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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삼존상을 조성한 희장은 17세기 중엽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승려 조각가로, 쌍계사 시왕전에 모셔져 있는 목조지장보살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2호)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건장한 신체 표현과 통통하게 살이 오른 어린아이 같은 얼굴은 희장이 제작한 불상의 특징이다.
 
이 삼존상을 조성한 희장은 17세기 중엽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승려 조각가로, 쌍계사 시왕전에 모셔져 있는 목조지장보살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2호)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건장한 신체 표현과 통통하게 살이 오른 어린아이 같은 얼굴은 희장이 제작한 불상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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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이 너무 깁니다. 길어지면 뒤에 이어지는 글을 읽지 않게 되니 끊어주세요.  
 
#*첫 문장이 너무 깁니다. 길어지면 뒤에 이어지는 글을 읽지 않게 되니 끊어주세요.  
 
#*두 번째 문장은 ‘사찰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1호)에 모셔져 있다. 조선 현종 6년(1665) 승려 조각가 희장(熙壯)을 중심으로 한 9명의 조각승이 이곳 쌍계사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하였다. => 사찰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1호)에 모신 이 불상은~봉안하기 위해 조성하였다.
 
#*두 번째 문장은 ‘사찰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1호)에 모셔져 있다. 조선 현종 6년(1665) 승려 조각가 희장(熙壯)을 중심으로 한 9명의 조각승이 이곳 쌍계사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하였다. => 사찰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1호)에 모신 이 불상은~봉안하기 위해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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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본존인 석가여래와 양옆에서 본존을 모시는 두 보살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 현종 6년(1665) 승려 조각가 희장(熙壯)을 중심으로 한 9명의 조각승이 이곳 쌍계사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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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은 오른손은 땅을 향하고 있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채 무릎 위에 두었는데, 이는 부처가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좌우의 두 보살은 손의 방향만 반대로 되어 있을 뿐, 모두 머리에 보관을 쓰고 목에 장신구를 둘렀으며, 손에 연꽃 가지를 들고 있다. 2015년 대웅전을 해체보수 하기 위해 불상을 옮기는 과정에서 불상의 내력과 시주자 명단 등이 적혀 있는 발원문을 포함해 경전, 다라니 등 다수의 복장 유물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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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삼존상을 조성한 희장은 17세기 중엽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승려 조각가로, 쌍계사 시왕전에 모셔져 있는 목조지장보살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2호)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건장한 신체 표현과 통통하게 살이 오른 어린아이 같은 얼굴은 희장이 제작한 불상의 특징이다.
  
 
=='''문맥요소'''==
 
=='''문맥요소'''==

2021년 6월 20일 (일) 12:26 판


진도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Wooden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of Ssanggyesa Temple, Jindo
진도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표명칭 진도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영문명칭 Wooden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of Ssanggyesa Temple, Jindo
한자 珍島 雙溪寺 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
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운림산방로 299-30 (의신면, 쌍계사)
지정번호 보물 제1998호
지정일 2018년 10월 4일
분류 유물/불교조각/목조/불상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불상 3구, 발원문 3점, 후령통 3점
웹사이트 진도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대웅'이란 현세불인 석가모니불의 존칭 중에 하나이며 큰 장부라는 뜻이다. 그래서 석가모니불을 모신 금당을 ‘대웅전’이라고 한다. 쌍계사 대웅전의 목조삼존불좌상은 중앙에 석가모니불과 양쪽에는 협시불인 문수보살 · 보현보살이 있다. 그 모습이 원만하고 조각기법이 우수하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이 불상에서는 조성기(제작 연대 · 장소, 제작자, 시주자 등을 기록한 문서)가 나오지 않았으나, 대웅전이 조선 숙종 23년(1697)에 건립되었다는 상량문이 발견되어 그 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 각 불상의 규격(높이)은 석가모니불 140cm, 문수보살 126cm, 보현살 131cm 이다.

17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불상들과 같은 모습을 띠고 있어 전남에 남아있는 조선시대 불상의 편년을 아는 기준작이라 할 수 있다. 전남 지방의 17세기 불상은 영광 불갑사 대웅전 목조삼신불좌상(1635년), 강진 옥련사 목조석가여래좌상(1684년) 등이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쌍계사(雙溪寺)의 중심건물인 대웅전(大雄殿,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1호)에 모셔져 있는 삼존불상으로, 본존인 석가모니불과 좌우 협시불로 이루어져 있다.

2015년 대웅전을 해체보수 하기 위해 불상을 옮기는 과정에서 불상의 내력과 시주자 명단 등이 적혀 있는 발원문을 포함해 경전, 다라니 등 다수의 복장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조선 현종 6년(1665)에 승려 조각가 희장(熙壯)을 중심으로 한 9명의 조각승이 이곳 쌍계사에 봉안하기 위해 이 불상들을 조성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은 오른손은 땅을 향하고 있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채 무릎 위에 두었는데, 이는 부처가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좌우의 두 보살은 손의 방향만 반대로 되어 있을 뿐, 모두 머리에 보관을 쓰고 목에 장신구를 둘렀으며, 손에 연꽃 가지를 들고 있다.

희장은 17세기 중엽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승려 조각가로, 시왕전(十王殿)에 모셔져 있는 목조지장보살상(木造地藏菩薩像,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2호)의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건장한 신체 표현과 통통하게 살이 오른 어린아이 같은 얼굴은 희장이 제작한 불상 조각의 특징이다.

  • 본존 석가여래와 좌우 협시보살상의 보존 상태와 도상의 구성이 조성 당시와 크게 변한 것 없이 완전한 편이며, 17세기 중·후반기 불상의 복장법식 연구에도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 진도 쌍계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좌우협시불은 발원문에 존상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희장이 참여했던 다른 삼존상의 예시(희장이 이보다 3년 전에 조성한 범어사 대웅전 석가여래삼존상에서는 석가-미륵-제화갈라, 즉 수기삼존상을 제작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나 그가 활동했던 17세기 후반의 불상 구성을 감안하면(조선 후기의 삼존상 구성에서 주존 석가모니불의 좌우 협시는 아미타불-약사불이거나 제화갈라-미륵의 두 경우가 있을 뿐이다.) 좌우 협시불의 존명은 기존 안내문의 문수-보현보살이 아니라 미륵-제화갈라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문화재청 회의록 내용 요약) -> (해당 내용 밝혀 적는 경우 2020년 작업한 대웅전 안내판 문안도 수정 필요하므로 고민 필요)

1차 수정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본존인 석가여래와 양옆에서 본존을 모시는 두 보살로 이루어졌으며, 사찰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1호)에 모셔져 있다. 조선 현종 6년(1665) 승려 조각가 희장(熙壯)을 중심으로 한 9명의 조각승이 이곳 쌍계사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하였다.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은 오른손은 땅을 향하고 있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채 무릎 위에 두었는데, 이는 부처가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좌우의 두 보살은 손의 방향만 반대로 되어 있을 뿐, 모두 머리에 보관을 쓰고 목에 장신구를 둘렀으며, 손에 연꽃 가지를 들고 있다. 2015년 대웅전을 해체보수 하기 위해 불상을 옮기는 과정에서 불상의 내력과 시주자 명단 등이 적혀 있는 발원문을 포함해 경전, 다라니 등 다수의 복장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삼존상을 조성한 희장은 17세기 중엽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승려 조각가로, 쌍계사 시왕전에 모셔져 있는 목조지장보살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2호)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건장한 신체 표현과 통통하게 살이 오른 어린아이 같은 얼굴은 희장이 제작한 불상의 특징이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오류없음
  2. 분야별 자문위원 2
    • 서술의 순서를 수정할 필요가 있음: (아래의 순서과 같이 문장을 정리하면 좋을 듯 함)
    1. 부처와 보살로 구성된 삼존형식
    2. 복장유물이 발견된 경위, 이에 따라 조성시기와 제작자를 알 수 있었음.
    3. 불상의 형태적 특징
    4. 조각승 희장에 대한 내용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첫 문장이 너무 깁니다. 길어지면 뒤에 이어지는 글을 읽지 않게 되니 끊어주세요.
    • 두 번째 문장은 ‘사찰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1호)에 모셔져 있다. 조선 현종 6년(1665) 승려 조각가 희장(熙壯)을 중심으로 한 9명의 조각승이 이곳 쌍계사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하였다. => 사찰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1호)에 모신 이 불상은~봉안하기 위해 조성하였다.

2차 수정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본존인 석가여래와 양옆에서 본존을 모시는 두 보살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 현종 6년(1665) 승려 조각가 희장(熙壯)을 중심으로 한 9명의 조각승이 이곳 쌍계사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하였다.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은 오른손은 땅을 향하고 있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채 무릎 위에 두었는데, 이는 부처가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좌우의 두 보살은 손의 방향만 반대로 되어 있을 뿐, 모두 머리에 보관을 쓰고 목에 장신구를 둘렀으며, 손에 연꽃 가지를 들고 있다. 2015년 대웅전을 해체보수 하기 위해 불상을 옮기는 과정에서 불상의 내력과 시주자 명단 등이 적혀 있는 발원문을 포함해 경전, 다라니 등 다수의 복장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삼존상을 조성한 희장은 17세기 중엽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승려 조각가로, 쌍계사 시왕전에 모셔져 있는 목조지장보살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2호)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건장한 신체 표현과 통통하게 살이 오른 어린아이 같은 얼굴은 희장이 제작한 불상의 특징이다.

문맥요소

Nodes

ID Class Label Description
진도_쌍계사_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Object 진도_쌍계사_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B00-1998-0000 Heritage (보물_제1998호)_진도_쌍계사_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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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김홍도 말년의 역작「삼공불환도」,「진도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등 4건 보물 지정, 문화재청 보도자료, 2018.10.14. https://www.cha.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newsItemId=155701009&sectionId=b_sec_1&mn=NS_01_02 → 보물 제1998호 「진도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珍島 雙溪寺 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은 17세기 중엽 전라‧경상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조각가 희장(熙壯)을 중심으로 총 9명의 조각승이 공동으로 참여해 1665년(현종 6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가운데 석가모니불상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각 1구의 보살상으로 구성된 삼존(三尊) 형식이다.
  • 쌍계사 대웅전 항목 참조 → 쌍계사의 대웅전은 1697년에 건립되었다. 중앙문은 빗살무늬, 양 측면의 문은 띠살무늬를 하고 있다. 지붕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기둥 위에 짜 맞춰 댄 부재들을 공포(栱包)라고 하는데, 이러한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설치되어 있다. 현재의 건물은 2015년에 해체·복원되었다. 전각 안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배치한 목조삼존불상(보물 제1998호)이 모셔져 있다. / 대웅전 전각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1호 지정
  • 진도 쌍계사 시왕전 목조지장보살상 항목 참조 → 시왕전에는 지장보살과 시왕을 비롯한 총 33구의 목조각상이 모셔져 있다.
  • 문화재청 2018년도 동산문화재분과위원회 제7차 회의록 → 삼존상은 2015년 대웅전을 해체보수 하는 과정에서 불상을 이안하고 복장조사를 실시하였다. 복장에서는 조연문(발원문), 후령통, 경전, 다라니 등 조성 당시에 납입된 것으로 보이는 많은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다. / 이 삼존불상은 조상기를 통해 희장이 만든 것임이 밝혀졌는데, 이 중 두 협시보살상의 존명은 희장이 1661년에 제작한 범어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존불좌상의 사례를 통해 미륵과 제화갈라로서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 조선 후기의 삼존상 구성에서 주존 석가모니불의 좌우 협시는 아미타불-약사불이거나 제화갈라-미륵의 두 경우가 있을 뿐이며,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한 삼존상은 단 1건도 보고된 바 없다./ 삼존불에 이어 1666년 쌍계사의 지장시왕상 역시 희장에 의해 조성되었기 때문에 희장은 대웅전 삼존불 조성을 마치고 곧바로 명부전 존상 조성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진도 쌍계사를 둘러싼 성속의 불사(佛事)에 대한 염원이 매우 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후기 조각사에 있어 희장파는 매우 중요한 위상을 지니고 있는바, 그 대표적인 인물인 희장이 진도와 같은 고립된 섬에서도 직접 작업한 작품이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히 주목되는 사례로 생각된다. 또한 그의 활동범위에 있어 가장 남단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