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사전:편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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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복문 | |
| 蝙蝠紋 | |
| ckid | costume1412 |
|---|---|
| 한글 | 편복문 |
| 한자 | 蝙蝠紋 |
| 영문(음역) | Pyeonbongmun |
| 영문(의미) | Bat pattern |
| 분류 | 문양 |
| 성별 | 여 |
| 시대 | 조선 |
| 연령 | 성인 |
| 신분 | 사대부 |
|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편복문】 | |
정의
- 박쥐를 도안한 무늬
- Bat pattern
해설
편복은 한자로 표기할 때 박쥐 편(蝙)자와 박쥐 복(蝠)자를 쓰는데 박쥐를 의미하는 복(蝠)자가 복(福)자와 같은 음이라 복을 상징하게 되었다. 더불어 박쥐는 오래살고 새끼를 많이 낳는 동물이라 다남과 장수의 영물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조선 후기에는 행복, 장수, 자손번창 등의 길상을 뜻하는 대표적인 무늬가 되었는데 박쥐무늬는 단독무늬 보다는 복이 하늘에서 내린다하여 운문(雲紋)이나 갖가지 염원을 담은 길상어문(吉祥語紋)과 함께 사용되었다. 박쥐를 두 마리를 쌍으로 배치한 무늬는 복이 겹쳐서 들어오라는 소망을 담고, ‘오복수’라하여 가운데 수(壽)자가 있고 그 둘레를 5마리의 박쥐가 원형을 이루며 배열된 커다란 원형 무늬는 장수(長壽)․부(富)․평화(康寧)․수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의 다섯 가지의 복을 의미한다. 조선 말기에는 직물무늬 뿐만 아니라 가구, 노리개, 댕기, 전모, 굴레와 같은 여성의 장신구와 관련된 물건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는데 박쥐의 번식력과 같이 자손번창의 의미를 둔 것과도 연관이 있다. 조선 말기 궁중에서 사용되는 의복과 옷감을 적어놓은 『발기』에 백복문(百蝠紋), 운복문(雲蝠紋)과 같은 무늬 명칭이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어 박쥐무늬의 유행 정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세화만초문 사계화문 포도동자문 매작문 화조문 costume1413 포도다람쥐문 葡萄松鼠紋 Po-do-daramjwi-mun Grape and squirrel pattern 남녀공용 조선 성인 사대부 문양 포도와 다람쥐를 함께 도안한 무늬 A pattern of grapes and squirrels 포도무늬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8세기경 중앙아시아에서부터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와당(瓦當), 전(塼), 석조물 등에 나타났다. 포도는 열매가 많고 덩굴이 뻗어나가는 형태적 특징 때문에 풍요, 부(富), 다자(多子)를 상징하는 무늬로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2세기의 고려청자에 포도와 동자를 도안한 무늬가 많았고 조선시대 도자기와 나전칠기에도 즐겨 사용되었다. 또한 조선시대의 16~18세기 옷감에서도 포도무늬가 한동안 유행하였는데 단독구성보다는 주로 동자(童子) 또는 다람쥐와 함께 복합무늬로 표현하였다. 다람쥐 무늬는 단독으로 시문된 사례는 없고 항상 포도무늬와 함께 표현되었으며 17, 18세기경에 유행하였다. 자식을 상징하는 다람쥐는 청대 민간에서 즐겨 사용하던 무늬를 상류층에서 받아들인 사례로 포도와 함께 사용하여 다자(多子)와 부(富)를 상징하였다. 일반적으로 다람쥐무늬라고 부르고 있으나 형태의 특성을 관찰하면 커다란 꼬리에서 청솔모와 더 유사하다. 이렇듯 풍요를 상징하는 포도 덩굴과 자식을 의미하는 다람쥐[松鼠]무늬를 조합하여 만든 포도다람쥐무늬 [葡萄松鼠紋]는 부(富)와 다남(多男)을 의미하며 17세기에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포도다람쥐무늬의 예로, 안동 권씨(1664~1722년) 당의의 옷감으로 사용된 단(緞)직물, 해평 윤씨(1660~1701년)와 청송 심씨(1683~1718년)의 사(紗)직물과 단(緞)직물, 홍우협(1655~1691년) 묘에서 출토된 단(緞)직물 등이 있으며 포도다람쥐무늬와 함께 전보, 영지, 방승, 서각의 보배무늬가 배열된 것도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 조효숙, 2006, 『우리나라 전통 무늬1 직물』, 서울: 국립문화재연구소 골타운문 보문a 천도문 용문 팔길상문 costume1414 포도동자문 葡萄童子紋 Po-do-dongja-mun Grape and boy figure pattern 여 조선 성인 사대부 문양 탐스러운 포도와 어린 남자 아이를 도안화한 무늬 Grape and boy figure patternsee 동자와 포도로 구성된 포도동자무늬는 포도송이가 다산(多産)의 의미를 내포하여 동자(童子)와 함께 시문하였는데 자연스러운 포도넝쿨 속에서 넝쿨을 타고 노는 동자의 모습을 재미있게 묘사하였다. 동자무늬와 관련한 직물명칭으로는 유일하게 『연산군일기』에 연산군 10년(1504) ‘남색라동자포도쌍스란(藍色羅童子葡萄雙膝襴)’이라는 기록이 있다. 포도동자문은 직물의 전체적인 무늬로 사용되기 보다는 스란단과 같이 부분적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데 사용했다. 조선시대 중기 청주 한씨 묘에서 출토된 치마 스란단에 나타난 무늬는 포도넝쿨에 동자가 매달려 놀고 있는 것을 묘사하였으며 금사(金絲)를 이용한 직금(織金)직물이다. 포도동자무늬는 직물에서는 조선 시대에 나타나는데 반하여 도자기에서는 일찍이 고려청자에서 즐겨 사용하였다. 조선 백자에도 포도는 중요한 소재이지만 고려시대와는 달리 동자 없이 포도넝쿨만 탐스럽게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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