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재

North Korea Humanities

👩🏻‍🏫본 문서는 서울대학교 "25-2 미디어위키를 활용한 역사 데이터 편찬" 수강생(전상현(CNU2025))이 작성했습니다.




김신재(金信哉)
김신재.png
출처 : KMDb,"김신재(金信哉)"
 
한글명 김신재 한자명 金信哉 영문명 Kim Sin-jae 가나명 이칭 星信載
성별 생년 1919년 몰년 1998년 출신지 평안북도 녕변군 또는 의주군 전공




항목

차례


개요 생애 연구 데이터 참고자원 주석




개요

대한민국 영화배우


생애


출생 및 유년기

1919년 3월 31일 평안북도에서 태어났다. 일찍 만주로 이주하여 단둥의 안동현고등여학교를 다녔다. 18세에 학업을 중단하고 신의주 신연극장에서 극장 사무원으로 일하다가 당시 영화 녹음기사로 일하던 최인규와 만나 결혼하면서 배우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1930년~1940년대

일제강점기 남편 최인규의 권유로 1937년 심청에 단역으로 출연해 스크린에 데뷔한 이후 1938년 《도생록》, 1939년 《애련송》 등에 출연했다. 나중에 남편 최인규가 영화 녹음기사에서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뒤로는 최인규가 감독한 영화에 자주 출연했는데 이중에는 1944년 《태양의 아이들》, 1945년 《사랑의 맹세》와 《신풍의 아들들》 등이 있다. 문예봉, 김소영 등과 함께 식민지 조선 영화계의 대표적 여배우로 활동했다. 1940년부터 강제로 진행된 유명인사에 대한 창씨개명 정책의 영향으로 일본식 이름 星信載로 개명했다.


1950년대 - 6.25 전쟁

6.25 전쟁에서 남편 최인규 감독이 납북되고 1.4 후퇴 때 부산으로 내려와 산유화라는 다방을 운영해 생계를 겨우 이어가며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 산유화 다방은 전쟁 당시 부산으로 모여든 문화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1950년~1980년

1950년부터 1970년대까지 많은 영화에서 조연으로 활약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1954년 《탁류》, 1956년 《포화 속의 십자가》와 《단종애사》, 1957년 《인생화보》, 1961년 황성옛터, 1968년 《폭풍의 사나이》, 1970년 《마님》, 1957년 《한네의 승천》, 1978년 《족보》, 1979년 《장마》, 《소나기》 등이 있다. 1980년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가 마지막 은퇴 작품이었는데 이 작품으로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고, 1980년대 말에 문화부장관 공로상을 받았다.





데이터


TripleData

Source (A) Target (B) Relationship
Person: 김신재 Location: 평안북도 녕변군 또는 의주군 출신 A bornIn B
Person: 김신재 Person: 최인규 A married B
Person: 김신재 production: 심청 A appear B
Person: 이유필 production: 도생록 A appear B



Timeline




Network Graph






참고자원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