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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고흥김붕만신위단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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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3413602890000 고흥 김붕만 선무원종공신녹권과 신위단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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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고흥 김붕만 신위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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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Stele of Kim Bung-man, Goheung
 
|한자=高興 金鵬萬 神位壇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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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연강예회길 135-2 외(예회리 108-1)
 
|주소=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연강예회길 135-2 외(예회리 1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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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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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신위단비는 1914년에 건립한 석비로 비문을 통하여 김붕만의 행적과 후대의 추숭(追崇)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선무원종공신녹권이 국가 차원의 선현 추숭이라면, 신위단비는 향토와 지역 문중 차원의 추숭 활동을 알 수 있는 기록유산으로 역사적, 학술적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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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위단비는 조선시대의 무관 김붕만(金鵬萬)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914년에 세운 비석이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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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붕만은 임진왜란 당시 권율(權慄, 1537~1599)의 휘하에서 이치전투(1592)에 참전하였으며, 이후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의 진영에 합류해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이후 그의 충절과 공로를 인정 받아 선무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었다.
====초고====
 
신위단비는 1914년에 건립한 석비로 비문을 통하여 김붕만의 행적과 후대의 추숭(追崇)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선무원종공신녹권이 국가 차원의 선현 추숭이라면, 신위단비는 향토와 지역 문중 차원의 추숭 활동을 알 수 있는 기록유산으로 역사적, 학술적가치가 있다.
 
  
김붕만(? ~ ?)은 고흥 출생으로 자(字)는 봉서(鳳瑞), 본관은 김해(金海), 판서(判書) 태덕(台德)의 후손이다. 좌찬성(左贊成) ()의 6세손, 금녕군 목경(牧卿)의 10세손으로 부친은 황(璜)이다. 외조부는 고령신씨(高靈申氏) 현감을 지낸 신치례(申致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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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은 김붕만의 행적과 후대에 그를 추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13년에 송병화(宋炳華, 1582~1916)가 비문을 짓고 송병길(宋炳吉)이 글씨를 썼으며, 이듬해에 김붕만의 후손 5인이 비석을 세웠다.
  
김붕만은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 소속인 흥양현(興陽縣) 사도진(蛇渡鎭)의 군관(軍官)으로 활약하면서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또한 1592년(선조 25) 9월 부산포해전에서 적선 400여 척을 맞아 사도 1호선의 군관으로 종일 접전을 벌이다가 적의 총알에 맞아 중상을 입기도 하였다.
+
비석 맞은편에는 1928년에 세운 김붕만의 사당 삼연재(三然齋)가 있고, 삼연재에는 김붕만이 공신에 책봉되었을 때 발급된 선무원종공신녹권이 보관되어 있다.
  
김붕만은 『난중일기』 1598년 1월 2일까지 등장하고 있으나, 『호남절의록』에는 한산도해전에서 전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호남절의록』 내용상 한산해전은 1592년 7월 한산해전과 1597년 7월 칠천량해전을 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붕만의 기록이 1597년 7월 칠천량해전이 끝난 후인 1598년 1월 2일까지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사망 시기는 임진왜란 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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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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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e of Kim Bung-man, Goheung'''
  
김붕만의 신위단비가 위치한 곳의 맞은편에는 1933년에 후손들이 삼연재(三然齋)와 충렬사(忠烈祠)를 지어 제향하고 있다. 이곳에는 김붕만에게 내린 「선무원종공신녹권」을 비롯한 고문서들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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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ele commemorating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Kim Bung-man, a military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was erected in 1914 by his descendants.
  
====초고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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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Kim Bung-man served in the Battle of Ichi (1592) under the command of general Gwon Yul (1537-1599) and in several battles under the command of the admiral Yi Sun-sin (1545-1598). In 1605, he was bestowed with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for his loyalty and contributions during the war.
이 비석은 1914년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2등 공신으로 책봉되었던 무관 김붕만(金鵬萬)의 후손들이 세운 것이다.  
 
  
비문은 김붕만의 행적과 후대에 그를 추숭(追崇)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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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scription on the stele was composed in 1913 by civil official and scholar Song Byeong-hwa (1582-1916). Nearby is Samyeonjae Shrine, which was established in 1928 to commemorate Kim Bung-man. The certificate issued to Kim Bung-man when he was bestowed with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is housed at the shrine.
  
1913년에 송병화(宋炳華)가 비문을 짓고 송병길(宋炳吉)글씨를 썼으며, 이듬해에 김붕만의 11대·12대 후손 5인이 비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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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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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조선시대의 무관 김붕만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914년에 세운 비석이다.
  
신위단비는 향토와 지역 문중 차원의 선현 추숭 활동을 알 수 있는 기록유산으로서 그 가치가 있으며, 비석 맞은편에는 후손들이 1928년에 세운 김붕만의 사당 삼연재(三然齋)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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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붕만은 임진왜란 당시 권율(1537-1599) 장군의 휘하에서 이치전투(1592)에 참전하였으며, 이후 이순신(1545-1598) 장군의 진영에 합류해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그의 충절과 공로를 인정 받아 1605년 공신에 책봉되었다.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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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은 문신이자 학자였던 송병화(1582-1916)가 1913년에 지었다. 인근에는 1928년에 세운 김붕만의 사당 삼연재가 있고, 삼연재에는 김붕만이 공신에 책봉되었을 때 발급된 녹권이 보관되어 있다.
  
 
=='''문맥요소'''==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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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참고자료'''==
 
* 고흥 김붕만 선무원종공신녹권과 신위단비 (高興 金鵬萬 宣武原從功臣錄券과 神位壇碑),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3413602890000&pageNo=1_1_1_1
 
* 고흥 김붕만 선무원종공신녹권과 신위단비 (高興 金鵬萬 宣武原從功臣錄券과 神位壇碑),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3413602890000&pageNo=1_1_1_1
 
* 삼연재,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82%BC%EC%97%B0%EC%9E%AC
 
* 삼연재,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82%BC%EC%97%B0%EC%9E%AC
 
-추가 참고-<br/>
 
 
*새문화재 - 고흥 김붕만 선무원종공신녹권과 신위단비, 전남 문화재자료 지정예고, 2018.04.19, 향토학, 다음 블로그 https://blog.daum.net/kht1215/348 -> 신위단비 비문 해석 확인 가능
 
*새문화재 - 고흥 김붕만 선무원종공신녹권과 신위단비, 전남 문화재자료 지정예고, 2018.04.19, 향토학, 다음 블로그 https://blog.daum.net/kht1215/348 -> 신위단비 비문 해석 확인 가능
  

2021년 7월 31일 (토) 16:45 기준 최신판

고흥 김붕만 신위단비
Stele of Kim Bung-man, Goheung
고흥 김붕만 선무원종공신녹권과 신위단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고흥 김붕만 신위단비
영문명칭 Stele of Kim Bung-man, Goheung
한자 高興 金鵬萬 神位壇碑
주소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연강예회길 135-2 외(예회리 108-1)
지정번호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89호
지정일 2018년 8월 23일
분류 기록유산/전적류/전적류/전적류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전적 1책/(35.5cm×22.5cm), 단비 1기(높이 215cm, 너비 68cm)



해설문

국문

신위단비는 조선시대의 무관 김붕만(金鵬萬)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914년에 세운 비석이다.

김붕만은 임진왜란 당시 권율(權慄, 1537~1599)의 휘하에서 이치전투(1592)에 참전하였으며, 이후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의 진영에 합류해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이후 그의 충절과 공로를 인정 받아 선무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었다.

비문은 김붕만의 행적과 후대에 그를 추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13년에 송병화(宋炳華, 1582~1916)가 비문을 짓고 송병길(宋炳吉)이 글씨를 썼으며, 이듬해에 김붕만의 후손 5인이 비석을 세웠다.

비석 맞은편에는 1928년에 세운 김붕만의 사당 삼연재(三然齋)가 있고, 삼연재에는 김붕만이 공신에 책봉되었을 때 발급된 선무원종공신녹권이 보관되어 있다.

영문

Stele of Kim Bung-man, Goheung

This stele commemorating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Kim Bung-man, a military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was erected in 1914 by his descendant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Kim Bung-man served in the Battle of Ichi (1592) under the command of general Gwon Yul (1537-1599) and in several battles under the command of the admiral Yi Sun-sin (1545-1598). In 1605, he was bestowed with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for his loyalty and contributions during the war.

The inscription on the stele was composed in 1913 by civil official and scholar Song Byeong-hwa (1582-1916). Nearby is Samyeonjae Shrine, which was established in 1928 to commemorate Kim Bung-man. The certificate issued to Kim Bung-man when he was bestowed with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is housed at the shrine.

영문 해설 내용

이 비는 조선시대의 무관 김붕만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914년에 세운 비석이다.

김붕만은 임진왜란 당시 권율(1537-1599) 장군의 휘하에서 이치전투(1592)에 참전하였으며, 이후 이순신(1545-1598) 장군의 진영에 합류해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그의 충절과 공로를 인정 받아 1605년 공신에 책봉되었다.

비문은 문신이자 학자였던 송병화(1582-1916)가 1913년에 지었다. 인근에는 1928년에 세운 김붕만의 사당 삼연재가 있고, 삼연재에는 김붕만이 공신에 책봉되었을 때 발급된 녹권이 보관되어 있다.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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