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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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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일=2021년 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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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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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이 누각은 2층 누각 건물로 1층은 정면 3간 측면 4간이며, 2층은 정면 3간 측면 2간으로 연건평 154.9㎡, 이익공(二翼工) 팔작(八作) 지붕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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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풍루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이다. 선조 백호 임제가 호남의 삼한이라 일컬어지는 무주 한풍루, 남원 광한루, 전주 한벽당 중 으뜸으로 꼽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곳이다. 조선시대부터 수많은 명사와 시인, 묵객들이 글과 그림을 남기며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무주 지역의 역사와 정치, 문화 성숙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본래 무주의 관아 앞 천변(현 무주우체국 자리)에 위치했는데, 언제 누구에 의해 건립되었는지는 자세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세조 11년(1465) 전라관찰사를 역임한 성임(成任)이 한풍루를 다녀간 뒤 남긴 시(時)가 있는 것으로 보아, 한풍루는 적어도 이전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중종 25년(1530)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한풍루(寒風樓) 재객관전(在客館前)이라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한풍루는 임진왜란 중 불에 타버렸다. 그 후 왜란이 종결되던 선조 32년(1599) 백호 임제의 동생인 현감 임환(林懽)에 의해 복원이 착수되었는데, 그는 복원을 마무리 하기도 전에 전임되어 후임 남복시(南復始)에 의해 복원되었다. 그 후 인조 24년(1646)보수, 숙종 4년(1678) 단청, 영조 5년(1729), 정조 7년(1783) 중수되었다.
 
그리고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후 불교포교당으로, 무주보통학교 공작실 등으로 사용되었고, 영동군 양산면 가곡리 금강변으로 옮겨져 금호루(錦湖樓)라는 현판으로 바꾸어 걸게 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으며, 그 후 1960년대 들어《한풍루복구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1971년 11월 15일 현 위치에 복원하게 되었다.
 
  
* 구글 지도에 무주한풍루의 주소가 잘못 설정되어 있으며, 위도 경도는 주소에 의거하여 출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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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풍루가 원래 있던 곳은 관아 앞으로 지금의 무주우체국 자리이다. 건립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5세기 김담, 성임, 유순이 한풍루를 다녀간 뒤 남긴 시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등의 여러 기록을 통해 조선 초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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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한풍루는 선조 25년(1592)에 왜군의 방화로 불에 타서 없어졌다가 선조 32년(1599)에 다시 지어졌고, 그 후에도 여러 차례 고쳐졌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 이후에는 무주 공립보통학교 공작실과 불교 포교당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 후 한 일본인이 사들였다가 1936년 충청북도 영동군의 개인에게 팔았는데 이때 영동군 금강 변으로 옮겨져 ‘금호루(錦湖樓)’라 불렸다. 1960년대 한풍루 복구추진위원회가 결성됐으며 한풍루를 되찾기 위한 무주군민의 끈질긴 노력 끝에 1971년 11월 현 위치로 옮겨져 복원됐다. 이듬해인 1972년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된 후 2021년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승격됐다.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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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풍루에는 석봉 한호, 강암 송성용 선생이 쓴 현판이 걸려 있다.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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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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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pungnu Pavilion, Mu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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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pungnu Pavilion was a part of the local government office complex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It is unknown exactly when the pavilion was first established, but accounts of the pavilion in poems written by visiting civil officials suggest that it dates to at least the 15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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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uju Local Government was located at the site of what is now the Muju Post Office. The pavilion was burned dow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and rebuilt in 1599.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pavilion served as a workshop of Muju Public Primary School and as a Buddhist dharma propagation center, until it was purchased by a Japanese man. It was then sold in 1936 to another individual who moved the pavilion to the bank of Geumgang River in Yeongdong-gun County, Chungcheongbuk-do Province and renamed it Geumhoru Pavilion. In 1960, the Hanpungnu Pavilion Restoration Committee was formed and by November 1971, the pavilion had returned to Mu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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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centuries, many renowned scholars, poets, and artists created their works in this pavilion. Plaques hung inside the pavilion were calligraphed by famous calligraphers Han Ho (1543-1605) and Song Seong-yong (1913-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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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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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풍루는 조선시대에 무주 관아에 세워졌던 누각이다. 처음 건립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한풍루에 다녀간 여러 문인들이 남긴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15세기부터는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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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관아는 지금의 무주우체국 자리에 있었다. 한풍루는 1592년에 소실되었다가 1599년에 다시 지어졌고, 일제강점기인 1910년 이후에는 무주 공립보통학교 공작실과 불교 포교당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 후 한 일본인이 사들였다가 1936년 어느 개인에게 팔았는데, 이때 충청북도 영동군 금강 변으로 옮겨져 ‘금호루’라 불렸다. 1960년대에 한풍루 복구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으며, 1971년 11월 무주에 다시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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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풍루는 수백년 동안 수많은 명사와 시인, 묵객들이 글과 그림을 남기며 풍류를 즐기던 곳이며, 누각 안에는 명필로 이름난 한호(1543-1605), 송성용(1913-1999)이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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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한풍루 (茂朱寒風樓)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5001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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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한풍루 (茂朱寒風樓),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93777&cid=40942&categoryId=3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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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한풍루 (茂朱寒風樓),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9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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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건곤, 김태환, 이강석, 『동국여지승람 제영 사전 누정편』,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7, 278~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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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성지(赤城誌),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ttp://e-kyujanggak.snu.ac.kr/kyuview/orgviewer.jsp?tid=geo&uci=GR33597_00IH_0001&page=52&docChangePage=&mode=0&view_layout=&totalSearchString=&item_cd=&book_cd=GR33597_00&vol_no=0001&page_no=&page_no2=&pageId=2&pageStat=d&kingInf=&mokNm=&winPop=&add_page_no=&direction=&resultZoom=&imgFileNm=&mokIdx=&tbl_conts_seq=&text_m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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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2일 (화) 08:37 기준 최신판

무주 한풍루
Hanpungnu Pavilion, Muju
무주 한풍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무주 한풍루
영문명칭 Hanpungnu Pavilion, Muju
한자 茂朱 寒風樓
주소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한풍루로 326-5 (당산리)
지정번호 보물
지정일 2021년 6월 24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관리자 무주군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무주 한풍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한풍루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이다. 선조 때 백호 임제가 호남의 삼한이라 일컬어지는 무주 한풍루, 남원 광한루, 전주 한벽당 중 으뜸으로 꼽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곳이다. 조선시대부터 수많은 명사와 시인, 묵객들이 글과 그림을 남기며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무주 지역의 역사와 정치, 문화 성숙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풍루가 원래 있던 곳은 관아 앞으로 지금의 무주우체국 자리이다. 건립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5세기 김담, 성임, 유순이 한풍루를 다녀간 뒤 남긴 시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등의 여러 기록을 통해 조선 초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한풍루는 선조 25년(1592)에 왜군의 방화로 불에 타서 없어졌다가 선조 32년(1599)에 다시 지어졌고, 그 후에도 여러 차례 고쳐졌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 이후에는 무주 공립보통학교 공작실과 불교 포교당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 후 한 일본인이 사들였다가 1936년 충청북도 영동군의 개인에게 팔았는데 이때 영동군 금강 변으로 옮겨져 ‘금호루(錦湖樓)’라 불렸다. 1960년대 한풍루 복구추진위원회가 결성됐으며 한풍루를 되찾기 위한 무주군민의 끈질긴 노력 끝에 1971년 11월 현 위치로 옮겨져 복원됐다. 이듬해인 1972년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된 후 2021년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승격됐다.

한풍루에는 석봉 한호, 강암 송성용 선생이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영문

Hanpungnu Pavilion, Muju

Hanpungnu Pavilion was a part of the local government office complex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It is unknown exactly when the pavilion was first established, but accounts of the pavilion in poems written by visiting civil officials suggest that it dates to at least the 15th century.

The Muju Local Government was located at the site of what is now the Muju Post Office. The pavilion was burned dow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and rebuilt in 1599.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pavilion served as a workshop of Muju Public Primary School and as a Buddhist dharma propagation center, until it was purchased by a Japanese man. It was then sold in 1936 to another individual who moved the pavilion to the bank of Geumgang River in Yeongdong-gun County, Chungcheongbuk-do Province and renamed it Geumhoru Pavilion. In 1960, the Hanpungnu Pavilion Restoration Committee was formed and by November 1971, the pavilion had returned to Muju.

Over the centuries, many renowned scholars, poets, and artists created their works in this pavilion. Plaques hung inside the pavilion were calligraphed by famous calligraphers Han Ho (1543-1605) and Song Seong-yong (1913-1999).

영문 해설 내용

한풍루는 조선시대에 무주 관아에 세워졌던 누각이다. 처음 건립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한풍루에 다녀간 여러 문인들이 남긴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15세기부터는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무주 관아는 지금의 무주우체국 자리에 있었다. 한풍루는 1592년에 소실되었다가 1599년에 다시 지어졌고, 일제강점기인 1910년 이후에는 무주 공립보통학교 공작실과 불교 포교당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 후 한 일본인이 사들였다가 1936년 어느 개인에게 팔았는데, 이때 충청북도 영동군 금강 변으로 옮겨져 ‘금호루’라 불렸다. 1960년대에 한풍루 복구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으며, 1971년 11월 무주에 다시 옮겨왔다.

한풍루는 수백년 동안 수많은 명사와 시인, 묵객들이 글과 그림을 남기며 풍류를 즐기던 곳이며, 누각 안에는 명필로 이름난 한호(1543-1605), 송성용(1913-1999)이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문맥요소

Nodes

ID Class Label Description
무주_관아 Actor 무주_관아
영동_금호루 Place 영동_금호루 무주 한풍루는 1936년 영동 금호루로 옮겨져 금호루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가 현재 위치로 복구되었다.
H35-0019-0000 Heritage (전라북도_유형문화재_제19호)_무주_한풍루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되어 있다.
무주_한풍루 Place 무주_한풍루 무주 한풍루는 무주 관아에서 세운 누각으로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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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arget Relation
무주_한풍루 무주_관아 fou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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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_한풍루 H35-0019-0000 isDesignated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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