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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예안리 고분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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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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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김해시에서 서 낙동강을 따라 상동으로 가는 도로 가에 위치한 고분군으로 도로 건너편에는 예안리 패총이 있다. 1947년경까지 다수의 돌덧널들이 노출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밭으로 변해있다. 고분분은 서북의 까치산에서 동쪽의 마산으로 길게 연결된 습한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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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예안리 고분군은 4~7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무덤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유적이다. 이곳은 가야 지역 최초로 덧널무덤*이 조성된 곳인데, 이전 시기에 만들어진 무덤을 훼손하고 그 위에 새로운 양식의 무덤이 조성되었다.
  
1976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과 부산대학교박물관이 5차례의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덧널무덤 59기, 구덩식 돌덧널무덤93기, 독무덤 17기, 앞트기식돌방무덤 12등 총 181기의 고분이 조사되었고, 토기류 1,100여점, 철기 660점, 구슬류 180여점, 귀걸이 41쌍, 골측 60여점 등 총 2,000여점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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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옛 김해만이 형성되어 있던 곳으로, 해안의 습한 토양과 이곳에 쌓여 있던 조개껍데기 덕분에 유례없이 많은 인골이 온전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발굴된 250여 기의 인골은 가야인의 체질적 특징부터 매장 관습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이곳에서는 4~5세기 금관가야의 특징을 보여 주는 외절구연** 굽다리 접시를 비롯한 각종 가야의 토기와 철기, 귀걸이, 구슬 등이 이곳에서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두개골이 변형된 인골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가야 편두*** 풍습의 존재를 증명해 준다.
  
4~6세기에 걸쳐 계속적으로 만들어진 고분군은 가야지역에서 확인되는 모든 형식의 고분이 중복되고 있어, 가야의 묘제가 덧널무덤에서 돌덧널무덤으로 돌덧널무덤에서 돌방무덤으로 변해갔던 과정을 알 수 있는 곳이다. 삼국지는 3세기 경의 가야사회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돌로 머리를 눌러 편두(偏頭)를 만드는 풍습이 있었다고 전한다. 예안리 고분군에서는 두개골 성현으로 앞이마가 심하게 후퇴한 10개체의 두개골(偏頭)이 출토되어, 이러한 풍습이 가야사회에 실제로 존재했음을 증명해 주었다. 무려 190여개체의 인골이 확인된 예안리 고분군은 가야인 내지는 고대 한국인의 형질을 살펴볼 수 있는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편두를 포함하여 출토된 유물들은 현재 부산대학교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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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안리 고분군은 가야 고분의 형식이 덧널무덤 → 돌덧널무덤**** → 앞트기식돌방무덤*****으로 전개된 과정과 연대 구성에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며, 가야 사회의 편두 풍습과 가야인의 형질 연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예안리 고분군은 4~7세기에 조성된 가야의 무덤들로, 가야 묘제의 변천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곳이다.
 
 
 
서북쪽의 까치산과 동쪽의 마산 사이로 조성된 낮은 구릉 지대에 동서로 길게 연결되어 분포하고 있다. 1950년대 중반에 그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1976년 이루어진 첫 발굴조사를 포함해 5차례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결과 널무덤, 독무덤 등 다양한 양식의 무덤 총 212기와 (토기류 1,100여점, 철기 660점, 구슬류 180여점, 귀걸이 41쌍, 골측 60여점 등) 2,000여 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곳의 발굴조사를 통해 가야지역에서 조성한 널무덤의 존재가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확인된 무덤들은 규모나 부장품의 양적인 면으로 보아 상위계층에 속하는 이들의 것임을 알 수 있다. 독무덤은 길쭉한 2∼3개의 항아리를 연결하여 만든 것으로 전체 길이가 1m 미만이며, 어린아이용 무덤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곳 고분군에서는 상태가 양호한 사람의 뼈 190여 개체가 발견되어 고대 한국인의 형질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였다. 특히 앞이마가 함몰된 두개골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3세기 가야 사회에서 아이의 머리를 돌로 눌러 편두*를 만드는 풍습이 있었다고 전해지던 기록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와 농기구, 마구 등의 철기류가 대부분이며, 금은제 귀고리와 유리나 호박제 구슬류도 확인되었다. 이 유물들은 현재 부산대학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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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두 : 머리의 모양을 변하게 하는 풍속. 변진(弁辰)에서는 돌을 가지고 머리의 모양을 일정한 형태로 만들었음. 어린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머리의 모양을 바르게 잡지 못하면 균형이 깨지기 때문에 이러한 습관은 오늘날에도 민간에서 시행되고 있음. 다만 돌을 어떻게 사용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보조기구의 하나였을 것으로 추측. 편두는 한국의 고대사회의 문화 전래 과정에서 문신 등과 더불어 남방문화 갈래의 대표적인 영향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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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널무덤: 무덤 속에 관을 넣어두는 묘실을 나무로 짜 만든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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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절구연(外折口緣): 아가리가 밖으로 꺾여 있는 모습.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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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두(偏頭):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에서 널리 행해졌던 풍습, 아직 뼈가 무른 갓난아기 때 머리를 돌로 눌러 두개골을 납작하게 변형시키는 행위. 이를 통해 권위나 아름다움을 표현하거나 민족적 동질감을 나타내었다. 󰡔삼국지󰡕 위서 동이 변진전에 의하면 가야에 편두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예안리 고분군은 4~7세기에 조성된 가야의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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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덧널무덤: 지면을 깊게 파고 자갈 따위의 석재로 덧널을 만든 무덤, 널길이 없는 것이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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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트기식 돌방무덤: 돌로 널방을 만들고 출입을 위한 널길을 만든 무덤 양식.
서북쪽의 까치산과 동쪽의 마산 사이로 조성된 낮은 구릉 지대에 동서로 길게 연결되어 분포하고 있다. 1950년대 중반에 그 존재가 처음 확인되었으며 1976년 이루어진 첫 발굴조사를 포함해 5차례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널무덤, 독무덤 등 다양한 양식의 무덤 총 212기와 2,000여 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는 가야지역에서 조성한 널무덤의 존재가 처음 발견되었다. 규모나 부장품의 양으로 보아 상위계층의 무덤이었으며, 길쭉한 2~3개의 항아리를 연결하여 만든 독무덤은 전체 길이가 1m 미만으로, 어린아이용 무덤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곳 고분군에서는 상태가 양호한 사람의 뼈 190여 개체가 발견되어 고대 한국인의 형질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였다. 특히 앞이마가 함몰된 두개골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3세기 가야의 편두*라는 풍습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와 농기구, 마구 등의 철기류가 대부분이며, 금은제 귀고리와 유리나 호박제 구슬류도 확인되었다. 이 유물들은 현재 부산대학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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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두 : 돌로 머리를 눌러 두개골의 모양을 변형시키는 풍속.  
 
 
 
====자문의견====
 
#분야별 자문위원 1
 
#*기존 문안 중‘4~6세기에 걸쳐 계속적으로 만들어진 고분군은 가야지역에서 확인되는 모든 형식의 고분이 중복되고 있어, 가야의 묘제가 덧널무덤에서 돌덧널무덤으로 돌덧널무덤에서 돌방무덤으로 변해갔던 과정을 알 수 있는 곳이다.’ 필요함
 
#*7세기 후반까지 조영되었으므로 가야·신라 무덤으로 봐야함
 
#*처음 확인된 것은 널무덤이 아니라 덧널무덤(목곽)임
 
#분야별 자문위원 2
 
#*예안리 고분군은 4~7세기에 조성된 가야의 무덤이다.
 
#*서북쪽의 까치산과 동쪽의 마산 사이의 동서로 길게 연결된 낮은 구릉 지대에 분포한다. 1950년대 중반에 그 존재가 알려졌고, 1976년 이후 5차례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조사 결과 덧널무덤, 돌덧널무덤, 독무덤, 앞트기식돌방무덤 등 다양한 종류의 무덤 총 212기와 2,000여 점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이곳에서는 가야지역에서 덧널무덤의 존재가 처음 확인되었다. 무덤의 규모가 크지 않고, 껴묻거리의 양이 많지 않아 하위계층 사람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확인된 독무덤은 길쭉한 2~3개의 항아리를 연결하여 만든 전체 길이가 1m 미만으로, 어린이가 묻힌 무덤으로 추정된다.
 
#*또한 여러 기의 무덤에서 상태가 양호한 사람의 뼈 190여 개체가 발견되어 고대 한국인의 형질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였다. 특히 앞이마가 편평한 두개골이 확인되었다. 가야인들이 갓 태어난 아이의 이마를 돌이나 판자로 눌러 두개골의 모양을 변형시키는 ‘편두(偏頭)’ 라는 풍습을 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와 농기구, 마구 등의 철기류가 대부분이며, 금은제 귀고리와 유리나 호박제 구슬류도 확인되었다. 이 유물들은 현재 부산대학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서북쪽의 까치산과 동쪽의 마산 사이로 조성된 낮은 구릉 지대에 동서로 길게 연결되어 분포하고 있다. 1976년부터 1980년까지 총 5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널무덤, 독무덤 등 다양 한 양식의 무덤 총 212기와 2,000여 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2차 수정====
 
예안리 고분군은 4~7세기에 조성된 가야의 무덤이다.
 
  
서북쪽의 까치산과 동쪽의 마산 사이 동서로 길게 연결된 낮은 구릉 지대에 분포한다. 1950년대 중반에 그 존재가 알려졌고, 1976년 이후 5차례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덧널무덤, 돌덧널무덤, 독무덤, 앞트기식돌방무덤 등 다양한 양식의 무덤 총 212기와 2,000여 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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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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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ient Tombs in Yean-ri, Gimhae'''
  
이곳에서는 가야지역에서 조성된 덧널무덤의 존재가 처음 확인되었다. 무덤의 규모가 크지 않고 껴묻거리의 양이 많지 않아, 하위계층 사람들의 무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길쭉한 2~3개의 항아리를 연결하여 만든 독무덤은 전체 길이가 1m 미만으로, 어린이가 묻힌 무덤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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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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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안리 고분군은 4~7세기에 조성된 가야의 무덤이다. 가야 지역 최초로 덧널무덤이 조성된 곳이며, 이전 시기에 만들어진 무덤을 훼손하고 그 위에 새로운 양식의 무덤이 조성되기도 하였다. 덧널무덤, 돌덧널무덤, 앞트기식돌방무덤 등 다양한 양식의 무덤이 발견되어, 가야의 고분 양식이 발전해간 과정과 그 연대 구성에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여러 기의 무덤에서 상태가 양호한 사람의 뼈 190여 개체가 발견되어 고대 한국인의 형질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였다. 특히 앞이마가 편평한 두개골이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가야인들이 갓 태어난 아이의 이마를 돌이나 판자로 눌러 두개골의 모양을 변형시키는 ‘편두(偏頭)’라는 풍습을 하였음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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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옛 김해만이 형성되어 있던 곳으로, 해안의 습한 토양과 이곳에 쌓여 있던 조개껍데기 덕분에 유례없이 많은 인골이 온전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발굴된 250여 기의 인골은 가야인의 체질적 특징부터 매장 관습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앞이마가 편평한 형태로 변형된 두개골이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갓 태어난 아이의 이마를 돌로 눌러 두개골의 모양을 변형시키고, 이를 통해 권위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풍습이 가야시대에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와 농기구, 마구 등의 철기류가 대부분이며, 금은제 귀고리와 유리나 호박제 구슬류도 확인되었다. 이 유물들은 현재 부산대학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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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된 유물은 토기류, 농기구, 마구 등과 금은제, 유리, 호박제 장신구 등이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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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가야 자료총서 3 - 가야 발굴조사 자료편 I , 문화재청,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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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자료총서 3 - 가야 발굴조사 자료편 I , 문화재청, 2018. → 발굴 무덤 기수 및 유물류 정보 및 발굴조사 내력 확인가능.
→ 발굴 무덤 기수 및 유물류 정보 및 발굴조사 내력 확인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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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용어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6569&cid=41826&categoryId=41826 → ‘편두’ 정의
*한국고전용어사전 (네이버 연동)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6569&cid=41826&categoryId=41826
 
→ ‘편두’ 정의
 
  
 
[[분류:문화유산해설문]]
 
[[분류:문화유산해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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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사적]]
 
[[분류:사적]]
 
[[분류:고분]]
 
[[분류: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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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0 영문집필]]

2020년 11월 12일 (목) 03:06 판


김해 예안리 고분군
Ancient Tombs in Yean-ri, Gimhae
김해 예안리 고분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김해 예안리 고분군
영문명칭 Ancient Tombs in Yean-ri, Gimhae
한자 金海 禮安里 古墳群
주소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예안리 369-6번지
지정번호 사적 제261호
지정일 1978년 6월 23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고분군
시대 가야
수량/면적 22,934㎡
웹사이트 김해 예안리 고분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김해 예안리 고분군은 4~7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무덤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유적이다. 이곳은 가야 지역 최초로 덧널무덤*이 조성된 곳인데, 이전 시기에 만들어진 무덤을 훼손하고 그 위에 새로운 양식의 무덤이 조성되었다.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옛 김해만이 형성되어 있던 곳으로, 해안의 습한 토양과 이곳에 쌓여 있던 조개껍데기 덕분에 유례없이 많은 인골이 온전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발굴된 250여 기의 인골은 가야인의 체질적 특징부터 매장 관습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이곳에서는 4~5세기 금관가야의 특징을 보여 주는 외절구연** 굽다리 접시를 비롯한 각종 가야의 토기와 철기, 귀걸이, 구슬 등이 이곳에서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두개골이 변형된 인골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가야 편두*** 풍습의 존재를 증명해 준다.

예안리 고분군은 가야 고분의 형식이 덧널무덤 → 돌덧널무덤**** → 앞트기식돌방무덤*****으로 전개된 과정과 그 연대 구성에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며, 가야 사회의 편두 풍습과 가야인의 형질 연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덧널무덤: 무덤 속에 관을 넣어두는 묘실을 나무로 짜 만든 무덤.
  • 외절구연(外折口緣): 아가리가 밖으로 꺾여 있는 모습.
  • 편두(偏頭):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에서 널리 행해졌던 풍습, 아직 뼈가 무른 갓난아기 때 머리를 돌로 눌러 두개골을 납작하게 변형시키는 행위. 이를 통해 권위나 아름다움을 표현하거나 민족적 동질감을 나타내었다. 󰡔삼국지󰡕 위서 동이 변진전에 의하면 가야에 편두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 돌덧널무덤: 지면을 깊게 파고 자갈 따위의 석재로 덧널을 만든 무덤, 널길이 없는 것이 특징.
  • 앞트기식 돌방무덤: 돌로 널방을 만들고 출입을 위한 널길을 만든 무덤 양식.

영문

Ancient Tombs in Yean-ri, Gimhae

영문 해설 내용

예안리 고분군은 4~7세기에 조성된 가야의 무덤이다. 가야 지역 최초로 덧널무덤이 조성된 곳이며, 이전 시기에 만들어진 무덤을 훼손하고 그 위에 새로운 양식의 무덤이 조성되기도 하였다. 덧널무덤, 돌덧널무덤, 앞트기식돌방무덤 등 다양한 양식의 무덤이 발견되어, 가야의 고분 양식이 발전해간 과정과 그 연대 구성에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옛 김해만이 형성되어 있던 곳으로, 해안의 습한 토양과 이곳에 쌓여 있던 조개껍데기 덕분에 유례없이 많은 인골이 온전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발굴된 250여 기의 인골은 가야인의 체질적 특징부터 매장 관습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앞이마가 편평한 형태로 변형된 두개골이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갓 태어난 아이의 이마를 돌로 눌러 두개골의 모양을 변형시키고, 이를 통해 권위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풍습이 가야시대에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 농기구, 마구 등과 금은제, 유리, 호박제 장신구 등이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