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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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생애

시인 이력

남성으로, 1949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으며, 시조와 시 모두 당선되며 등단했다. 만해문학상, 백석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지훈문학상 등 다양한 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중앙대학교에 인수된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

시인의 특징


시조로 등단한 것에 대해서 정해진 율격에 자신의 사유를 대입해서 언어 훈련을 하기 위함이었음을 위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한 분야에서만 노력한 것이 아니라 동시, 자유시, 시조 등 다양한 문학적 훈련을 수행했다. 시인 스스로 좋은 시라는 것은 규범을 무너뜨리면서 다른 형식을 찾아 나서는 것이 시의 역사이기는 하지만, 뜻과 소리가 통일된 시가 좋은 시라고 말하며, 생활이 있는 시가 좋은 시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신의 두 번째 시집인'바람 속으로'는 민중적 생활 내용을 세련된 수법으로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노력이 충분하지 못해 투박하고 어긋난 채로, 내용이 형식을 탈피해버린 것 같다고 말한다.
시는 의도한다고 해서 쓰이는 것이 아니고 시가 몸을 통과해왔을 때 이루어지는 순간이 있는 것이라서 자주 시집을 내는 것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관점은 이후 '하동'이 나올 때까지도 이어져서 시집을 내기 위해 관습적으로 시를 쓰는 행위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에 이른다.

시인의 키워드


키워드 논문
'정서와 시대정신의 만남을 치열하게 추구'
'당대의 양심의 소리'
'소외된 자들을 위한 민주적 평등'
'독재와 자본에 대항하는 정치성과 서정적 미학 간의 긴장관계'
'역사 현실에 대한 생생한 증언과 객관적 정보의 사실적 전달'
'사랑과 생명의 본질 회복이라는 의지'
이시영 시 연구.pdf
'단형시'
'현실과 역사를 관통하는 어떤 깨달음'
'민중 시인이면서도 따뜻한 정감'
'자아 분열과 대립의 극복, 세계와의 조화 지향'
000000176893 20220626015852.pdf
'역사의식과 서정시를 하나로 융합'
'현실과 내면의 격투를 분석, 성찰, 융합하는 인간의 실존 자체의 과정의 문학적 자세'
이시영 시 연구 -잃어버린 시간의 문학적 복원.pdf

창작한 시집의 경향

나비가 돌아왔다, 2021년 10월

이시영, 문지, 나비가 돌아왔다.jpg

'나비가 돌아왔다'는 코로나 이후 삶을, 특히 자연의 움직임을 집중적으로 바라본 시인의 고찰이 담겨 있는 시집이다. 시인은 출간 인터뷰에서 "인도 뉴델리에서 공장 가동을 일주일 정도 멈췄더니 히말리야 산이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금년에도 코로나의 영향으로 미세먼지가 드문 것 같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자연을 그만 좀 괴롭히라고 인류에 주는 경고 같아요. 작고 사소한 것들, 어떤 미세한 움직임에서 세계의 변화가 시작된다는 인식을 표현한 시죠. 작은 생명의 움직임 속에서 세계의 변화를 읽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시인의 생각은 친환경적인 생각 혹은 행동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다만 주변의 자연을 더욱 다정히 바라보고, 그 작은 움직임들에 귀기울인다. 그 속에서 시인은 고요한 죽음, 역동, 연민과 존중을 배운다. 배움은 확장되어 자신의 주변에게로도 전달되는데, '서울'이 언급된 시들은 대부분 이러한 관심의 확장으로 기억의 파편을 소중히 대하는 시인의 동작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하동, 2017년 9월

이시영, 창비, 하동.jpg
시인의 주된 형식인 단형시와 산문시를 모두 찾아볼 수 있는 시집으로, 시인은 자신의 단형시에 대해 '아름다움으로 끝내지 않고 언어화되지 않는 서사성을 불어넣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의도로 산문시가 쓰인 것이겠지만, 산문시에서도 단형시에서 나타나는 절제된 어조를 놓치지 않는다.
전남 구례 출신인 시인이 제목을 '하동'이라고 지는 것에 관해 인터뷰에서 “하동은 섬진강이 바다에 이르기전 가장 아름답게 구비치며 빛나는 곳입니다. 저도 생물학적 나이가 바다에 이를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고향에 가봐야 옛 사람은 없고…. 고향 구례의 이웃인 하동에서 살고 싶다는 인간적 소망이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가장 마지막의 고향이 인간의 삶에서 갖는 의미, 마지막이 주는 결연한 어조에 대해 드러내고 있는 시집이다. [3]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2007년 6월

이시영, 창비,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jpg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역사 현실과 조응하는 시인은 이 시집에서 '막지 못하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쟁과 같은 폭력, 자연의 파괴 등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개인은 언어를 얻지 못하고 죽는다. 거시적인 담론에 의해 묵인되는 죽음들에 대해 개별성을 부여하고 그 개별적 인물들의 촘촘한 이야기를 꺼내어 놓는다. [4]

이시영의 '서울'

이시영의 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공간은 '용산구'이다. 그의 시를 통해 용산구가 거주지일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추측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그의 시 곳곳에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다정한 추억들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거주하지 않더라도 오랜 기억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 대상이 된 시집에서는 '민중성'보다는 '민중'과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단형시의 응축된 서정성 속에서도 개인의 일상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간 현실 감각이 두꺼운 시를 써온 시인의 역량을 느낄 수 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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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울

떨어뜨린 동전들이 굴러가 사라지는 장면은
어째서 기억이 잘 날까
길바닥, 하수구, 수풀, 마르지 않은 도로, 한강대교 북단, 평일에도 이사를 다니는 사람들, 삼각지, 의족과 가발을 파는 가게, 밥과 찬을 가져와 나누어 먹는 교회

목월선생

성심여고 후문에서 산천동 깔그막 용산성당 올라가는 길, 누가 뒤에서 “이 군!” 하고 불렀다. 돌아보니 키 큰 목월 선생이 거기 서 계셨다.“이 군, 시는 그렇게 쓰면 안 된데이.”반가움에 왈칵 달려갔더니 선생은 안 계시고 웬 낯선 청노루힐빌라.

소주반병

고 임영조 시인이 내게 말하기를, 김종삼 시인은 소주 반병 값이 떨어지면 늘 용산에 있는 태평양화학 사보 『향장』 편집실로 찾아와 그와 오규원 시인에게 수줍게 손을 내밀었다고 한다.

땅팔자

그에 의하면 조선시대 이태원은 지금의 이태원이 아니라 ‘이타인’ 혹은 ‘이태원’으로도 불리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거기 있던 운종사라는 비구니 절을 약탈하여 생긴 이름이고,

계성유치원

9시 15분 정각 오늘도 어김없이 계성유치원 버스가 9동 앞에 멈추었다
엄마들 손에 이끌려 나온 솜털 같은 아이들이 버스에 오른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는 꼭 계성유치원생이 되고 싶다
계성유치원은 용산성당 아래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에 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