전쟁까지

1946년에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김일성대학기관 개교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미군정은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국대안)을 발표한다.[39] 미군정의 국대안과 관련하여 당시 대학 구성원들 사이에서 혼란이 있었으며(국대안 파동사건), 이 과정에서 많은 좌파 교원이 월북하거나 자취를 감추었다.[40] 1946년 8월 17일, 이러한 상황에서 김수경은 경성제국대학 동기생이자 자신보다 먼저 조선공산당단체에 입당했던 박시형인물, 김석형인물과 함께 38선을 넘어 입북했다.[41] 이때 김수경은 출발 직전까지 아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은밀하게 월경하였으며, 서적도 무엇도 소지하지 않은 채 가벼운 복장으로 월북하였다.[42] 곧이어 1946년 8월 20일, 김일성대학 문학부 교원으로 임명되었다.[43] 같은 해 10월에는 아내(이남재)와 어머니(이소옥), 장녀(김혜자인물, 1944~1991), 장남(김태정인물, 1945~ ), 여동생(김정아인물, 1925~2020 ), 사촌 여동생이 평양에 합류하였으며, 이후 차녀(김혜영인물, 1948~ )와 차남(김태성인물, 1949~ )이 태어났다.[44][45]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사건 초기 인민군의 우세와 함께 남으로 파견되었던 김수경은 전황이 역전됨에 따라 평양으로 후퇴하였고, 이 과정에서 피란길에 올라 김수경을 찾고자 남하했던 가족들과 엇갈려 이별하게 된다.[46]


휴전 이후

휴전 이후에 김수경은 평양에서 김정순인물과 재혼하고 자녀로 김혜숙인물(1951~), 김태균인물(1954~), 김혜원인물(1955~), 김태웅인물(1961~), 김혜옥인물(1963~2015)을 갖는다.[47] 이 가운데 김혜숙은 (당이 김일성종합대학 교원들에게 전쟁고아를 받아들이도록 지시한 것에 따라,) 1956년에 보육원에서 입양한 것이다.[48] 1985년에는 토론토로 이주한[49] 첫번째 아내 이남재로부터 편지를 받으면서 약 35년 만에 전쟁 이전의 가족들과 우편으로 연락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후 간간히 편지를 주고받거나 베이징과 평양 등에서 짧게나마 재회할 수 있었다.[50] 또한 김수경은 1968년, 소속이 김일성대학 교수에서 국립도서관 사서로 변경된 후 공적인 연구 활동에서는 벗어나 있었으나, 1988년 베이징대학 제2차 조선어 학술토론회에서 차녀 김혜영과 첫 이산가족 상봉을 한 그 해에 연구활동을 재개하였다.[51] 편지를 통한 가족간의 연락은 1999년 2월까지 이어졌으며, 김수경은 2000년 3월 1일 오전 8시 20분에 81년 10개월의 생애를 마감하였다.[52] 김수경의 부고는 평양에서 재혼한 아내 김정순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김수경의 삼남 김태균(김정순과의 자녀 중 첫째)의 편지를 통해 이남재와 자녀들에게 전해졌다.[53]





연구


연구 경향

김수경은 여러 언어를 익히고 그 뛰어난 어학능력을 바탕으로 한국어와 일본이 이외의 언어로 된 자료를 번역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54] 특히 해방 이전에는 고바야시 히데오인물[55]가 편집한 논문집에서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로 된 원본 논문들을 번역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추정된다.[56] 이 논문집은 〈언어 연구・현대의 문제 言語硏究・現代の問題〉작품(1945)로 일본에서는 당시까지 어디에서도 소개된 적이 없는 유럽의 구조언어학을 둘러싼 최신의 논의가 포함된 편저였다.[57] 이러한 구조언어학의 여러 조류 가운데, 김수경은 사상과 연구 방법면에서 프라하 학파에 몰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58] 프라하 학파가 확립했다고 알려진 음운론을 구사하였다.[59] 또한 트루베츠코이 등의 형태음운론을 바탕으로 헀다고 생각되는 정서법에도 관여하고 있었다.[60] 김수경은 이러한 일반언어학 내지 구조언어학을 지향하면서, 역사언어학도 깊이 파고들었다.[61]


대표 연구(역사언어학/음운론/정서법)

해방 후에 김수경이 남한에 남긴 업적은 번역을 제외한다면〈진단학보〉학술지에 게재된 「《룡비어천가》삽입자음고」원고[62]가 유일하다.[63] 이 논문의 연구 대상은 '삽입자음', 즉 현재 한국에서 '사이시옷'이라 불리는 것과 비슷한 것을 가리킨다.[64] 당시까지 두 개의 어사를 잇는 삽입자음은 일본어의 조사 'の'에 해당하는, 즉 속격을 나타내는 문법적 기능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었다.[65] 그러나 김수경이 〈용비어천가〉에서 삽입자음 용례를 분석한 결과, 이미 속격을 나타내는 요소가 있는 경우에도 삽입자음이 덧붙는 사례가 많음을 확인하였고, 따라서 속격론에 기초한 설명을 기각하였다.[66] 이 논문에서 김수경은 삽입자음에 대해 '휴지(pause)를 넣어 유성음에 후행하는 무성음의 유성화를 방지'하는 것으로 설명한다.[67] 또한 삽입자음들이 사이시옷으로 수렴한 것(삽입자음들이 사이시옷으로 일종의 '부호화' 된 것)에 대해서도 역사에 근거한 가설을 제시한다.[68]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는것으로 1948년 공표된 '조선어 신철자법'의 '절음부 도입'이 있는데, 여기서 절음부란 음가가 없는 부호[69]를 이용해 형태소를 시각적으로 구획하는 것으로, 종래에 사이시옷 등으로 불리던 삽입자모 대신에 삽입하는 방식이다.[70] 즉, 김수경의 「《룡비어천가》삽입자음고」 연구 내용과 합치하고있다.[71] 이 뿐만 아니라 김수경은 '조선어 신철자법'에서 '두음법칙의 폐기'에 대한 이론적 근거도 제시했다.[72] 오늘날에 남한에서는 '노동'과 같이 표기하는 것을 북한에서는 '로동'과 같이 표기하는 것, 북한에서 이러한 정서법이 확정될 때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것이 바로 김수경이 월북 직후 당 기관지 『로동신문』에 발표한 논문이었다.[73]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홍길동 Person: 홍아무개 A hasSon B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고등보통학교 A graduates B
Person: 홍길동 Institution: ○○대학교 A worksAt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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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Person: 홍길동 A creator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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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원







주석


  1. 해당 출처에 따르면 1942년 도쿄제국대학 대학원 시절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2. "北に渡った言語学者", 『人文書院』online, 株式会社 人文書院. 이타가키 류타(板垣竜太)의 저서 "북으로 간 언어학자"의 일본어 원서 출판사 소개 페이지.
  3. "이타가키 류타(板垣竜太), 「김수경(金壽卿)의 조선어 연구와 일본 : 식민지, 해방, 월북」, 『社会科学 』, 44(1), 同志社大学人文科学研究所, 2014, 61~98쪽." 등 이타가미 류타의 논문, 저서에서 사용된 표기. '매큔-라이샤워 표기법' 또는 이를 바탕으로한 북한의 '조선어의 라틴문자 표기법'에 따른 로마자 표기이다.
  4. "北に渡った言語学者", 『人文書院』online, 株式会社 人文書院.
  5. "이타가키 류타(板垣竜太), 「김수경(金壽卿)의 조선어 연구와 일본 : 식민지, 해방, 월북」, 『社会科学 』, 44(1), 同志社大学人文科学研究所, 2014, 71쪽."에서 발췌. 일본어 창씨명.
  6. "이타가키 류타(板垣竜太), 「김수경(金壽卿)의 조선어 연구와 일본 : 식민지, 해방, 월북」, 『社会科学 』, 44(1), 同志社大学人文科学研究所, 2014, 63쪽."에서 발췌. 분단 이전의 행정구역으로, 현재 군사분계선 이북지역.
  7. 철학은 경성제국대학 학적상의 전공이며, 언어학은 도쿄제국대학 대학원 시기부터의 전공이자 그의 실제 관심 및 연구분야이다.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34쪽." 내용 요약)
  8. 일본인인 이타가키 류타가 사용한 표현을 그대로 옮김. '북한을 국가로 보는가'에 대한 정치적 견해는 원 작성자의 의도는 물론 이 주제에서 중요한 논의가 아니므로 차치하고, 실질적/국제적으로 국가로 기능하고 있으므로 해당 관점의 표현을 유지함.
  9.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35쪽.
  10.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34쪽.
  11.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35쪽.
  12. 이타가키 류타(板垣竜太), 「김수경(金壽卿)의 조선어 연구와 일본 : 식민지, 해방, 월북」, 『社会科学 』, 44(1), 同志社大学人文科学研究所, 2014, 63쪽.
  13.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49~50쪽.
  14.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51쪽.
  15.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51쪽.
  16.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51쪽.
  17.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52쪽.
  18. 이타가키 류타(板垣竜太), 「김수경(金壽卿)의 조선어 연구와 일본 : 식민지, 해방, 월북」, 『社会科学 』, 44(1), 同志社大学人文科学研究所, 2014, 66쪽.
  19.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58쪽.
  20. 일제강점기였으므로 여기서 '국어'는 '일본어'를 의미한다.
  21. 당시 경성제국대학의 법문학부-철학과는 철학, 윤리학, 심리학, 종교학, 미술 등의 세부 전공으로 코스가 나뉘어진다. (이타가키 류타(板垣竜太), 「김수경(金壽卿)의 조선어 연구와 일본 : 식민지, 해방, 월북」, 『社会科学 』, 44(1), 同志社大学人文科学研究所, 2014, 68쪽.)
  22.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58~60쪽.
  23.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63쪽.
  24. 이타가키 류타(板垣竜太), 「김수경(金壽卿)의 조선어 연구와 일본 : 식민지, 해방, 월북」, 『社会科学 』, 44(1), 同志社大学人文科学研究所, 2014, 69쪽.
  25. 小倉進平, 일본의 언어학자이며 조선어(=한국어) 연구로 유명하다. ("오구라 신페이", 『위키백과』online, Wikimedia Foundation.)
  26. 오구라 신페이는 김수경의 경성제국대학 시절에 법문학부-문학과 '조선어-조선문학' 전공의 강좌의 담임 중 한 명이었다. (이타가키 류타(板垣竜太), 「김수경(金壽卿)의 조선어 연구와 일본 : 식민지, 해방, 월북」, 『社会科学 』, 44(1), 同志社大学人文科学研究所, 2014, 68쪽.)
  27. 이타가키 류타(板垣竜太), 「김수경(金壽卿)의 조선어 연구와 일본 : 식민지, 해방, 월북」, 『社会科学 』, 44(1), 同志社大学人文科学研究所, 2014, 69쪽.
  28. 이타가키 류타(板垣竜太), 「김수경(金壽卿)의 조선어 연구와 일본 : 식민지, 해방, 월북」, 『社会科学 』, 44(1), 同志社大学人文科学研究所, 2014, 70쪽.
  29. 일본 제국 시기에 한반도, 타이완 섬과 같은 식민지가 아닌 일본 본토를 부르던 명칭.
  30.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69~71쪽.
  31. 일본 '제국'의 대학이었던 경성'제국'대학에서 경성대학이 되었다. 경성대학 자치위원회는 이 과정에서 대학 시설을 경비하고 대학 정문의 '제국' 두 글자를 검게 칠했다고 언급되어있다. (이타가키 류타(板垣竜太), 「김수경(金壽卿)의 조선어 연구와 일본 : 식민지, 해방, 월북」, 『社会科学 』, 44(1), 同志社大学人文科学研究所, 2014, 78쪽.)
  32. 이타가키 류타(板垣竜太), 「김수경(金壽卿)의 조선어 연구와 일본 : 식민지, 해방, 월북」, 『社会科学 』, 44(1), 同志社大学人文科学研究所, 2014, 78쪽.
  33. 이타가키 류타(板垣竜太), 「김수경(金壽卿)의 조선어 연구와 일본 : 식민지, 해방, 월북」, 『社会科学 』, 44(1), 同志社大学人文科学研究所, 2014, 92쪽.
  34. 이타가키 류타(板垣竜太), 「김수경(金壽卿)의 조선어 연구와 일본 : 식민지, 해방, 월북」, 『社会科学 』, 44(1), 同志社大学人文科学研究所, 2014, 78쪽.
  35. 이타가키 류타(板垣竜太), 「김수경(金壽卿)의 조선어 연구와 일본 : 식민지, 해방, 월북」, 『社会科学 』, 44(1), 同志社大学人文科学研究所, 2014, 78쪽.
  36. 이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전신
  37.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전신
  38. 이타가키 류타(板垣竜太), 「김수경(金壽卿)의 조선어 연구와 일본 : 식민지, 해방, 월북」, 『社会科学 』, 44(1), 同志社大学人文科学研究所, 2014, 79~80쪽.
  39. 이타가키 류타(板垣竜太), 「김수경(金壽卿)의 조선어 연구와 일본 : 식민지, 해방, 월북」, 『社会科学 』, 44(1), 同志社大学人文科学研究所, 2014, 80쪽.
  40.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129쪽.
  41.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130~131쪽." 추가적으로 해당 출처에 따르면 '당시에도 남북의 왕래가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으나, 길이 아닌 오지를 통하면 통제를 피하는 것이 가능했고 이러한 월남/월북이 빈번했다'고 언급된다.
  42.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132쪽.
  43.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133쪽.
  44.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147쪽.
  45. 가족 관계는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50쪽." 참고
  46.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220~221·418~419쪽.
  47.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320~321쪽.
  48.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320~321쪽.
  49. 아내 이남재와 여동생 김정아, 4명의 자녀는 한국전쟁 중 남한으로 이주하였으며, 이들 중 차남(이남재와의 자녀 중 막내)을 제외하고는 모두 1960년대 이후에 북미로 이주하였다.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50쪽.)
  50.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222~225쪽." 내용 요약
  51.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223쪽.
  52.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468쪽.
  53.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468쪽.
  54.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88~97쪽." 내용 중 관련 내용만을 발췌하여 요약
  55. 小林英夫, 김수경이 철학 전공을 하도록 조언한 인물이자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번역으로 저명한 언어학자로, 김수경의 언어학적 지식에도 많은 기여를 하였다. ("이타가키 류타(板垣竜太), 「김수경(金壽卿)의 조선어 연구와 일본 : 식민지, 해방, 월북」, 『社会科学 』, 44(1), 同志社大学人文科学研究所, 2014, 67~68쪽." 내용 요약)
  56.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88~89쪽." 내용 요약
  57.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89쪽.
  58.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89쪽.
  59.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91쪽.
  60.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91쪽.
  61.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92쪽.
  62.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은 표기이지만 원문이 이러하므로 유지하였습니다.
  63.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97쪽.
  64.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98쪽.
  65.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99쪽.
  66.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99쪽.
  67.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99~102쪽." 요약
  68.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99~102쪽." 요약
  69. 여기서는 apostrophe, 즉 [']로 제시됨
  70.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174~175쪽." 요약
  71.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175쪽.
  72.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165쪽."
  73. "이타가키 류타, 고영진·임경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푸른역사, 2024, 35쪽."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