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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남악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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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남악서원
진주 남악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진주 남악서원
한자 晉州 南岳書院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 죽곡리 817-2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2호
지정일 1983년 7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진주 남악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남악서원은 신라 김유신(金庾信),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 홍유후(弘儒候) 설총(薛聰) 3분을 모신 서원으로 1922년에 세웠다.

경주의 서악서원(西岳書院)의 이름을 본떠서 ‘남악서원’이라고 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을 완수하기 위해 전략상의 요지(要地)를 찾아다니다가 이곳 금산 아래 진을 치고 쉬던 중 꿈에 신령이 나타나 삼국통일 위업의 가르침을 받아 공을 세웠다고 전한다.

사당에서는 김유신, 설총, 최치원 3분을 모시고 매년 음력 3월 18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서원은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남악서원은 신라의 인물 김유신, 최치원, 설총을 모시기 위해 1919년/1922년에 세워졌으며, ‘서원’이 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서원이 세워진 자리에는 본래 김유신의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삼국통일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를 찾아다니다 이곳에서 쉬게 되었을 때, 꿈에서 신령을 만나 가르침을 받은 후 공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김유신과 관련한 전설만 전해지지만, 경주 서악서원의 사례를 따라 신라 시대의 인물 세 명을 배향하고, 서원과 건물의 이름을 본따 지은 것으로 보인다.

경내에는 입구부터 동서재, 강당, 내삼문, 사당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강당 건물에 대청을 두지 않고 대신 툇마루를 확장해 대청의 기능을 하도록 한 것이 특이하다.

사당에는 세 사람의 위패와 영정을 모셨으며, 매년 음력 3월에 제사를 지낸다.

  • 서원 세워진 년도 자료마다 차이 있어 확인 필요함 – 문안, 진주문화대전 1922년 / 기존설치안내판, 서원연합회 민백, 문화재청 1919년
  • 2005년에 보수공사가 이루어졌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