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사전: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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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지 | |
| 把持 | |
| ckid | costume0446 |
|---|---|
| 한글 | 바지 |
| 한자 | 把持 |
| 영문(음역) | Ba-ji |
| 영문(의미) | Pants |
| 분류 | 일상복 |
| 성별 | 남녀공용 |
| 시대 | 조선 |
| 연령 | 성인 |
| 신분 | 모든계층 |
|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바지】 | |
정의
- 두 다리를 꿰는 가랑이가 있는 아랫도리 옷의 하나
- A bifurcated lower garment
해설
바지는 한자로는 ‘파지(把持)’로 기록되어 있다. 고(故) 김동욱(金東旭, 1922-1990) 설에 의하면 이 어휘는 정인지(鄭麟趾, 1396~1478)의 주석에 나와 있다고 하는데 그 외에 곤(褌), 고(袴) 외에 이의(裏衣), 겹고(裌袴), 단고(單袴)와 같은 다양한 명칭이 있다. 남자는 포(袍) 안에 저고리와 함께 바지를 입었으며 여자는 치마 안에 속옷으로 바지를 입었다. 홑바지, 겹바지, 누비바지, 핫(솜)바지 등의 명칭에서 볼 수 있듯이, 바지의 구성법은 다양하다. 임진왜란 전에는 남녀 모두 사타구니 앞뒤로 트임이 있는 개당고[開襠袴]와 트임 없이 막힌 합당고[合襠袴]를 입었다. 개당고와 합당고의 두 양식을 합쳐서 입기 편하게 만든, 16세기의 세 가랑이 바지도 출토되고 있다. 또한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깨끈을 단 바지도 종종 확인된다. 그러나 임란 이후에 남자의 바지는 중국 바지인 당고(唐袴)로 변화되었다. 당고란 지금 우리의 남자 바지로 입혀지고 있는 사폭바지이다. 임란 중에 전사한 김덕령(金德齡, 1567-1596) 장군 묘의 출토복식 중에서 사폭바지로 추정되는 유물이 확인된 바 있다. 사폭바지에는 허리띠와 대님을 사용하였으며 종아리에 대님 대신 행전(行纏)을 치기도 하였다. 한편 조선 후기 여성들은 여전히 임란 전과 동일한 구조의 바지를 동일한 방식으로 착용하였다. 단지 임란 전과는 달리 개당고의 바지부리가 좁아지면 붕어배래로 변화되었다. 속속곳이라고 하는 합당고를 안에 입고 그 위에 개당고를 착용하였는데 개당고는 겹옷일 때는 ‘바지’라고 하고 홑겹일 때는 ‘고쟁이’라고 하였다. 개화기 후에는 뒷부분만 트인 개량형 바지도 등장하였다.
참고문헌
- 문화재청 편, 2006, 『문화재대관-중요민속자료 2: 복식·자수편』, 대전: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 【REF0108】
- 榮州市, 1998, 『判決事 金欽祖先生 合葬墓 發掘調査 報告書』, 榮州: 榮州市 【REF0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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