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함양 등구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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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등구사는 신라 태종무열왕 2년(서기656년)에 초창되었으나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1709년에 중창되어졌다. 본 석탑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 하대에 조성된 것으로 일부 결실되었으나 그 조각기법이 매우 정재(整齊)되어있어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뛰어난 예술성을 잘나타내고 있다.

현재는 탑의 기단과 탑신부 1층 부분만 보전되고 있으며, 본 석탑의 특징은 상하기단의 중석에 각기 탱주(撑柱) 일주(一柱)로서 2구로 구분하였다는 것과, 기단의 갑석 상면에 각호角弧의 테두리 장식, 옥개석의 층급받침이 4단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수정 국문

초고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이 석탑은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2000년에 새로운 부재를 더해 일부 복원했다가 다시 제거해 복원 전과 같이 2층의 기단과 1층 몸돌 및 지붕돌만 남아 있다.

2단의 기단 모두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이 새겨져 있으며,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은 4단의 받침을 두었다.

등구사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656년 가락국의 마지막 왕이었던 구형왕이 터를 닦은 곳에 창건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1709년에 중창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의 등구사는 2006년부터 복원된 현대식 건물이다.

  • 파손이 심하며, 원래의 석탑 부재가 아닌 것들이 모여 있다.
  • 2010년 조사 당시 2층 탑신과 옥개석이 신부재를 이용하여 복원되어 있었지만 현재 모두 제거된 상태이다. 1979년 자료에는 2, 3층 옥개석이 보고되어 있으나 2006년 자료부터 소재가 명확하지 않다. (사지조사보고서 내용 – 2021년 현재 등구사 석탑의 사진 확인 어려우므로 전체적인 내용의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해 보임.)

1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이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도굴되고 훼손된 채 방치되어 있다가 1979년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2000년에 복원하면서 새로운 부재를 일부 더했으나, 지금은 다시 제거해 복원 전과 같이 2층의 기단과 1층 몸돌 및 지붕돌만 남아 있다. 기단에는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고, 몸돌은 모서리에만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4단의 받침을 두었다.

등구사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656년 가락국의 마지막 왕이었던 구형왕이 터를 닦은 곳에 창건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1709년에 중창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의 등구사는 2006년부터 새로 건립되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등구사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656년 가락국의 마지막 왕이었던 구형왕이 터를 닦은 곳에 창건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1709년에 중창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의 등구사는 2006년부터 새로 건립되었다. --> 해인사 성보박물관에 소장중인 『등구사사적기』에 의하면 등구사는 656년(신라 무열왕 2년)에 창건되었고, 여말선초에 소실되었다가 1709년에 중건되었다고 한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탑의 개요 수정 -> 탑(塔)은 범어 스투파(stupa), 팔리어 투파(hūpa)에서 음을 따서 옮긴 것이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기념비적인 건조물인 불탑은 그 자체로 부처의 가르침을 나타낸다.
    • 석탑의 조성시기, 봉안처, 형태적 특성 등 전체 문장 수정.(내용을 알 수 없음)
    • 함양 등구사터에 있는 삼층석탑은 9세기 무렵에 조성된 규모가 크고 조각기법이 뛰어난 불탑이다. 656년 가락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터를 닦아 창건하였다는 등구사는 고려말에 소실된 것을 조선초에 증건하였고 1709년(숙종 35)에 다시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현재 등구사 삼층석탑은 과거 파손과 도굴 등으로 훼손되어 등구사터에 흩어져 있던 석탑의 2층 기단과 1층 탑신, 지붕돌 등을 모아 복원한 것이다. 등구사 삼층석탑은 비록 파손되고 결실된 상태이기는 하나 탑신의 몸돌 모서리에 새겨진 기둥의 형태와 옥개석 지붕의 날렵함 등 에서 뛰어난 조각기법과 정교한 조형미가 돋보인다.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등구사 삼층석탑은 현재 남아있는 모양이 삼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이유가 안내문에 명기돼야 합니다.(일부 밖에 남지 않았지만 옥개석 받침이 4단으로 되어 있고 옥개석 처마의 네 귀퉁이는 날렵하게 하늘로 치솟아 있어 뛰어난 조형미를 보인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
    • 이 석탑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는데, 이런 경우는 어떤 근거로 조성시기를 비정했는지 소개하는 게 설득력이 있겠지요? 석탑의 모양과 축조 기법을 설명하면서 이야기 될 부분입니다.
    • 1979년 그 존재가 알려졌다고 하는데, 무엇 때문인지 그 계기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도 좋겠습니다.

2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등구사의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탑이 위치한 등구사는 656년에 창건되었고, 고려 말 조선 초에 소실되었다가 1709년에 중건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등구사는 2006년부터 새로 건립되었다.

석탑은 도굴되고 훼손된 채 옛 등구사 터에 방치되어 있다가, 2000년에 복원하였고 현재 2층 기단, 1층 몸돌, 지붕돌만 남아 있다. 기단에는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고, 몸돌은 모서리에만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4단의 받침을 두었다. 비록 파손되고 결실된 상태이기는 하나 몸돌 모서리에 새겨진 기둥의 형태와 지붕돌의 날렵함 등에서 뛰어난 조각기법과 정교한 조형미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