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사전:내외용 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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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외용 쓰개 | |
| 內外用 쓰개 | |
| ckid | costume0775 |
|---|---|
| 한글 | 내외용 쓰개 |
| 한자 | 內外用 쓰개 |
| 영문(음역) | Nae-oe-yongsseugae |
| 영문(의미) | Woman’s veil |
| 분류 | 관모 및 쓰개 |
| 성별 | 여 |
| 시대 | 조선 |
| 연령 | 성인 |
| 신분 | 왕족, 사대부 |
|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내외용 쓰개】 | |
정의
- 조선시대 여성들이 외출 시 얼굴을 가리는 목적으로 착용한 쓰개
- Woman’s veil for covering the face when going outside during the Joseon
해설
폐면(蔽面) 즉 얼굴을 가리는 풍습은 일찍부터 있었는데, 중국 한대(漢代)에 편찬된『예기(禮記)』내측(內側)에는 여자가 외출할 때 꼭 폐면을 하여 얼굴을 감출 것 등이 정해져 있다.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면의(面衣)’라는 비단 쓰개[帛巾]가 사용되었다 하는데, 이러한 풍습은 오랜 동안 후세에까지 영향을 미쳐, 송(宋) 고승(高承)의 『사물기원(事物紀元)』에, “요즘…면의(面衣)가 있다. 얼굴 앞뒤는 모두 자색 비단(紫羅)을 사용하여 아래로 늘어뜨렸다. 여자가 말에 타고 멀리 나갈 때에 이것을 사용하여, 면모(面帽)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폐면용 쓰개를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되나 문헌에서의 기록으로는 고려 여자가 몽수를 사용했다는 것이 처음이다. 조선시대에는 너울, 쓰개치마, 장옷, 천의 등, 다양한 종류의 폐면용 쓰개가 등장하는데, 이 시기의 쓰개는 유교사상과 관련 깊은 것으로 유행과 사치의 의미가 컸던 고려시대의 몽수와는 상징하는 의미가 다르다. 조선시대는 유교적 가치관 확립을 위해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고, 여성들은 남성에게 복종하는 삼종지도(三從之道)와 내외법을 강조함으로써, 외출을 제한하고 외간 남자와 바로 얼굴을 대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유교적 사회윤리의 제도적 규정은 조선 초부터 명문화되어 있었으나 일반적 풍습으로 나타난 것은 조선 후기이다. 이러한 사회적 인습 하에 조선 후기에는 어쩔 수 없이 여자가 외출을 해야 할 경우에는 외간 남자가 얼굴을 볼 수 없도록 가려야 했는데 이 때 사용하는 쓰개를 통틀어 내외용 쓰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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