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복식사전:원유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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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관복
遠遊冠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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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원유관복
한자 遠遊冠服
영문(음역) Wonyu-gwanbok
영문(의미) King’s official court attire
분류 관복
성별
시대 조선, 대한제국
연령 성인
신분 왕족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원유관복】



정의

  • 조선시대 왕이 신하의 조현(朝見)을 받을 때 입던 왕의 조복(朝服)
  • King’s official court attire worn when receiving audience see jobok

해설

삭망(朔望: 음력 초하루와 보름), 조강(朝講), 진표(進表) 때에도 입었던 조복으로 면복 다음 가는 예복이다. 초기에는 원유관(遠遊冠)에 강라의(絳羅衣)를 입는데 강라의의 형태는 면복의 현의(玄衣)와 같으나 장문이 없고 색이 홍색이다. 원유관(遠遊冠), 강라의, 강라상, 백라중단, 폐슬, 수, 대, 규, 패옥, 백말, 대대, 흑화로 일습을 갖추게 된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의하면 고종이 황제가 되자 원유관 대신 통천관(通天冠)을 착용하였고 강사포는 제도가 같으나 중단의 홍색 옷깃에 불문을 중국황제에 준하여 13개를 금박하였다. 혜가 화로 바뀌었다. 태조부터 세종 28년까지 원유관포를 여러 번 명(明)에 사여를 요청했으며 세종 29년 10월에 원유관포를 사여 받았으나 그 당시 명에서 원유관은 쓰지 않은 것이어서 만들어서 보냈다고 한다. 세종은 이 제도를 참고하여『세종오례의(世宗五禮儀)』에 원유관포를 제정했으며『국조속오례의보서례(國朝續五禮儀補序例)』에 기록하였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의하면 원유관은 9량(九梁)이며 각 량에는 18옥을 꿰었으며 서잠도(犀簪導)를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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