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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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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고분군은 나주 반남면의 대안리, 신촌리, 덕산리 일대에 분포하는 40여 기의 무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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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분군은 1910년대에 처음 발굴되었으며, 영산강 유역 고대 사회의 독특한 고분 양식인 대형 옹관 고분이 다수 발견되었다. 대형 옹관 고분은 3세기부터 6세기까지 크게 유행하였다. 초반에는 옹관 절반을 지하에 묻는 반지하식이었다. 4세기 중반부터는 지상에 분구(墳丘)를 쌓은 후 정상부의 흙을 되파고 시신을 안치한 커다란 항아리를 매장하는 방식으로 조성되었고, 분구가 대형화되었다. 대형 옹관 고분은 나주 반남 일대는 물론 영암, 함평, 무안 등 영산강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반남 지역에 대형 옹관 고분이 밀집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반남 지역이 고대 지배 세력의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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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옹관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은 영산강 유역 계통의 유물이 주를 이룬다. 백제, 일본의 유물이 섞여 있고 가야의 특징도 일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이 일대의 토착세력이 백제, 가야, 일본 등과 활발하게 교류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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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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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남고분군, 국립나주박물관. https://naju.museum.go.kr/kor/sub01_07.do
  
  

2024년 5월 4일 (토) 14:15 판


나주 반남 고분군
Ancient Tombs in Bannam, Naju
나주 반남 고분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나주 반남 고분군
영문명칭 Ancient Tombs in Bannam, Naju
한자 羅州 潘南 古墳群
주소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대안리 103 등
지정번호 사적 제513호
지정일 2011년 7월 28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고분군
수량/면적 121,425㎡
웹사이트 나주 반남 고분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반남 고분군에는 대형 옹관 고분 수십 기가 분포한다. 대형 옹관 고분이란 지상에 분구(墳丘)를 쌓고 그 안에, 시신을 안치한 커다란 옹(항아리)을 매장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영산강 유역 고대 사회의 독특한 고분 양식이다.

대형 옹관 고분은 3세기부터 6세기까지 약 3세기 동안 영산강 유역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3세기 무렵에는 옹관 절반을 지하에 묻는 반지하식이었으나 4세기 중반부터는 지상식으로 변하였다. 또한 분구가 대형화되어 크기가 40~50미터에 이른다.

대형 옹관 고분은 나주 반남 일대는 물론 영암, 함평, 무안 등 영산강을 따라 형성되어 있으며, 옹관 고분의 밀집도로 보아 반남 지역이 고대 지배 세력의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대형 옹관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은 영산강 유역 계통의 유물이 주를 이루지만 후기에 출토된 유물에는 백제, 일본의 유물이 섞여 있고 가야의 특징도 일부 나타난다. 당시 사회가 백제, 가야, 일본 등과 활발하게 교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반남고분군은 나주 반남면의 대안리, 신촌리, 덕산리 일대에 분포하는 40여 기의 무덤을 말한다.

이 고분군은 1910년대에 처음 발굴되었으며, 영산강 유역 고대 사회의 독특한 고분 양식인 대형 옹관 고분이 다수 발견되었다. 대형 옹관 고분은 3세기부터 6세기까지 크게 유행하였다. 초반에는 옹관 절반을 지하에 묻는 반지하식이었다. 4세기 중반부터는 지상에 분구(墳丘)를 쌓은 후 정상부의 흙을 되파고 시신을 안치한 커다란 항아리를 매장하는 방식으로 조성되었고, 분구가 대형화되었다. 대형 옹관 고분은 나주 반남 일대는 물론 영암, 함평, 무안 등 영산강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반남 지역에 대형 옹관 고분이 밀집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반남 지역이 고대 지배 세력의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대형 옹관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은 영산강 유역 계통의 유물이 주를 이룬다. 백제, 일본의 유물이 섞여 있고 가야의 특징도 일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이 일대의 토착세력이 백제, 가야, 일본 등과 활발하게 교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