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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김붕만 신위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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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5월 20일 (목) 14:19 판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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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김붕만 신위단비
고흥 김붕만 선무원종공신녹권과 신위단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고흥 김붕만 신위단비
한자 高興 金鵬萬 神位壇碑
주소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연강예회길 135-2 외(예회리 108-1)
지정번호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89호
지정일 2018년 8월 23일
분류 기록유산/전적류/전적류/전적류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전적 1책/(35.5cm×22.5cm), 단비 1기(높이 215cm, 너비 68cm)



해설문

기존 국문

신위단비는 1914년에 건립한 석비로 비문을 통하여 김붕만의 행적과 후대의 추숭(追崇)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선무원종공신녹권이 국가 차원의 선현 추숭이라면, 신위단비는 향토와 지역 문중 차원의 추숭 활동을 알 수 있는 기록유산으로 역사적, 학술적가치가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신위단비는 1914년에 건립한 석비로 비문을 통하여 김붕만의 행적과 후대의 추숭(追崇)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선무원종공신녹권이 국가 차원의 선현 추숭이라면, 신위단비는 향토와 지역 문중 차원의 추숭 활동을 알 수 있는 기록유산으로 역사적, 학술적가치가 있다.

김붕만(? ~ ?)은 고흥 출생으로 자(字)는 봉서(鳳瑞), 본관은 김해(金海), 판서(判書) 태덕(台德)의 후손이다. 좌찬성(左贊成) 연(璉)의 6세손, 금녕군 목경(牧卿)의 10세손으로 부친은 황(璜)이다. 외조부는 고령신씨(高靈申氏) 현감을 지낸 신치례(申致禮)이다.

김붕만은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 소속인 흥양현(興陽縣) 사도진(蛇渡鎭)의 군관(軍官)으로 활약하면서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또한 1592년(선조 25) 9월 부산포해전에서 적선 400여 척을 맞아 사도 1호선의 군관으로 종일 접전을 벌이다가 적의 총알에 맞아 중상을 입기도 하였다.

김붕만은 난중일기 1598년 1월 2일까지 등장하고 있으나, 『호남절의록』에는 한산도해전에서 전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호남절의록』 내용상 한산해전은 1592년 7월 한산해전과 1597년 7월 칠천량해전을 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붕만의 기록이 1597년 7월 칠천량해전이 끝난 후인 1598년 1월 2일까지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사망 시기는 임진왜란 후로 보인다.

김붕만의 신위단비가 위치한 곳의 맞은편에는 1933년에 후손들이 삼연재(三然齋)와 충렬사(忠烈祠)를 지어 제향하고 있다. 이곳에는 김붕만에게 내린 「선무원종공신녹권」을 비롯한 고문서들이 소장되어 있다.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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