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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사양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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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8월 23일 (화) 15:5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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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사양정사
산청 사양정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산청 사양정사
한자 山淸 泗陽精舍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대로 2901-7 (남사리 264-1)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53호
지정일 2009년 1월 15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근대주거/근대가옥
시대 일제강점기
수량/면적 2동/1,400㎡
웹사이트 산청 사양정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산청 사양정사는 구한말 유학자 계제 정제용의 아들인 정종화가 남사로 이전한 후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재실이다. 정제용은 정몽주의 후손으로 구한말 유학자인 허유와 파리장서*를 작성한 곽종석의 문인이다. 사양정사란 ‘사수’ 남쪽의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집이라는 의미로 공자를 흠모하는 뜻을 담고 있으며, 자식들을 교육하고 지인과 교류하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사양정사는 앞면 7칸, 옆면 2칸 규모로, 옆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2칸의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2칸의 온돌방, 왼쪽에는 1칸의 온돌방을 두었으며, 건물 각 끝에는 마루가 1칸씩 설치되어 있다. 높은 천장, 튼실하고 정교하게 손질된 부재, 다락과 벽장 등 풍부한 수납공간, 유리의 사용 등 근대 한옥의 특징적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정사 앞쪽에 위치한 대문채는 4칸의 광을 설치한 7칸 규모의 큰 건물로 당시 경제력을 확인할 수 있다. 가운데 1칸은 충절을 상징하는 태극문양과 삼지창이 설치된 솟을대문**으로 구성하였다.


  • 파리장서(巴里長書) :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에 참여하지 못한 유림들이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강화회의에 독립을 호소하며 보낸 청원서.
  • 솟을대문 : 출입문 좌우로 설치된 행랑채의 지붕보다 높이 솟게 지은 대문.
  • 국가문화유산포털과 남사예담촌 홈페이지에는 아들 정덕영과 장손 정정화가 지었다고 함. 확인 필요.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사양정사는 정종화가 할아버지인 조선시대의 유학자 정제용(1865-1907)을 기리기 위해 1920년대에 지은 재실이다. 이후 이 재실은 문중 후손들을 교육하고 지인들과 교류하기 위한 장소로도 쓰였다. 사양정사라는 이름은 “사수(泗水) 남쪽에 있는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사수는 원래 공자가 태어난 곡부현의 강 이름인데, 예로부터 산청 지역 사람들은 공자를 흠모하는 뜻을 담아 남사리 북쪽을 흐르는 남사천을 사수라 불렀다.

사양정사는 팔작지붕 건물로,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옆에는 온돌방이 있고 건물 각 끝에는 누마루가 있다. 높은 천장, 튼실하고 정교하게 손질된 부재, 다락과 벽장 등 풍부한 수납공간, 유리의 사용 등 20세기에 지어진 한옥의 특징적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정사 앞쪽에 위치한 대문채는 광의 역할을 겸하는 큰 규모의 건물로, 당시 이 문중의 경제력을 확인할 수 있다. 대문 정면 위쪽에는 충절을 상징하는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