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사전:금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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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선단 | |
| 金線緞 | |
| ckid | costume1211 |
|---|---|
| 한글 | 금선단 |
| 한자 | 金線緞 |
| 영문(음역) | Geum-seondan |
| 영문(의미) | Brocade |
| 분류 | 직물 |
| 성별 | 남녀공용 |
| 시대 | 조선 |
| 연령 | 성인 |
| 신분 | 왕족, 사대부 |
| 데이터 소스: ☞ 한국연구재단 한국복식사전 【금선단】 | |
정의
- 화문단 바탕에 특정한 무늬 부분에만 금사나 은사를 이중으로 넣어 화려하게 제직한 직물
- Flower-patterned brocade woven with gold or silver threads
해설
조선시대 유물 중에는 금사와 은사로 무늬를 제직한 직물들이 종종 출토되는데 비록 은사로 무늬를 짠 경우도 문헌에는 은선단이란 명칭은 없고 모두 ‘금선단’, ‘금선’으로 기록되었으며 간혹 직금(織金)이라는 명칭을 쓰기도 하였다. 중국어 학습서인 『역어유해』에는 편금(片金) 또는 직금단자(織金緞子)라 쓰고 ‘금션단’으로 언해하였다. 금선단은 일반적으로 남자 용품에는 흉배 등 특수한 부분에 사용되었으며, 의복용으로는 주로 스란치마, 회장저고리, 원삼과 같은 여성 예복에 부분적으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유물 중에는 16세기의 출토품에서 금선단이 가장 많이 나왔으며 시대가 늦어질수록 금선단의 사용은 줄어들어 19세기가 되면 상대적으로 제작이 편리한 금박을 옷감에 찍는 것으로 대치된다. 진주사 양색단 세주 추사 토주 costume1212 기 綺 Gi Tabby silk damask 남녀공용 삼국, 통일신라, 고려, 조선 성인 왕족, 사대부 직물 평직바탕에 능직으로 무늬를 짠 견직물의 일종 Silk with patterns woven by twill structure over plain weave background 무늬부분에는 능직이 대부분이나 그 이외에 수자직, 부직 등 다양하게 짜 넣기도 하는데 대체로 얇고 부드러운 물성을 지닌다. 기(綺)는 삼국시대부터 사용하여 고려시대에 활발히 제직되었다. 기(綺)에 관한 기록으로 『설문(說文)』에 “기(綺)는 무늬 있는 증(繒)”이라고 하였고, 『광아(廣雅)』석기(釋器)에 “기(綺)는 채색 비단”이라고 되어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통일신라 때 기전(綺典)을 두어 제직할 정도로 중요한 견직물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동문선(東文選)』에 “오색으로 염색한 실로 기(綺)를 짜서 귀인사녀(貴人士女)들의 의복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고려사(高麗史)』,『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등의 문헌에도 수차례에 걸쳐 왕이 기(綺)를 하사(下賜)하거나 왕에게 진상(進上)하기도 하며 의복이나 교역품에도 사용되었던 기록이 있다. 온양박물관 소장의 1302년 아미타불 복장직물에 자색의 기(綺)가 있다. 조선시대에도 고대의 기(綺)와 같은 제직법으로 된 직물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문헌에는 기(綺)라는 명칭보다는 화문주(花紋紬), 화문초(花紋綃), 영초(永綃)라는 명칭으로 불리어졌다. 수자직 라 양색단 익조직 면주 costume1213 내주 內紬 Naeju Tabby 남녀공용 조선 성인 사대부 직물 안감용으로 사용한 주(紬)의 일종 Tabby used for lining 내주에 대한 문헌기록은 드물게 보여 조선시대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유희춘이 16세기에 쓴 『미암일기』의 직물명칭에 내주의 기록이 있고, 『현종실록』에는 각사의 노비에게 내주를 받았는데 근래에는 반드시 표주(表紬)를 받는다고 하여 겉감에 대응하는 안감용의 거친 주의 일종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일반적인 출토유물과 비교해 볼때 안감용 내주(內紬)는 밀도가 성글고 부드러운 물성을 지닌 주(紬)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세주 면주 평직 사직 중조직 costume1214 노방 老紡 No-bang Sheer silk tabby 여 대한민국 청소년, 성인 기타 직물 생사를 사용하여 평직으로 직조한 평견직물 Thin and sheer silk tabby with a stiff texture; generally used to make summer clothes or as a lining 노방(老紡)은 노방주에서 유래된 현대 전통 한복 소재로서 일반적으로 여름용 한복 겉감 또는 춘추용 한복의 안감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중반 경 한복업계에서는 노방의 표면에 손수, 그림, 금박, 날염 등으로 장식하여 일명 ‘사철깨끼’라고 부르는 사계절용 한복 소재로 유행되었다 노방의 물성은 정련하지 않은 실을 사용하여 빳빳한 촉감을 갖고 두께가 앏으며 반투명하다. 양색단 토주 평직 수자직 세주 costume1215 노방주 潞方紬 No-bangju Silk tabby 여 대한제국, 대한민국 청소년, 성인 기타 직물 일반적으로 생사를 사용하여 평직으로 직조한 견직물 Silk woven with raw silk threads 현재의 노방주(潞方紬)는 두께 면에서 매우 얇고 비치는 것인데 비하여 19세기의 노방주는 삼팔주(三八紬)보다 두껍다는 『조선향직물(朝鮮向織物)』(1915)의 기록과 실증자료에서 볼 때 비교적 덜 비치는 직물이었다고 생각된다. 또 정련의 유무 면에서 볼 때 현재의 노방은 통상 생사(生絲)를 사용하여 까슬까슬하나 당시의 노방주는 생사를 사용한 생노방주(生老紡紬)와 직조 후 흰색을 내기 위하여 이를 가볍게 정련한 숙노방주(熟老紡紬)도 있었으며 현재의 노방의 경우 무늬가 없으나 당시에는 무늬가 있는 문노방주(紋潞方紬)도 있었다. 『조선(朝鮮)』의 기록에 따르면 노방주는 삼팔주처럼 카루메하부다에 바탕이었으며 직물의 질[地合]도 삼팔주와 거의 동일하였지만, 삼팔주보다 폭이 넓고 품질이 다소 좋은 점이 달랐다고 한다. 『발긔』에 ‘노방주’ 혹은 ‘노방’이라는 명칭은 1904년(갑진, 甲辰) 고종과 동궁의 바지에 사용된 사례와 단속곳․속바지에 사용된 사례 등 하의와 속옷에 사용된 몇 건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당시 왕실에서 흔히 사용되었던 직물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직 중조직 수자직 능직 세주 costume1216 노주주 潞州紬 Nojuju Silk tabby 남녀공용 조선 성인 왕족, 사대부, 서민 직물 중국 노안지방에서 생산한 고급 품질의 평견직물 Fine silk tabby manufactured in Noan, China 노주주(潞州紬)는 일반 주(紬; spun silk tabby) 중에서 비교적 균일한 실의 섬도를 보이는 경위사로 밀도가 높게 짠 세주(細紬)의 일종이다. 상등품의 견사를 사용하여 지질이 치밀하고 촉감이 부드러운 직물로 사서남녀(士庶男女)의 편복(便服)에 많이 사용하였다. 『의인왕후빈전도감의궤(懿仁王後殯殿都監儀軌)』에 화문능이나 색능이 없을 경우에도 동색 유문노주주나 노주주로 대신하였고 심지어는 화문단이 없을 경우에도 동색의 노주주로 대치하였으며 화문노주주, 운문노주주, 유문노주주라는 기록으로 미루어 무늬가 있는 것도 생산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대학교박물관, 2003, 『파평윤씨 母子 미라 종합연구논문집 2 』, 서울: 고려대학교 박물관. 공단 토주 세주 중조직 면주 costume1217 뉴똥 Nyu-ddong Silk crepe 여 대한민국 성인 기타 직물 부드러우며 잘 구겨지지 않는 특징을 지닌 견직물의 일종 Soft and wrinkle-free silk crepe 일반적으로 뉴똥은 경사에 생사인 무연사(無撚絲)를 21denier/2합을 사용하고, 위사에는 2500-2600회/m 정도로 강연된 21denier/3합의 생사를 S방향과 Z방향으로 연사한 것을 각기 2올씩 교차․사용하여 직조한 후, 생지(生地) 상태에서 정련과 후염 과정을 거친다. 양단보다 밀도가 적으며 꼬임이 많은 위사를 사용하여 직조 후에는 직물 겉면에 오글오글한 크레이프효과가 생긴다. 바탕은 1/3 4매 능직이나 5매 경 수자조직을, 무늬에는 5매 또는 8매의 수자조직을 주로 사용하였으나, 평직이나 변화조직 등을 사용한 것도 있었다. 뉴똥은 유똥, 뉴텐 등으로 불리며 명칭의 어원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뉴똥은 원래 수입 견직물이었으나 1943~1946년 조선견직(朝鮮絹織)에서 본견뉴똥을 생산하게 되면서, 일본에서 밀수입되어 들어오던 것을 막게 되었고 1946~1947년에는 조양직물(朝陽織物)에서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1950~60년대에는 실크로 된 본견 뉴똥과 인조 뉴똥을 주로 사용하였으나 1960년대 후반에 코오롱(주)에서 합성섬유로 된 뉴똥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1970년대에는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것도 많이 사용되었다. 양색단 사직 라 능직 중조직 costume1218 능 綾 Neung Twill damask 남녀공용 삼국, 고려, 조선 성인 왕족, 귀족, 사대부 직물 능조직으로 짠 직물 Twill damask 능은 주(紬)에 비해 치밀하고 탄력이 좋은 문직물(紋織物)로 능직(綾織)으로 직조하여 직물 표면에 사선의 줄이 나타난다. 능은 실의 교착(交錯) 방법에 따라 3매능에서 6매능까지 다양하며 직물 표면에 생기는 능선(綾線)의 방향과 경사도가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능은 삼국시대부터 사용된 기록이 보이고, 신라의 천마총과 백제의 무령왕릉 유물에서도 나타난다. 고려시대에는 불복장 직물로 남아있는 능직물을 통해 얼마나 다양한 능직물의 제직이 이루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공석붕․염삼주, 1999, 『纖維 패션 素材 辭典』, 서울: 한국섬유신문사. 토주 진주사 연금사 추사 화문주 costume1219 능직 綾織 Neungjik Twill weave 남녀공용 삼국, 고려, 조선 성인 왕족, 귀족, 사대부, 기타 직물 직물면에 날실과 씨실의 조직점으로 연결된 능선 또는 사선을 나타내는 조직 Weaving structure that creates a surface pattern of parallel diagonal ridges 능직은 사선으로 무늬를 이루어 사문직(斜紋織)이라고도 부르며 평직(平織)·수자직(繻子織)과 함께 직물의 삼원조직(三原組織)의 하나이다. 간단한 보통능직의 교착점은 계단식으로 계속 이어감으로써 얻을 수 있으며, 경·위사는 3올 이상으로 이루어진다. 능조직으로 짠 직물이 능인데, 대체로 얇고 부드러우며 은은한 광택이 난다. 평직에 비하여 치밀하고 부드러우며 탄력성이 좋다. 능선은 동일직물의 양측면에 형성되며, 사선방향은 우향(right handed, Z자방향)과 좌향(left handed, S자방향)의 두 가지가 있는데 전자를 우능(右綾), 후자를 좌능(左綾)이라고 한다. 능직의 가장 간단한 조직은 삼매릉(三枚綾)이며 사문(斜紋)의 경사도에 따라 정칙능직(正則綾織)과 변화능직(變化綾織)으로 나눌 수 있다. 현대의 능직 종류는 매우 많으며, 대표적인 것으로 모직(毛織)인 서지(serge) ·개버딘 ·헤링본 등의 양복지나 오버지, 또 면직(綿織)인 태릉(太綾)·세릉(細綾) 등 작업복지가 있다. 참고문헌 : 陳維稷, 1984,『中國紡織科學技術史』, 北京 : 科學出版社.『譯語類解』 추사 토주 라 사직 익조직 costume1220 단 緞 Dan Silk satin damask 남녀공용 고려, 조선 성인 왕족, 귀족, 사대부 직물 수자직으로 제직된 견직물의 일종 Silk satin damask 흔히 ‘양단’이나 ‘공단’이라고 부르는 옷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346년의 장곡사 철조약사불 복장유물에서 5매 수자직으로 제직된 백색의 단 조각이 처음 발견되기는 하지만 그때는 보편적이지 못하였고,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비로소 상류층에서 선호하는 고급 옷감으로 확산 되었다. 단은 바탕은 경수자직, 무늬는 위수자직으로 직조하였으며 조직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음영으로 무늬를 표현한다. 17세기까지는 대부분 5매 수자직으로 되었으나 18세기 무렵 8매 수자직이 처음으로 나타나며 19세기부터는 대부분 단류가 8매 수자직으로 제직되었다. 이러한 단 조직의 변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제사 기술이 점점 발전하여 좀 더 가늘고 균질한 견사를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직점이 드물게 나타나는 8매 수자직으로 변화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 禹範植, 1972, 『織物組織學』, 서울: 文運堂. 추사 수자직 라 사직 능직 costume1221 담 毯 Dam Wool Rug 남녀공용 신라, 고려, 조선 성인 왕족, 귀족, 사대부 직물 모(毛)섬유로 제직한 깔개 Rug made of wool fiber 담(毯)은 깔개나 담요 등으로 사용한 전통의 모직물로 모담(毛毯), 융담(絨毯), 탑등(毾㲪)이라고도 한다. 타피스트리 방법으로 제직된 모담을 중국에서는 커마오(緙毛), 이란이나 터키에서는 킬림이라고 하며, 첨모직의 방법으로 제작된 모담을 중국에서는 융담(絨毯), 서양에서는 파일 카펫트라고 한다. 모깔개에 대한 기록으로는 『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 진덕여왕(579-632) 때 당나라 태종에게 보낸 불교 공예품으로 ‘만불산(萬佛山)’의 바닥 깔개로 오색구유(五色氍毹)를 만들어 보냈다고 한다. 당에서는 이 공예품을 받고, 보는이 마다 그 정교함에 감탄하였다고 한다. 구유는 모석(毛席)이고 욕(褥)이라고 하였다. 즉 구유는 모깔개를 말하는 것으로 신라의 오색구유는 여러 가지로 다채롭게 짜여진 모깔개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삼도부(三都賦)』에는 고려 공경들의 집에는 비단으로 기둥을 싸고 채담(彩毯)으로 바닥을 깔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채담은 각 색으로 염색한 모사로 무늬를 넣어 짠 카펫트이며 고려인들의 화려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 『경국대전(經國大典)』중에 기록된 금제 중에 당하관 이하 혼인에 사라단계담(紗羅緞罽毯)의 사용하게 규정한 기록이 있다.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에도 궁중 가례 때 담(毯), 계담(罽毯) 등을 사용한 기록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도 모사(毛絲)로 제직된 깔개가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모담에 나타난 무늬는 매우 다양한데 호랑이, 매화, 봉황 등의 소재를 간략화 하거나 추상적으로 표현하였으며 한국적 색감이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면주 양색단 세주 익조직 진주사 costume1222 당목 唐木 Dangmok High-quality cotton 여 조선, 대한제국 성인 사대부, 서민 직물 광택이 좋고 치밀한 상등품의 광목 High-quality cotton with sheen; this is imported from China 광목은 수직기로 짠 국내산 목면과는 달리 기계직으로 짠 목면으로 수직 목면에 비하여 폭이 더 넓다. 광목의 종류 중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것을 당목이라고 하며 세목(細木)이라고도 불렀다. 광목보다 조직이 치밀하고 광택이 좋다. 일반적으로 영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중국 청으로부터 수입한 것이 많았다. 여자의 적삼이나 바지, 단속곳 등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 Stone, Peter F, Rugs of the Caucasus, 1984, 『Structure and Design』, Chicago : Greenleaf Co. 사직 추사 능직 수자직 익조직 costume1223 도리사 Do-ri-sa Mixtured Gauze fabrics 남 조선 성인 사대부 직물 조선 말기 사직물의 일종 Gauze fabrics consisting of a silk warp and a ramie weft 도리사는『조선휘보(朝鮮彙報)』에 ‘도리마(道理麻)의 얇은 직물’이라고 기록되어있다. 석주선은 도리사를 경사에 명주실, 위사에 모시실을 걸어 직조한 교직물이라고 하였다. 도리사는 도류사와 발음이 유사하여 자칫 도류사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궁중의대발기(宮中衣襨撥記)』에서 도류사(도류문사)는 남색(藍色)·남송색(藍松色)·양초록색의 배자·군복 등 외의로만 사용되었던 것에 비하여, 도리사는 색의 언급 없이 소색(素色)으로만 사용되고 용도도 고의로만 사용되었기 때문에 분명 도류사와는 다른 직물이었을 것이다. 라 세주 평직 토주 화문주 costume1224 라 羅 Ra Complex silk gauze 남녀공용 백제, 신라, 통일신라, 고려, 조선 성인 왕족, 귀족, 사대부 직물 인접한 경사2~4올을 서로 교차시켜 직물의 투공효과를 내는 얇고 반투명한 익조직의 직물 Semi-transparent silk gauze woven with twisted adjacent warps 라(羅)의 제직방법은 크게 3종류로 구분되는데 경사 2올이 교차된 2경교라(二經絞羅), 3올이 교차된 3경교라(三經絞羅), 4올이 교차된 4경교라(四經絞羅)가 있다. 4경교라는 4올의 경사가 한조가 되어 그물모양과 같이 직조되었으므로 2경교라나 3경교라 보다는 덜 투명하고 마치 니트 직물처럼 탄력이 있다. 반면에 2올 혹은 3올의 경사가 교차된 라는 마치 한 가닥이 직선으로 내려온 경사처럼 보이기 때문에 마치 성글게 짠 평견직물과 같이 보인다. 라(羅)는 고대부터 관모나 의복용으로 즐겨 사용되었던 소재로, 백제나 신라의 유물에서도 나타날 정도로 오래된 옷감이며 통일신라시대가 되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흥덕왕 복식금제에 귀족계급 남녀 의복의 여러 품목에 걸쳐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고려시대의 불복장 유물에도 라가 많이 남아있어 문헌에 기록된 라의 유행을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 온양민속박물관에 소장된 1302년의 아미타불에 복장된 유물에는 다양한 라의 옷감 조각이 남아있다. 3-4개의 경사를 교차시켜 제직한 라는 일찍이 삼국시대나 고려시대부터 유행하였던 옷감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점차 사라져 갔다. 그래도 17세기까지는 4경교라가 드물게 보이지만 그 후에는 제직 방법을 단순하게 변형한 항라(亢羅)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참고문헌 : 石宙善, 1982, 『續韓國服飾史』, 서울: 高麗書籍株式會社. 추사 연금사 양색단 중조직 능직 costume1225 마 麻 Ma Hemp cloth 남녀공용 부족연맹국가, 삼국, 통일신라,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 아동, 청소년, 성인 모든계층 직물 아마(亞麻)·저마(紵麻)·대마(大麻)·황마(黃麻) 등의 삼과 식물의 초피(草皮)섬유로 짠 직물의 총칭 A general term that refers to textiles woven with hemp 온대와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한해살이 풀인 삼으로 짠 천을 마직물(麻織物) 또는 마포(麻布)라고도 한다. 마직물은 평직이 대부분이고 까슬까슬하고 시원하며 내수성과 내구성이 큰 특성을 지닌다. 또한 구김살이 잘 가며 염색이 잘 되지 않아 천연의 색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오래 된 마직물은 B.C. 5000년경 고대 이집트의 고분에서 발굴된 미라가 입은 아마포 옷이 있다. 또한 그 고분벽화에는 아마의 재배·방적·제직에 이르는 모든 기술적 절차방법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 중왕국시대(BC 2133-BC 1786)와 신왕국시대(BC 1567-BC 1080)의 유물을 살펴보면, 마직바탕에 염색한 양모사를 꿰어 엮어서 화려한 무늬의 벽걸이나 깔개를 이미 그때 만들어 썼던 것으로 짐작된다. 한국에서는 고조선시대부터 마포로 옷을 지어 입었고, 신라에서는 마직물이 가장 대중적인 옷감으로 연중행사인 8월 한가위에는 한 달에 걸쳐 길쌈대회를 할 정도로 베 짜는 기술의 발전을 도모하였으며 요즈음 안동포보다 매우 섬세한 마포의 생산이 가능했다. 이는 통일신라 흥덕왕 복식제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진골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12-28승(升)의 포의 사용을 계급별로 차등을 두어 허락하였다. 고려시대에도 마포는 매우 발달하여 중요 의료(衣料)로서 세공(稅貢)의 대상이 되었으며, 중요 수출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조선 초기 세종대왕 때 면포로 세공이 바뀐 이후에도 마포는 면포와 더불어 일제강점기 초기 직물공업이 근대화될 때까지 계속 사용했으며, 특히 저마포는 청나라와의 교역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토주 평직 수자직 사직 중조직 costume1226 면 綿 Myeon Cotton cloth 남녀공용 고려, 조선 아동, 청소년, 성인 모든계층 직물 목화솜에서 얻어지는 섬유로 짠 직물의 총칭 A general term that refers to textiles woven with cotton 목면 또는 면포(綿布)라고도 한다. 면은 셀룰로오스가 주성분인 식물성 섬유로 흡습성이 좋고 정전기 발생이 적다. 가격이 저렴하여 셔츠나 타월 등 실용적인 용도로 폭넓게 사용된다. 면은 약 BC 3000년경 인도를 발생지로 하여 생산되기 시작하였으며 서구에는 1498년 인도항로가 발견되면서 부터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 목면종자가 전래된 것은 공민왕 12년(1362)에 문익점(文益漸)이 서장관(書狀官)으로 원나라 서울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목화씨 10개를 채취(採取)하여 붓 뚜껑에 넣어가지고 온 것이 그 시초다. 목면이 전래되기 전에는 주로 명주, 모시, 삼베 등으로 옷을 지어 입다가 면의 전래로 말미암아 그 의생활이 보다 윤택해졌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 세종대왕이 한글서적인 『농사언해(農事諺解)』를 편찬하여 면업을 장려하게 되면서부터 면직물은 크게 융성하였다. 이때부터 면포를 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마포보다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조정에서는 조세물품으로, 장터에서는 물물교환의 주거래품으로, 중국·일본 및 남방 아시아와의 주교역품이 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조선의 면업이 본격적으로 일본에 전파되었다. 그러나 조선 중기부터 정부에서는 면포를 조정의 조세수탈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농가에서는 생산의욕을 잃게 되었다. 한국의 전통적인 베틀로 짜는 면포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잃고 더 이상 면포를 위한 품질 향상이나 기술개발 또는 자본형성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추사 중조직 수자직 평직 진주사 costume1227 면주 綿紬 Myeonju Spun silk tabby 남녀공용 조선 성인 사대부, 서민 직물 꼬임이 있는 견방사를 사용하여 평직으로 제직한 견직물의 일종 Silk tabby woven with spun yarn 목면 또는 면포(綿布)라고도 한다. 면은 셀룰로오스가 주성분인 식물성 섬유로 흡습성이 좋고 정전기 발생이 적다. 가격이 저렴하여 셔츠나 타월 등 실용적인 용도로 폭넓게 사용된다. 면은 약 BC 3000년경 인도를 발생지로 하여 생산되기 시작하였으며 서구에는 1498년 인도항로가 발견되면서 부터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 목면종자가 전래된 것은 공민왕 12년(1362)에 문익점(文益漸)이 서장관(書狀官)으로 원나라 서울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목화씨 10개를 채취(採取)하여 붓 뚜껑에 넣어가지고 온 것이 그 시초다. 목면이 전래되기 전에는 주로 명주, 모시, 삼베 등으로 옷을 지어 입다가 면의 전래로 말미암아 그 의생활이 보다 윤택해졌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 세종대왕이 한글서적인 『농사언해(農事諺解)』를 편찬하여 면업을 장려하게 되면서부터 면직물은 크게 융성하였다. 이때부터 면포를 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마포보다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조정에서는 조세물품으로, 장터에서는 물물교환의 주거래품으로, 중국·일본 및 남방 아시아와의 주교역품이 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조선의 면업이 본격적으로 일본에 전파되었다. 그러나 조선 중기부터 정부에서는 면포를 조정의 조세수탈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농가에서는 생산의욕을 잃게 되었다. 한국의 전통적인 베틀로 짜는 면포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잃고 더 이상 면포를 위한 품질 향상이나 기술개발 또는 자본형성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 柳喜卿, 1975, 『한국복식사연구』,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출판사.『高麗史』 연금사 평직 수자직 세주 추사 costume1228 명주 明紬 Myeongju Plain silk 남녀공용 조선, 일제강점기 아동, 청소년, 성인 모든계층 직물 누에고치에서 풀어낸 견사(絹紗)를 사용하여 무늬 없이 평직으로 직조한 견직물 Plain silk woven with silk threads 면주(綿紬)는 꼬임이 있는 견방사(絹紡絲; spun silk)를 경위사로 하여 평직으로 짜 광택이 적고 표면이 거칠며 비교적 두꺼운 물성을 나타내는 직물을 말한다. 실의 굵기가 일정하지 못하여 직물표면이 거칠어 마치 무명과 같은 물성을 지닌다. 면주는 토주보다 실의 꼬임이 약하고 밀도가 성글지만 토주와 면주 모두 견고하며 마모에 강한 특징을 지닌다. 면주는 『긔』에 단속곳․바지․치마 등에 사용하였던 기록이 있으며 사대부와 서민 남녀의 평상복에 많이 쓰였다. 『탁지준절(度支準節)』의 기록에 따라 면주의 가치를 비교해 보면 토주(吐紬)보다는 낮으나, 수주(水紬)나 정주(鼎紬)와 동일하고, 일반 주(紬) 보다는 높았다. 경기도박물관 소장 여흥민씨(1586~1656), 연안김씨(1534~1574)의 저고리, 파평윤씨 (-1566)의 저고리와 장옷 그리고 청송심씨 수륜(1534~1589)의 철릭 등 출토직물에 면주가 나타난다. 참고문헌 : 경기도박물관, 2001,『전주이씨 묘 출토복식 조사보고서: 전주이씨 묘 출토복식 조사보고서 : 광주 고읍 인평대군파 의원군 일가』, 용인: 경기도박물관. 토주 평직 양색단 사직 공단 costume1229 모단 冒段 Modan Plain satin damask 남녀공용 조선 성인 사대부, 서민 직물 무늬가 없는 단의 한 종류 plain satin damask 명주는 가장 보편적인 전통 견직물명칭으로 봄․여름․가을의 치마, 저고리, 바지, 조끼, 마고자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었다. 명주는 경․위사에 생사를 사용한 생명주와 숙사를 사용한 숙명주가 있다. 전통적인 명주는 가내수공업으로 실을 뽑고 베틀에 걸어 직조하였는데, 이렇게 생산된 것은 이후 기계로 대량 생산된 것과 구별하여 수공(手工)으로 직조하였다는 의미로 손명주라고 하였다. 손명주는 기계제직에 비하여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물성을 지닌다. 명주라는 명칭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는 최초의 문헌은 현재로서는 조선후기의 『재물보(才物譜)』로, ‘명주(明紬)’가 곧 ‘명쥬’라는 기록이 있다. 1915년의 『조선휘보(朝鮮彙報)』에는 면주(綿紬)가 ‘주(紬)를 련(練)한 것’으로 ‘명주(明紬), 백명주(白明紬), 숙주(熟紬)’와 같다고 하였고, 1920년에 간행된 『조선어사전(朝鮮語辭典)』에서도 면주와 명주가 같다고 하였으나, 충문공 김병국의 상례(喪禮) 절차를 기록한 『충문공신종록(忠文公愼終錄)』에는 명주와 면주의 두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면주와 명주는 원래 다른 직물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그 명칭이 하나로 통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평직 공단 세주 라 진주사 costume1230 모라 毛羅 Mora Gauze 남 조선 성인 왕족, 관리, 사대부 직물 모자의 소재로 사용된 익조직의 라 Gauze for making hats 무늬가 없는 무문단자(無紋緞子)를 의미하며 특별히 모자용으로 생산한 검정색 무문단자에서 유래하여 모단(帽段)이라고도 하였다. 문헌기록에는 모단의 한자가 여러 단어로 기록되었다. 1600년 『의인왕후빈전도감의궤(懿仁王後殯殿都監儀軌)』에 모단장의(冒段長衣), 모단저고리(冒段赤古里), 모단수관(冒段首冠)이라고 기록되었고 1701년 『인현왕후빈전도감의궤(仁顯王后殯殿都監儀軌)』에도 모단수관(冒段首冠)이 기록되었다. 그 외에 『선조실록』을 비롯하여 『헌종실록』에 이르기까지 여러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중국 황제가 하사한 옷감, 사치를 금하는 내용, 왕의 재궁의대 등에 모단(帽段), 모단(冒段), 모단(毛段) 기록이 많이 보이며 『상방정례(尙方定例)』에서도 모단이 하피나 이엄 등의 용도로 기록되었다. 각각 한자는 달리하였으나 무늬가 없는 검정색의 무문단자(無紋緞子)를 의미한 것으로 생각된다. 1844년(헌종 10)경에 지어진 『한양가』에는 모단(毛段)으로 기록되어 모직물로 혼돈할 수도 있으나 비단의 일종으로 생각된다. 수자직 면주 토주 진주사 화문주 costume1231 남녀공용 조선 성인 왕족, 사대부 직물 수자직으로 조밀하게 직조한 두꺼운 견직물의 일종 Patterned thick satin damask 모본단은 꽃 무늬가 있는 단 직물로, 직조 전에 실제 꽃의 길이와 크기를 측정하여 그에 따라서 모양을 본뜬 다음 그 본을 기준으로 사실적으로 제직한 것이 특징이다. 모본단 옷감들은 줄기와 잎이 달려있는 절지형 모란을 사생풍으로 큼직하고 시원스럽게 표현하고, 여백을 충분히 두고 드문드문 배치하여 단아하면서 정돈된 느낌을 준다. 모본단은 일반적으로 선염(先染)한 실을 사용하여 8매 수자직으로 제직하였다. 처음에는 경위사 모두 견사로 만들어졌으나, 후대로 오면서 위사에 인견사(人絹絲)를 사용한 교직의 모본단도 생산되었다.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가장 전형적인 모본단의 무늬는 탐스러운 모란을 도안한 것이며, 그 외에 다양한 꽃무늬를 사용한 모본단도 조선 말기 유물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화문주 토주 연금사 익조직 사직 costume1232 모시 苧 Mo-si Ramie 남녀공용 부족연맹국가, 삼국, 고려, 조선 아동, 청소년, 성인 모든계층 직물 모시풀의 줄기껍질에서 생산된 실로 짠 직물 Textile woven with the ramie plant; also called jeomapo or jeopo 저마포(苧麻布) 또는 저포(苧布)라고도 한다. 생모시는 아직 누이지 아니한 누런 것이고, 눈모시는 뉘어서 빛깔이 하얗게 된 모시인데, 특히 '한산모시'는 품질이 좋아 한국 모시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유명하다. 모시는 순백색이고 광택이 나며 내수력(耐水力)과 내구력(耐久力)이 강하다. 습기의 흡수와 발산이 빠르며 빛깔이 희어 주로 여름철 옷감으로 쓰인다. 『삼국지(三國志)』,『후한서(後漢書)』 등의 기록에는 이미 삼한시대(三韓時代)부터 마섬유(麻纖維)를 재배하였다고 하며,『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신라에서도 34승 저삼단(紵衫段)을 생산하여 당나라에 보냈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시대에는 백저포(白紵袍)를 많은 사람들이 입을 정도로 모시를 일상생활에 많이 애용하였으며, 무늬를 넣어 짠 문저포는 고려의 특산품으로 중요한 수출품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극상세저포·흑저포·황저포·아청저포·백저포·모시포(毛絁布) 등의 명칭으로 불렀으며,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의하면 19세기 모시 산지는 한산을 비롯하여 서천, 비인, 남포, 청양의 서해안 지방이 유명하였다. 현재에도 충청남도 한산(韓山)은 모시의 주요 재배지로서 지방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장인에 의해 9새에서 10새의 모시가 생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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