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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사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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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d>Unknown user님의 2024년 1월 7일 (일) 21:3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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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ckid costume0693
한글 다리
한자
영문(음역) Dari
영문(의미) False hairpiece
분류 머리모양
성별
시대 삼국, 조선
연령 성인
신분 사대부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다리】



정의

  • 머리를 크고 장식적으로 꾸미기 위해 자신의 머리에 덧 넣어 사용하는 땋은 머리
  • False braided hairpiece used for voluminous hair style

해설

다리는 다래라고도 하며 『훈몽자회(訓蒙字會)』에 ‘髢 달외’ 라고 표기되어 있어 조선초기에는 ‘달외’로 표기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월자(月子)라고도 하는데, 이는 ‘다리’의 음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다리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여자들의 다양한 머리형을 만드는데 이용되었는데, 크고 길수록 호사로 여기고 상류사회에서는 비싼 값으로 상품(上品)을 사 모으는 등, 부녀자들에게는 재산목록의 하나였다. 다리를 이용한 머리모양에는 고계(高髻), 어여머리, 큰머리 등이 있다. 조선 후기에는 다리를 사용하는 풍습이 지나치고 사치스러워 좋은 다리 한 쌍을 사려면 전답(田畓) 몇 마지기씩 팔아야 했고, 다리의 길이가 길수록 값이 비싸, 다리 하나 값이 중인(中人) 10집의 재산을 넘을 정도여서, 혼인 때 다리를 사기 위하여 가산을 탕진하는 일도 있었다. 이처럼 다리를 이용한 머리모양이 사회문제로까지 확대되자 영조(英祖) 32년(1756) 1월 16일에 가체加髢를 금지하는 영을 내렸다. 그러나 계속된 금지령에도 잘 시행되지 않았고, 정조(正祖) 12년(1788) 10월 3일 다리 얹는 일에 관해 비변사(備邊司)에서 절목을 올린 것을 계기로 점차 실효를 거두어 순조(純祖) 대(代)(1790~1834)부터는 자신의 머리만으로 쪽을 만든 후 작은 비녀를 꽂게 되면서 다리는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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