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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전은 앞면 3칸, 옆면 1칸의 다포양식의 맞배지붕으로 내부에는 단군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1922년 화산면 금풍리의 단군영당이 1957년 현재의 위치에 옮겨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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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리 석정은 두륜산 줄기의 누룩봉 골짜기를 수원으로 삼아 동해마을 높은 지대에 샘을 조성하였으며, 동해리 마을회관에서 서쪽으로 위치한다. 우물 주변에는  마을 당산목이 있다.
  
1920년대 백운 이종철은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 때 황해도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를 방문하였다. 일제의 만행으로 사당이 폐허가 되어 있어 단군 영정을 고향 화산면 금풍리로 모셔와 전각을 세우고 개천절과 어천절에 제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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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은 돌담으로 쌓여 있고 수조 2기는 담쪽에 붙여 있다. 수조는 네모꼴이나 모양과 크기가 각각 다르며 2단으로 조성되었다.  
  
이후 광복이 된 뒤 삼성사라 하며 제향을 해 오다가 해남군민이 ‘단군전건립기성회’를 조직하여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단군전은 2006년 해남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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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이 있는 돌담벽에는 “癸亥十月日穿井記(계해십월일천정기)”라는 명문이 있어 1923년에 조성한 우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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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마을에서는 15~20년 전까지 안골산 나무 밑 제단에서 복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당산목 옆 우물에서 새벽까지 샘굿을 하였다. 틈새에서 흘러나온다 하여 석간수, 소먹이통과 같다고 해서 구시샘 등으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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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27일 (월) 12:00 판


동해리 석정
대표명칭 동해리 석정
한자 東海里 石井
지정번호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해설문

국문

동해리 석정은 두륜산 줄기의 누룩봉 골짜기를 수원으로 삼아 동해마을 높은 지대에 샘을 조성하였으며, 동해리 마을회관에서 서쪽으로 위치한다. 우물 주변에는 마을 당산목이 있다.

우물은 돌담으로 쌓여 있고 수조 2기는 담쪽에 붙여 있다. 수조는 네모꼴이나 모양과 크기가 각각 다르며 2단으로 조성되었다.

우물이 있는 돌담벽에는 “癸亥十月日穿井記(계해십월일천정기)”라는 명문이 있어 1923년에 조성한 우물로 보인다.

동해마을에서는 15~20년 전까지 안골산 나무 밑 제단에서 복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당산목 옆 우물에서 새벽까지 샘굿을 하였다. 틈새에서 흘러나온다 하여 석간수, 소먹이통과 같다고 해서 구시샘 등으로 불리고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