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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등구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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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등구사 삼층석탑
함양 등구사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함양 등구사 삼층석탑
한자 咸陽 登龜寺 三層石塔
주소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 산 30-5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47호
지정일 2012년 3월 8일
분류 유적건조물
수량/면적 1
웹사이트 함양 등구사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등구사는 신라 태종무열왕 2년(서기656년)에 초창되었으나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1709년에 중창되어졌다. 본 석탑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 하대에 조성된 것으로 일부 결실되었으나 그 조각기법이 매우 정재(整齊)되어있어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뛰어난 예술성을 잘나타내고 있다.

현재는 탑의 기단과 탑신부 1층 부분만 보전되고 있으며, 본 석탑의 특징은 상하기단의 중석에 각기 탱주(撑柱) 일주(一柱)로서 2구로 구분하였다는 것과, 기단의 갑석 상면에 각호角弧의 테두리 장식, 옥개석의 층급받침이 4단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수정 국문

초고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이 석탑은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2000년에 새로운 부재를 더해 일부 복원했다가 다시 제거해 복원 전과 같이 2층의 기단과 1층 몸돌 및 지붕돌만 남아 있다.

2단의 기단 모두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이 새겨져 있으며,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은 4단의 받침을 두었다.

등구사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656년 가락국의 마지막 왕이었던 구형왕이 터를 닦은 곳에 창건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1709년에 중창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의 등구사는 2006년부터 복원된 현대식 건물이다.

  • 파손이 심하며, 원래의 석탑 부재가 아닌 것들이 모여 있다.
  • 2010년 조사 당시 2층 탑신과 옥개석이 신부재를 이용하여 복원되어 있었지만 현재 모두 제거된 상태이다. 1979년 자료에는 2, 3층 옥개석이 보고되어 있으나 2006년 자료부터 소재가 명확하지 않다. (사지조사보고서 내용 – 2021년 현재 등구사 석탑의 사진 확인 어려우므로 전체적인 내용의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해 보임.)

1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이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도굴되고 훼손된 채 방치되어 있다가 1979년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2000년에 복원하면서 새로운 부재를 일부 더했으나, 지금은 다시 제거해 복원 전과 같이 2층의 기단과 1층 몸돌 및 지붕돌만 남아 있다. 기단에는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고, 몸돌은 모서리에만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4단의 받침을 두었다.

등구사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656년 가락국의 마지막 왕이었던 구형왕이 터를 닦은 곳에 창건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1709년에 중창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의 등구사는 2006년부터 새로 건립되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등구사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656년 가락국의 마지막 왕이었던 구형왕이 터를 닦은 곳에 창건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1709년에 중창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의 등구사는 2006년부터 새로 건립되었다. --> 해인사 성보박물관에 소장중인 『등구사사적기』에 의하면 등구사는 656년(신라 무열왕 2년)에 창건되었고, 여말선초에 소실되었다가 1709년에 중건되었다고 한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탑의 개요 수정 -> 탑(塔)은 범어 스투파(stupa), 팔리어 투파(hūpa)에서 음을 따서 옮긴 것이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기념비적인 건조물인 불탑은 그 자체로 부처의 가르침을 나타낸다.
    • 석탑의 조성시기, 봉안처, 형태적 특성 등 전체 문장 수정.(내용을 알 수 없음)
    • 함양 등구사터에 있는 삼층석탑은 9세기 무렵에 조성된 규모가 크고 조각기법이 뛰어난 불탑이다. 656년 가락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터를 닦아 창건하였다는 등구사는 고려말에 소실된 것을 조선초에 증건하였고 1709년(숙종 35)에 다시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현재 등구사 삼층석탑은 과거 파손과 도굴 등으로 훼손되어 등구사터에 흩어져 있던 석탑의 2층 기단과 1층 탑신, 지붕돌 등을 모아 복원한 것이다. 등구사 삼층석탑은 비록 파손되고 결실된 상태이기는 하나 탑신의 몸돌 모서리에 새겨진 기둥의 형태와 옥개석 지붕의 날렵함 등 에서 뛰어난 조각기법과 정교한 조형미가 돋보인다.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등구사 삼층석탑은 현재 남아있는 모양이 삼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이유가 안내문에 명기돼야 합니다.(일부 밖에 남지 않았지만 옥개석 받침이 4단으로 되어 있고 옥개석 처마의 네 귀퉁이는 날렵하게 하늘로 치솟아 있어 뛰어난 조형미를 보인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
    • 이 석탑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는데, 이런 경우는 어떤 근거로 조성시기를 비정했는지 소개하는 게 설득력이 있겠지요? 석탑의 모양과 축조 기법을 설명하면서 이야기 될 부분입니다.
    • 1979년 그 존재가 알려졌다고 하는데, 무엇 때문인지 그 계기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도 좋겠습니다.

2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등구사의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탑이 위치한 등구사는 656년에 창건되었고, 고려 말 조선 초에 소실되었다가 1709년에 중건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등구사는 2006년부터 새로 건립되었다.

석탑은 도굴되고 훼손된 채 옛 등구사 터에 방치되어 있다가, 2000년에 복원하였고 현재 2층 기단, 1층 몸돌, 지붕돌만 남아 있다. 기단에는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고, 몸돌은 모서리에만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4단의 받침을 두었다. 비록 파손되고 결실된 상태이기는 하나 몸돌 모서리에 새겨진 기둥의 형태와 지붕돌의 날렵함 등에서 뛰어난 조각기법과 정교한 조형미가 돋보인다.

문맥요소

Nodes

ID Class Label Description
함양 등구사 삼층석탑 Object 함양 등구사 삼층석탑
L38-0547-0000 Heritage 함양 등구사 삼층석탑
불탑 Concept 불탑
구형왕 Actor 구형왕(仇衡王,_재위_521~532) 가락국의 제10대 왕(재위 521∼532)이자 마지막 왕이며, 김유신의 증조부이다.
등구사 Place 등구사(登龜寺) 현재의 등구사는 2006년부터 복원된 현대식 건물이다.
등구사지 Place 등구사지(登龜寺址) 과거 등구사가 있었던 자리에 다시 등구사를 복원하고 있다.

Links

Source Target Relation
함양_등구사_삼층석탑 불탑 type
L38-0547-0000 불탑 isDesignatedAs
함양_등구사_삼층석탑 등구사지 isStoredIn
등구사 등구사지 isRelatedTo
등구사 구형왕 isRelatedTo

참고자료

  • <등구사지>,『한국의 사지(寺址) 현황조사 보고서- 울산광역시, 경상남도, 2013 上』, 2013, 문화재청, pp.504-507 → 문화재 기본 설명
  • 함양 등구사 삼층석탑, 디지털함양문화대전 http://hamyang.grandculture.net/hamyang/toc/GC07200478 → 문화재 기본 내용 : 일반적인 삼층석탑은 2층 기단에 3층의 탑신부를 가진다. 함양 등구사 삼층석탑은 파손되거나 결실되어 2층의 기단 및 1층 탑신부만 확인된다. 2층의 기단에는 가운데 탱주(撑柱)가 있고 1층 탑신의 몸돌 모서리에는 우주(隅柱)가 잘 다듬어져 있다. 비록 1층밖에 남지 않았지만 옥개석의 받침은 4단으로 되어 있고 옥개석 처마의 네 귀퉁이는 날렵하게 하늘로 치솟아 있어 뛰어난 조형미를 보인다. / 함양 등구사 삼층석탑의 조각 수법을 볼 때 신라 후기인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규모가 크고 조각 수법 역시 뛰어난 석탑이다. 함양 등구사 삼층석탑은 파손되어 방치되어 있던 것을 2000년에 복원하였다. 2012년 3월 8일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47호로 지정되었다.
  • <참고> 함양군 등구사의 재조명과 연구 필요, 프레시안, 2020.05.28.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52811343023633&ref=rss#0DKU →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 촉동마을 뒤쪽에 있는 등구사는 가락국이 멸망하기 직전인 구형왕(양왕)때 터를 닦아 서기 656년(신라 태종 무열왕 2년)에 창간한 사찰이다. 당시는 가락국 왕실의 기원 사찰로 동찰과 서찰이 창건되었으나 가락국의 멸망과 더불어 별궁은 무너지고 사찰마저 원인 모를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1709년 편찬된 등구사 중창기에 따르면 당시 무너진 사지(寺地)를 지키고 있던 주지 초학(楚學)대사와 탄기(坦機), 자상(慈祥), 초익(楚益) 등 고승들이 뜻을 모아 3년여 권선 끝에 장엄하게 옛 모습을 되찾아 중창했으나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으로 더 이상 원형을 복원하지 못했다. / 2006년 인담스님이 무너진 사지를 걷어내고 토굴을 일구어 다시 등구사란 이름으로 주석하게 됐다. 현재의 선원은 현대식 건물로 법당, 승방, 공양간, 종무소, 선원 등 모두 5동이 사찰을 지키고 있다. / 등구사터에는 9세기 신라시대에 조성된 삼층석탑이 있다. 이 석탑은 1979년 장충식 교수에 의해 학계에 알려졌는데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고, 도굴 흔적이 뚜렷하며, 석탑의 윗부분이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고 한다.
  • 함양 등구사 삼층석탑, 옛님의 숨결 그 정취를 찾아, 다음 블로그 https://blog.daum.net/12977705/8724005 → 2013년 답사 기록 및 사진 ; 2013년 답사 사진에서도 사지현황보고서의 언급과 같이 2층기단+1층 탑신만 확인됨 / (전하는 이야기 – 참고) 대한제국 말에 복원헀으나 일제강점기에 도굴꾼에 의해 훼손되었고, 이후 탑부재 일부를 수습해 복원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며, 학계 보고자인 장충식 교수의 기록에 의하면 초층 탑신에 사리공이 노출되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