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사전:유생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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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생복 | |
| 儒生服 | |
| ckid | costume0065 |
|---|---|
| 한글 | 유생복 |
| 한자 | 儒生服 |
| 영문(음역) | Yusaengbok |
| 영문(의미) | Confucian scholar’s attire |
| 분류 | 관복 |
| 성별 | 남 |
| 시대 | 조선 |
| 연령 | 성인 |
| 신분 | 유생 |
|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유생복】 | |
정의
- 조선시대 유생의 복식
- Confucian scholar’s attire
해설
유생이란 유교를 신봉하고 이를 본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유학(幼學), 처사(處士), 교생(校生), 생원(生員), 진사(進士) 그리고 대과(大科)에 급제하여 관직에 있는 사람도 포함된다. 이들은 성균관 및 사학(四學), 지방은 항교의 청금록(靑衿錄)에 등록이 된 사람이며, 성균관이나 향교의 석전제(釋奠祭)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과 학교에 입학하고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유생복은『경국대전(經國大典)』예전(禮典) 의장조(儀章條)에 “제학생도(諸學生徒)의 관복으로 관은 치포건, 복은 단령(유학용 靑衫), 대는 도아(絛兒)”를 제시했고,『태종실록(太宗實錄)』 11년 6월에 “성균관 및 오부 유생은 조정의 제도에 의해 비로소 청금을 착용하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수광의『지봉유설(芝峰類說)』의 선조 33년에 “경연에서 알성하는 날에 관중의 유생들이 건(巾)과 립(笠)을 뒤섞어 착용한다. 별시강경을 위시하여 유생들은 두건을 착용하여 의장(衣章)을 아름답게 꾸미자” 이긍익의『연려실기술별집(練藜室記述別集)』영조 22년에 “안동향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난삼(襴衫), 연건(軟巾), 도아(絛兒)의 제도를 모방하여 성균관에 하사하고 영조 23년부터 여러 진사(進士)가 입기 시작하였다. 장지연의『대동기년(大東紀年)』에도 영조 22년 유생이 과거를 볼 때 난삼과 복두를 쓰게 하였고, 생원, 진사도 복두 난삼을 착용하였다. 한치윤의『해동역사(海東繹史)』에 ”조선 생도는 모두 연라건을 쓰고 청난삼에 사대를 띠고, 우묵하고 신코가 뾰족하며 바닥이 넙죽한 피혜(皮鞋)에 포말(布襪)을 신었다.”고 하여 유생복은 연건 복두 난삼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전기에는 청색 의에 검정연을, 세종 10년(1428)에는 옥색 의에 청색 선을 둘렀다. 선조 22년(1589)에는 남색 의에 청색 또는 검정 선을 둘렀고, 숙종 40년(1714)부터는 옥색 의에 검정 선을 두른 난삼을 입었고, 영조 때는 안동 향교에 있는 옥색에 청색 선을 두른 난삼을 본떠 만들다가 고종 때 꾀꼬리 색으로 옷 빛깔이 바뀌면서 명칭도 앵삼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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